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내내 울더라도 (2024)
그것은 사실 어느 가을의 노을 아래에서 태어났다. 이제 막 나뭇잎이 물들려 하던 어느 날, 내리막길을 따라 깔린 보도 블록을 한 칸, 한 칸, 한 칸 헤아리느라 바닥만 쳐다보며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 아직 채 물들지 못한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한 줄 내려온 것을 따라. 그걸 따라 나뭇잎 사이를 보다가 시선을 멀리 돌려 하늘을 보니 그런 노을이 있었다. 파랑이다가 붉어졌고, 볕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것이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그날 그 하늘로부터 태어난 그것은 어떤 것이 태어날 때 비명을 지르며 나타나는 것과 다르게 조용하고 얌전히 세상에 발을 내밀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닮아 지나치게 푸르면서도 또 다른 어떤 것을 닮아 빨갛고 빛났으며 때로 그런 것들마저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왜 울었을까. 나는 그렇게나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왜 울고야 말았을까. 그랬던 노을을 보면서 나는 어떤 이에게 그 지긋한 슬픔을 감추고 하늘 좀 봐, 정말 예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이는 눈에 그 하늘을 담고, 사진을 남기고, 다음날의 노을도 함께 볼 것을 약속했다. 나는 그게 정말 슬펐다. 그이에게 덧없이 아름다운 노을이 나에겐 덧없는 슬픔이어서.
고작 해가 지는 풍경에서 태어난 그것은 내내 나를 울게 했다. 고작 그날 울었던 기억으로부터 이어진 그것을 내내 볕 아래에 숨겨 두었다가, 기어코 해가 지게 되거든 꺼내놓고 내내 울음을 쏟았다. 해는 그저 자연한 빛을 가졌을 뿐이고, 해는 그저 자연스레 여기서 저기로 건너갔을 뿐인데, 해는 그렇게 자연했을 뿐인 걸 두고 나의 원망을 샀으니 해는 억울했을 것이고, 해마저도 그것을 미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야 말았으므로. 그래서 그것이 어느 볕 아래에나 숨어 있었으므로. 나는 내내 울더라도, 다음날의 노을은 진정으로 아름답다 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을마저 사라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울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