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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너드 EngNerd Feb 23. 2023

오리 가족이 일렬로 헤엄치는 이유는?

오리 헤엄에 숨겨진 기술

< 파도 타기와 파도 통과 >


by 엔너드 EngNerd

#오리 #거위 #헤엄 #파동 #파도 #선박 #유체역학 #공학 #과학 #기술 #과학기술


경고: 해당 글은 논문 ‘Wave-riding and wave-passing by ducklings in formation swimming’을 정리한 것으로서 내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오리(또는 거위) 가족이 물 위로 헤엄치는 모습을 보신 적 있나요? 오리 가족이 어딘가를 이동할 때 어미 오리가 앞서서 헤엄치면 새끼 오리들이 뒤따라 일렬로 헤엄치는 장면이 종종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호기심을 보인 공학자가 있었습니다. 웨스트체스터대학(West Chester Univ.)의 피쉬(Frank E. Fish) 교수는 1995년 실험을 통해 새끼 오리들이 어미 오리 뒤에서 헤엄치면 62.8% 만큼의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1]. 그리고 해당 연구에 영감을 받은 위안(Yuan) 등 연구진은 오리 가족의 헤엄에 숨겨진 유체역학적 원리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하여 2021년 유체역학 저널(Journal of Fluid Mechanics)에 논문을 출판하였습니다 [2]. 이번 글에서는 이 논문 내용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보았습니다.

캐나다 거위(Canada goose)가 일렬로 헤엄치는 모습 [2]






오리가 만들어내는 물결 무늬

어미 오리(타원 M) 주위의 물결 높이 그래프. L은 어미 오리의 몸길이를 뜻한다. [2]

오리는 물 표면 위로 헤엄칠 때 주위에 물결을 일으킵니다. 이 물결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양 옆으로 퍼지는 발산파(diverging wave)이고 다른 하나는 오리 뒤로 쐐기 모양을 이루며 퍼지는 가로파(transverse wave)입니다. 위 그림은 어미 오리(타원 M으로 표시)가 0.48 m/s 속도로 헤엄칠 때의 물결 무늬를 보여줍니다. 빨간 영역은 물결의 높이가 잔잔한 수면 대비 높은 것이고, 파란 영역은 반대로 낮은 것을 뜻합니다. X, Y 좌표가 0에 위치한 어미 오리 뒤로 쐐기 모양으로 물결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물결은 어미 오리와 함께 이동합니다.

실제 오리가 일으키는 물결 모습.

이러한 특징을 가진 물결을 흔히 켈빈 쐐기(Kelvin wedge)라 합니다. 켈빈 쐐기는 오리뿐만 아니라 선박 주위에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물결 패턴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쐐기 각이 약 38.9도로 일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켈빈 각(Kelvin angle)이라 부릅니다.






조파항력, wave drag

어미 오리가 일으키는 물결 뒤로 새끼 오리가 헤엄치면 잔잔한 수면에서 헤엄칠 때와 다른 저항을 받게 됩니다. 새끼 오리가 헤엄칠 때 받는 저항은 크게 점성저항(viscous drag)과 조파저항(wave drag)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오리가 헤엄치는 속도 및 오리의 크기 등을 고려하면 조파저항이 가장 지배적입니다.

오리가 물로부터 받는 압력은 잔잔한 수면에서와 파도가 치는 수면에서 다르게 작용한다. [2]

파도가 오리에게 어떻게 저항을 다르게 가하는 걸까요? 위 그림처럼 물 위에 떠있는 오리가 물로부터 받는 압력을 고려해봅시다. 잔잔한 수면에 떠있는 오리 (a)는 물 깊이에 비례하여 강해지는 정수압(hydrostatic pressure)을 받습니다. 오리 (a)의 앞과 뒤에 압력 차이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파도 위에 떠있는 오리 (b)와 (c)는 파도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압력을 다르게 받습니다. 가슴이 파도 마루(wave crest)에, 배가 파도 골(wave trough)에 있는 오리 (b)의 경우 압력의 총합이 오리 뒤로 가해집니다. 즉, 오리 (b)는 오리 (a)에 비해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더 많은 힘을 들여야 합니다. 반면에 오리 (b)와 완전히 반대 상황에 놓여진 오리 (c)는 앞을 향해 힘을 받습니다. 따라서 오리 (c)는 오리 (a)보다 힘을 덜 들이면서도 같은 거리를 헤엄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파도에 의해 변화하는 저항을 조파저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위 현상을 값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즉, 오리가 잔잔한 수면에서 받는 항력(R_S)과 파도가 일렁이는 수면에서 받는 항력(R)을 비교하여 계수로 정리하면 아래 식과 같습니다*.

