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라
유서 2 (2024)
안녕하신가요. 김민주입니다. 어떤 말로 시작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시작해 봅니다. 누가 이 글을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남지 않은 세상에서 남은 생을 이어가게 될 모두가. 어제는,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유난히 버겁거나 유난히 힘들진 않았나요. 혹은 반대로 너무나 즐거운 하루를 보내셨을까요. 저는 아주 편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마 제가 죽지 않는다면 내일도 편안한 날을 보내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오늘 죽으려고 합니다.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저는 아주 울적하고 암울한 하루를 보냈어요.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컴컴한 때에 깨어났어요. 요즘 들어 가위에 자주 눌리니 잠을 통 이룰 수가 없습니다. 가위에 눌리지 않는 날에도 언제나 그런 시간에 일어나 버리고 말아요. 그렇게 깨어났을 때에 저는 아직 동이 트지 않았음에 한 번 울적한 마음을 쏟아 울어버리고, 또 이런 하루가 시작되었음에 태양을 끌어와 침대 귀퉁이에 내리꽂으며 울부짖어요. 너무 컴컴한 하루이지 않나요. 이런 하루가 반복되고 있어요.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아침에 내가 꽂아놨던 태양이 그대로 내 방에 갇혀서 내일 해가 뜨지 않게 될까 봐 걱정을 하느라 잠에 들지 못해요.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이에요.
그래서 죽는 것이냐, 겨우 그런 걸로 죽는 것이냐 하신다면, 아무래도 그렇다고 밖에 하지 못하겠어요. 지난해 겨울 보고 왔던 어느 바닷가를 떠올려 볼까요. 암벽을 따라 철제로 만들어진 길 위를 하염없이 걸었어요. 차가운 바람, 차가운 바람을 맞아 파도가 쳐요. 발아래로 보이는 바윗덩이들을 내려다보거든 바윗덩이를 파도가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어요. 저들은 그저 파도라서 자꾸 나아갈 뿐인데, 바위들이 가로막고 있으니 부딪칠 수밖에요. 산산이 부서진 바다가 작고 작은 아주 작은 물방울이 되었다가 다시 바다가 되어요. 다시 파도가 되고, 다시 바위를 때려요. 다시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가 다시 바다가 되고요. 눈동자 아래에서 그 바다가 데굴데굴 굴러요. 그때 보고 온 그 바다가요. 차가운 바람이 불고, 바다가 자꾸 바위들을 때려요. 맞는 것은 바위였음에도, 혹시 바다도 아프지 않았을까. 뭐, 그런 별 괴상한 생각을 해보면서요.
나는 바다였을까, 그 틈에 나있는 바위였을까, 그도 아니면 아주 작은 물방울이었을까. 나는 바다도 되지 못하고, 바위도 되지 못해요. 아주 작은 물방울도 되지 못하고요. 어쩜 아주 짧은 순간에 누군가에게 작은 물방울이었을지도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시 바다에 뒤섞이고, 그런 작은 물방울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모르겠지요. 아, 그것 참 좋다. 그런 작은 물방울이기만 했으면 좋겠다. 바다에 누구도 뛰어들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발을 헛디뎌 바위틈에 발이 끼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저 작은 물방울 하나에 소매 끝자락이 미미하게 젖었다가 볕을 받아 마르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니까 기억하지 말아 줄래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안녕했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남지 않은 세상에서 남은 생을 이어가게 될 모두가, 저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어제는, 오늘은 유난히 버겁거나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안녕했으면 좋겠거든요. 어떤 물보라 같은 이 짧은 글을 읽고 잠시 젖은 마음을 너무 염려치 마시고 다시 볕에 말릴 수 있다면 좋겠거든요.
이런 글을 왜 적어야 할까 생각해 보니, 하나의 작은 물방울로 태어났으니 한 방울만큼은 누군가를 적실 수 있었던 삶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라 미안합니다. 기억하겠다면, 어느 바닷가를 떠올려 주실래요?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부서지고 부서지는 물방울들, 그것만큼 하찮고 짧은 이 글 하나, 그것만.
그럼 안녕하셔요. 내일도요. 잘 지내요.
(물보라를 주제로 쓴 허구의 글입니다. 실제 유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