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16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써봤으면 하는 모티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변신'에 관한 모티프이다.
<2015년 서울예대 극작과 글제>
어떤 사람과 극도로 예민한 관계에 처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일상이 뒤엉켜 힘들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왔더니, 그 사람이 사랑스러운 애완견으로 변해있다. 자,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18년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글제>
이번 생을 마치고 다음 생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개, 박쥐, 상어, 뱀, 바지락조개, 달팽이 중에서 오직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이번 생에 있었던 사건과 연관하여 그 동물을 선택한 이유가 드러나게 쓰시오/인칭을 자유롭게 지정하여 쓰시오/제목을 자유롭게 지정하여 쓰시오)
'변신' 모티프는 창작 실기 글제로도 자주 나오는 편이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변신'은 꾸준히 사랑받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변신'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처음에는 파워레인저 같은 전대물이나, 각종 마법소녀물을 떠올릴 수도 있다. 평범한 인물이 '영웅'으로 변신하는 것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좋아하는 소재다.
이 외에도 인물이 다른 무언가(동물, 사물, 다른 인물 등)로 변하게 되는 이야기는 많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뿐만 아니라 웹툰이나 웹소설까지도 '변신'에 관한 이야기를 찾으면 수도 없이 많이 나올 것이다.
'변신'은 고전소설에서부터 현대 웹소설까지 자주 쓰이는 모티프이다.
유행했던 웹소설 소재인 '회빙환(회귀물, 빙의물, 환생물)'을 떠올려보자.
평범했던 인물이 다른 무언가(심지어 과거로 돌아가서 '기억'을 가진 새로운 나로 변하는 것 포함)로 변하여 소설을 진행하는 것은 '변신'모티프의 일종이며 하나의 변형 사례이다.
오늘은 '변신' 모티프를 느껴볼 수 있는 소설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1.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창작'이나 '인문학'과 관련된 학과라면 '그리스 로마신화'를 무조건 읽어야 했다.
(다행히도 우리 세대는 초등학생일 때 '그리스 로마신화' 만화책이 보급되었던 세대라, 그리스 로마신화에는 익숙했다.)
대학교 창작과 관련된 학과에서 그리스 로마신화를 배우는 이유는 스토리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신화 속에 나오는 각종 상징들, 그리고 각종 모티프들을 배웠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시하면서 배우는 것이 바로 '변신'에 관한 것이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도 괜찮고, 이게 힘들다면 그냥 만화로 된 그리스 로마신화도 괜찮다. 나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로 배웠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변신'은 신의 권능이다. 인간과 비슷한 형상의 '신'들은 자신의 목적(제우스를 예로 들자면 자손 번식을 위하여)을 이루기 위해 각종 동물로 변한다. 신의 권능에 도전하거나 신을 모욕한 인간을 벌하기 위하여 인간을 동물로 변하게 하기도 하고(헤라가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었듯이), 누군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별자리로 만들기도 한다.
외국의 신화이고,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이야기인지라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기도 하고, 현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도덕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신화는 읽을 가치가 있다.
'신'을 바라보고, '신'의 아래에서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전하던,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을 떠올리며 읽어보기를, 혹은 현대에서도 잘 쓰이는 '상징'과 '모티프'를 찾아가며 읽어보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 프란츠 카프카 '변신'
'변신' 모티프를 이야기하는데 이 소설을 빼놓고 갈 수 있을까?
인간이었던 그레고르는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리고 만다. 겉모습은 징그러운 벌레지만, 속은 그레고르라는 인간 그대로인데, 주변 사람들은 그레고르를 다르게 대한다.
평범한 세일즈맨 그레고르가 갑자기 '벌레'로 변했다는 점에서 판타지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은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레고르가 진짜 '벌레'가 아니라 '벌레 같은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라면?
돈을 벌어오고,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쓸모가 있던 존재인 남자 그레고르가 일련의 이유(우울증일 수도 있고, 병에 걸렸을 수도 있고,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고)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식충이'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라면?
벌레가 되어버린 남자, 그를 혐오하기 시작하는 주변 사람들, 붕괴되어 가는 그레고르의 삶.
이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도 좋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좋은 이야기다.
3. 황정은 '모자'
카프카 소설 속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버렸고, 계속 '벌레'로 살다 죽었다. 황정은의 소설 '모자'에서 아버지는 갑자기 '모자'가 되어버린다.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모자가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자식이 골목에서 마주친 아버지를 초라하다고 모른 척을 하였을 때, 자신의 고장 난 라디오를 고쳐주지도, 새로 사주지도 못하면서 자식의 뺨을 때렸을 때, 학부모 참관일에 참석하였을 때, 추행당한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파출소에서. 그리고 시시때때로.
아버지는 모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모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고, 자식들은 왜 아버지가 모자로 변하는 것인지 알지를 못한다.
아버지는 '무능 혹은 무력'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아버지로서 초라해질 때 모자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갑자기 사람이 '모자'로 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우리는 '말도 안 돼. 사람이 어떻게 모자가 된다는 거야!'라면서 비웃지 않는다.
누군가의 머리 위에 올라가 당당하게 있고 싶었을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밟히기까지 하는 모자가 되었을 때, 느끼는 그 참담함을 우리는 읽어낼 뿐이다.
4. 정소현 '양장제본서전기'
2008년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합법적으로 사라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서비스라는 명목 아래, 도서관은 '잊히고 싶은 사람', 혹은 '잊혀도 되는 사람'의 죽음을 합법적으로 돕는다.
'나'의 기억을 책으로 한 권 만들어서 도서관에 남기고 '나'는 사라지게 된다.
'나'가 '책'이 되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그 과정이 슬프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16년 전 작품인데도, 현대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