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얄팍하지 못하고 (2024)
얼마 전 집 앞에 작은 카페 하나가 오픈을 했다. 이곳은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로,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곳이다. 그런 조용한 곳에 카페가 덩그러니 생긴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가나? 손님이 있으려나, 오지랖 어린 걱정을 했다.
나는 매일 그 카페에 갔다. 누가 가나, 손님은 있으려나, 했는데 내가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 잔 테이크아웃 해왔고, 퇴근길에는 레모네이드나 초코라떼 같은 것을 사서 집에 들어갔다. 카페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내부에 테이블 하나 없는 작은 공간이었다. 대신에 카페 앞에 캠핑장에 있을 법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몇 개 있었는데, 주말이면 그곳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집 앞이니 왔다 갔다 부담이 없었고, 날씨가 좋은 때에 햇빛을 즐기기에 그만한 곳이 없었다.
길쭉하게 뻗은 나무 테이블에 나 혼자 앉아서 하늘을 본다. 플라스틱컵 표면에 물방울들이 맺힌 것을 손가락으로 슬슬 굴리면서 구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저 구름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뭘 따라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을 즈음 모처럼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의 바람은 뜨겁다. 바람이 분다 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눈을 감고 바람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 눈을 뜨니 길 건너편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봄에 꽃을 피웠던 그는 이제 푸른 나뭇잎만 달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는 꽤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던 봄, 딱 그때도 꽃이 피어 있었다. 길을 따라 이어진 돌담 틈에 나무 하나만 서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봄이 지나고, 꽃을 떨어뜨리고, 여름이 되어 비를 맞으며 잎사귀를 키우다가, 늦가을이 되면 나뭇잎을 떨어뜨리면서 맨몸으로 겨울을 났다. 나뭇잎은 어디로 갔을까.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이 차가워지면 그는 그 바람에 나뭇잎을 날린다. 나뭇잎은 바람을 타고 바람의 방향을 따라서 그곳으로 간다. 어딘지 모를 그곳으로. 바람을 따라 뛰다가 또 어디선가 굴러온 다른 잎사귀들과 거리 위를 한 바퀴 뱅글 돌고 또 어딘가로 날아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다. 바람이 부니까. 바람이 부니까 따라가는 것뿐이다. 바람이 불면 그이들은 바람을 타기 마련이니까. 어제 떨어진 옆자리 잎사귀도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걸 보아하니 나도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 되겠다, 하고.
그와 다르게 나는 나무 아래에 가만히 섰다. 바람이 불어도 바람을 탈 줄 모르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네, 하고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아볼 뿐이다. 바람을 따라나선 잎사귀들이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구르고 있을지 궁금해하면서도 바람을 따라나서진 않는다. 나는 바람에 날릴 정도로 그리 얄팍하지 못하고, 그리 가볍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다. 대신에 나는 땅을 발바닥 전체로 지긋하게 누르고 나무 옆에 서본다. 그가 오랜 시간 이곳에 서서 바람에 나뭇잎을 날려 보낸 것처럼, 나는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상들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바람을 타지 못하고 그대로 나무 아래에 떨어진 남은 나뭇잎들을 주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에 날릴 정도로 그리 얄팍하지 못한 것들이 양손에 가득 담겨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책상 앞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카페에서 들고 온 커피를 쪽쪽 빨아먹는다. 손가락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건드려 본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