C_DR은 항력감소계수(drag reduction coefficient)라 부릅니다. 항력감소계수(C_DR)가 0보다 크면 조파항력이 혼자 헤엄칠 때에 비해 감소, 계수 값이 0보다 작으면 조파항력이 상대적으로 증가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0이면 혼자 헤엄칠 때와 함께 헤엄칠 때 받는 항력이 서로 같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100%보다 클 경우에는 저항을 넘어서서 오히려 헤엄치는 방향으로 추력(propulsive force)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여기서 오리가 파도 위의 수면에 있다는 뜻은 다른 오리와 함께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어미 오리 주위에 새끼 오리가 있을 때 새끼 오리의 항력감소계수 그래프. [2]

위 그림은 어미 오리 주위에 새끼 오리가 위치할 경우 새끼 오리의 항력감소계수를 나타낸 것입니다. 빨간 영역은 항력이 혼자일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을 뜻하고, 파란 영역은 그 반대입니다. 그림에서 A는 가장 높은 항력 감소를, B는 가장 낮은 항력 감소를 보이는 위치입니다. 즉, 새끼 오리가 어미와 같은 속도로 헤엄칠 때 A 위치에 있으면 가장 힘을 덜 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앞서 어미 오리가 만들어낸 물결과 비교해보면 위치 A에 있는 새끼 오리는 가슴이 파도 골(wave trough)에, 배가 파도 마루(wave crest)에 있는 오리 (c)와 같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새끼 오리는 A 위치에서 헤엄친다면 가장 적은 힘을 들이면서 어미와 함께 헤엄칠 수 있습니다.


어미 뒤에 새끼 오리가 있을 때 항력감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아래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미 오리 뒤의 파도 표면(빨간색)과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의 항력감소계수(파란색) 그래프. [2]

이 그래프는 새끼 오리가 어미 뒤에 있을 때 어미 오리(X=0)와 새끼 오리(X<0)의 항력감소계수를 나타낸 것입니다. 빨간 실선은 어미 오리에 의해 만들어진 물결의 높이를 나타내고, 파란 점선은 어미 오리, 파란 실선은 새끼 오리의 항력감소계수를 의미합니다. 변수 d는 항력감소계수 그래프의 연속된 두 마루 사이의 거리인데, 물결의 파장(wavelength, lambda)과 같은 값을 가집니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새끼 오리는 A 위치에 있을 때 무려 158%의 항력감소 계수를 가지며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때 100%는 조파저항을 극복하는데 쓰이고, 나머지 58%는 새끼 오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추력)을 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새끼 오리가 A에 위치할 때 앞에 있는 어미 오리에게도 영향을 미쳐 5%의 항력감소 효과를 본다는 것입니다. 즉, 새끼 오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어미 오리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 위와 같은 추력 발생 현상은 여러 배가 이동할 때 또는 트라이애슬론 수영을 할 때도 나타난다는 것을 여러 논문에서 실험적으로 밝힌 바 있다.






파도 통과, wave-passing

어미 오리 뒤에 새끼 오리가 A에 위치했을 때 주위 물결 높이 그래프. [2]

위 그래프는 어미 오리 뒤에 새끼 오리가 A 위치에 있을 때 주위 물결을 나타낸 것입니다. 새끼 오리 뒤로도 새끼 오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어미 오리와 비슷하게 만들어집니다. 즉, 새끼 오리 뒤로 다른 새끼 오리가 헤엄칠 때도 앞의 새끼 오리와 비슷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미 오리가 만들어낸 물결과 같은 파장의 물결을 새끼 오리가 만들어내는 것을 파도 통과(wave-passing) 현상이라고 합니다. 파도 통과 현상은 새끼 오리가 여러 마리가 줄지어 헤엄칠 때 어미 오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계속 전달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새끼 오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헤엄칠 때 물결 파고 그래프 및 항력감소계수 그래프. [2]

새끼 오리 여러 마리가 어미 뒤를 헤엄칠 때 가장 효율적인 위치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파도 통과 현상 때문에 어미 오리 바로 뒤의 새끼 오리뿐만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등등의 새끼 오리들도 항력감소 효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첫 번째 새끼 오리는 158%, 두 번째 새끼 오리는 132%의 항력감소 효과를 얻은 반면에 세 번째 이후의 새끼 오리들은 약 100%의 항력감소 효과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100% 여도 새끼 오리에게 받는 조파저항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므로 충분히 높은 수치입니다.


정리하자면 오리 가족이 일렬로 헤엄치는 이유는 새끼 오리는 어미 오리가 만들어낸 물결 뒤에서 조파항력을 가장 적게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 헤엄치고, 그 물결을 뒤로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 여러 새끼 오리들이 항력감소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논문 [2]에서는 이 현상을 각각 파도 타기(wave-riding)와 파도 통과(wave-passing)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그노벨상, Ig Nobel Prize

이런 연구를 보다보면 ‘이 사람들은 왜 이런 연구를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간하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연구 회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에서는 이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2022년 9월 15일, 위 연구를 통해 미국의 웨스트체스터대, 스코틀랜드 스트래스클라이드대 연구진은 공동으로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한편, 이렇게 자연의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공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물기차 (water-train)을 만들어 연료를 덜 소모하면서 물류를 운반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죠. 자연을 보고 떠올린 작은 호기심이 세상의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 EngN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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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그림 및 영상 출처   

1. Fish, F. E. (1995). Kinematics of ducklings swimming in formation: consequences of position. Journal of Experimental Zoology, 273(1), 1-11.

2. Yuan, Z. M., Chen, M., Jia, L., Ji, C., & Incecik, A. (2021). Wave-riding and wave-passing by ducklings in formation swimming. Journal of Fluid Mechanics, 928, 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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