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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넌 Aug 16. 2024

미안한데 (2024)

이정표

미안한데 (2024)


 나는 결국 너한테 어떤 것도 가르쳐 줄 수 없을 거야.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너를 만나게 될 거야. 나는 너의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도 자꾸만 내가 걸어온 길들을 의심하게 될 거야. 나는 여전히 어디로 갈 것인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이 작은 골목 안을 뱅글뱅글 돌고 말 거야.


 그래서 나는 자꾸 겁이 나.


 나는 차라리 너의 손을 놓고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그저 멋대로 뛰어 가라고 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 너의 발이 서 있는 방향으로 그저 가 보라고. 길은 이렇게, 또 저렇게, 어쨌든 이어져 있을테니 그냥 가라고. 길을 잃으면 잃은 채로, 길을 찾으면 찾은 채로, 가다가 샛길로 새버리면 마음껏 구경을 하다 정신이 들면 다시 나오고, 영 원래의 길로 돌아올 수 없대도 그대로 나아가 보라고, 또 무엇이 나올지 모를 일이니까. 그냥 그래도 된다고, 그냥 그래도 된다고.


 나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야. 너에게 어떠한 방향도 만들어주지 못하고, 방향을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지 못하고, 너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겁쟁이의 불안을 포장하는 것으로 나를 지키는 거야.


 대신에 나는 아마도 너를 지키지 못할 거야. 너는 다시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를 가지게 되고, 혹은 헛된 것으로 채워진 마음을 가지고, 마치 나처럼 무엇으로라도 그걸 채워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걸로 마치 채워졌단 착각을 하면서, 헛된 길로 빠지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 하게 되는 거야. 아무도 너를 꺼내주지 못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서 나를 원망하겠지.


 그래서 나는 자꾸 겁이 나. 내가 너에게 무겁고도 무거운 원망을 사게 될까 봐. 내가 너에게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알려주게 될까 봐. 그게 너를 갉아 먹고 갉아 먹고 갉아 먹고. 갉아 먹어서 너도 너를 지키지 못 하게 될까 봐.


 그래서 나는 자꾸 이것저것 마음 안에 넣어 봐. 가지지 못한 것을 넣어 놔.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을 알지라도, 조금이라도 흉내를 내서 내가 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적어도 너 하나만큼은 내가 지킬 수 있었으면 해서.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못 했던 나처럼 살진 않았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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