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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넌 Jul 19. 2024

이미 (2024)

끝인상

이미 (2024)


 너의 마지막이 기억나지 않아. 나에게 너의 마지막이 없었으니까. 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헤어지자고 말하는 너의 표정은 어땠을까. 무표정했을까. 편안했을까. 찡그리거나 화가 나있었을까. 슬퍼하거나 우울해했을까.

 헤어지자고 말하는 너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큰 목소리였을까, 작은 목소리였을까. 평소처럼 나긋나긋하게 말을 건넸을까, 조금은 격양된 채 말했을까.


 아마도 그런 게 어려워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목소리로 말해야 할지 정하지 못해서 단 몇 줄의 글자로 나와 헤어진 게 아닐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 봐.


20–년 -월 -일

ㅁ 카코이 돈부리 11:00-14:30
ㅁ 설빙 19:00-23:00
ㅁ 심리학개론 시험
ㅁ 이상심리학 시험

 얼마 전부터 감기 기운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 가기가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데, 오늘 상태를 보니 슬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핸드폰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마찬가지로 감기 기운이 있다던 니가 걱정됐지만 이틀 째 연락이 없는 게 괘씸해서 모르는 체하기로 했다.
 집에 와서 시험을 두 과목이나 봐야 했다. 집에 오자마자 예약해 놨던 빨랫감을 널어놓고 거실을 청소했다.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쯤 되니 너무 배가 고파서 라면을 먹을 생각이었다. 물을 올리고 라면을 넣어놓고서 방으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너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라면은 먹지 못 했다. 퉁퉁 불어 터져서 그냥 버렸다. 밤을 꼬박 새우고, 만료 기간에 거의 걸쳐서 두 과목의 시험을 끝냈다. 시험은 잘 본 것 같다. 너는 떠났고, 라면은 못 먹었지만.

 

 헤어지자고 말하는 너의 표정은 어땠을까.

 헤어지자고 말하는 너의 목소리는.


 그걸 들은 나의 표정과 목소리는 어땠을까.


 너도 그런 게 궁금해서 나를 다시 찾았던 걸까. 우리는 이미 끝났는데,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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