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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넌 Aug 23. 2024

반가워서 (2024)

안전거리

반가워서 (2024)



 철썩~


 해가 질 무렵, 민주는 무거운 몸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바람이 불어온다. 신발 밑창을 질질 끌며 익숙한 골목들을 지나쳐 학교 정문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을 빙 둘러 만들어 놓은 트랙 위를 사람들이 따라서 돌고 있다. 민주는 조회대 위에 서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하나둘 짝지어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 다른 사람들을 제치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각각 자신의 속도를 지키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멀미가 느껴졌다. 조회대에서 내려온 민주는 운동장 구석에서 담배를 꺼내 핀다. 시원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바람을 느끼면서, 그 바람에 날아가는 연기를 쳐다보면서 그 사이에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쉰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새내기로 입학한 그녀는 입학하기 전부터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섞여서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은 참 무섭다. 나만 하더라도 앞과 뒤가 참 다른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곳은 숨을 쉬기가 어렵다. 저들이 내 앞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내 뒤에서는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내가 그렇듯이. 어쩌면 나의 열여덟이 소용돌이로 휩쓸려 갔던 그런 일이 또 일어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 위로 나의 면면들이 파도가 되어 나부끼다가 다시 내게 돌아와 소용돌이를 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저이들의 뒤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역시 나의 뒷면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넘실넘실 나의 뒷면을 파도 위에 올려 이곳저곳으로 실어 나른다. 그랬대. 김민주가 그랬대. 그게 곧 사람들이 아는 내 앞면이 된다. 파도는 꽤나 거세져 민주는 그냥 그걸 보는 것 밖에, 그러다 휩쓸려 소용돌이의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런 파도에 휩쓸린 이는 쉽사리 파도를 두려워하게 된다. 민주는 새로 만나게 되는 이들의 파도가 다시 민주를 덮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을 느꼈다. 다시 파도 위에 민주는 홀로 서야 한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던 2년의 시간을 이곳에서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것을 위해 힘을 내야 한다는 것이 민주를 긴장하게 만든 이유였다.


 철썩~


 바람에 실려간 연기가 보이지 않게 될 즈음 드디어 운동장 트랙 위에 나온 민주는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시원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바람이 불어온다. 운동장 트랙 위로 넘실넘실 사람들이 돌고 있다. 민주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뱃멀미가 나서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람이 느껴질 때마다 민주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연기가 나지 않는 숨이 바람에 실려간다. 그 바람에 실려 있는 많은 숨들이 또 다른 바람을 타고 민주에게 불어온다. 시원하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바람에 이곳을 돌고 있는 사람들의 숨이 민주에게 닿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민주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철썩~

 민주야!


 그때 민주의 팔을 잡은 사람은 다빈이었다. 민주보다 조금 늦게 운동장에 도착한 그녀는 민주를 발견하고 반 바퀴를 뜀박질해서 따라왔다. 놀란 민주가 휘청거리면서 뒤돌아 다빈을 발견하고, 다빈에게 폭 안긴다. 놀란 다빈이 왜 그러느냐 묻는다.


 아냐, 아냐. 반가워서.


 어떤 파도는 또 다른 어떤 파도에 맞서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끌고 간다. 철썩. 철썩. 민주의 곁에 새로운 파도가 생긴다. 민주는 팔짱을 껴오는 다빈의 팔을 의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 나간다. 해가 떨어지면서 바람이 조금 선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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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썩~


 실은 한참 전부터 너를 보고 있었다. 높은 조회대 위에 가만히 서 있을 때부터 그러다 운동장 구석으로 가 혼자 담배를 피우고, 그 흩어지는 연기를 보는 너의 시선이 흐릿하게 멀어져 가는 것까지도,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너는 항상 그렇게 혼자 있곤 하더라. 언젠가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그때도 너는 혼자 있었지. 같이 밥 먹으러 갈래요? 물으니 엇, 네, 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우리는 늘 같이 수업을 듣고, 우리는 매일 만나는데도 언제나 내가 먼저 밥 같이 먹을래? 물어야 했다. 너는 자연스럽게 혼자이고, 나는 자연스럽게 혼자인 너를 가만 두질 못 한다.


 너는 그렇게 언제나 혼자 있으려고 하면서, 너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에 기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여. 내 옆에, 혹은 누군가의 옆에 있는 너는 대부분 즐거워 보여. 언제나 다정하고, 늘 따스하고, 항상 웃고 있는 너. 그런 너는 왜 자꾸 혼자가 되려고 할까. 나에게 그렇게 다정하게 굴고선, 우리에게 그렇게 따스한 웃음을 보여주고선 왜 자꾸 혼자가 되려고만 할까. 아마도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이유가. 그럼 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혼자인 너를 가만두질 못하는 인간은 널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도 아마 이유가 있을 거야. 많은 이유 중에 단연 첫째는 내가 널 좋아한다는 것일 테고, 그다음은 혼자인 니가 너무 위태로워 보이곤 해서, 혼자인 네가 너무 쓸쓸해 보여 그렇겠지. 어느 날 드넓은 바다의 한가운데에 작은 배 한 척이 놓여. 갑자기 휘몰아친 폭풍우에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듯 흔들리고 있는 작은 배 한 척이 돼. 예보 없이 찾아온 재앙에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면서도, 결코 뒤집어지진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하찮은 배 말이야. 니가 그런 배가 돼. 멀리 작은 섬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서 그 하찮은 배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곤 해. 결국 뒤집어질 것이라고, 결국 죽고 말 거라고. 근데 있잖아, 나는 그런 하찮은 배를 좋아하곤 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끝없이 발버둥 치는 니가 좋아. 맨몸으로라도 기어코 이 섬에 도달한 너를. 그래서 고민하곤 해. 너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 혼자 있는 너의 어느 곳까지 내가 닿아도 될 것인지, 너의 어느 곳까지 내가 좋아해도 되는 건지. 홀로 발가벗고 외딴섬에 멀뚱히 서게 된 너에게 나의 담요 한 장 따위를 덮어줘도 되는 건지.


철썩~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너를 멀리서 보고 있었다. 넌 여전히, 미미한 시선으로 연기마저 희미해진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운동장 트랙 위로 올라왔다. 나보다 반바퀴 앞, 혹은 그 뒤에서 돌고 있는 너로부터 날아온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콧속을 맴돈다. 반바퀴나 돌아서 내 앞까지 왔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너의 냄새라고 믿었어. 담배 냄새는 참 싫은데, 폭풍 끝에 지친 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을 너를 상상하며 냄새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철썩~

 민주야!


 숨을 헐떡이면서 너의 팔을 붙잡아 돌려세우자 어떠한 저항감도 없이 그대로 내 품에 안겨 들어왔다. 나보다 몇은 큰 니가 실은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초라하게 쪼그라든 등을 토닥이면서 왜 그러느냐 물었다.


 아냐, 아냐. 반가워서.


 나는 여전히 너의 배를 어디에서 지켜보면 좋을지 모르겠어. 다만 너의 흰 팔에 내 팔을 휙 둘러봐. 어찌 됐든 나도 니가 반가워서. 조금은 선선해진 바람 사이로 누군가의 담배 냄새가 흩어져 날아가. 날아가는 것들 사이에 우리의 짧았던 포옹을 조금 띄워서 보내. 내가 없는 어느 때에 또 폭풍을 만나거든, 나의 작은 바람이 너의 돛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좋겠어서. 네 팔에 엮여 있는 이 왼팔 하나가 첨벙 대며 작은 파도를 만들어, 너의 배가 너의 섬으로 데려다줄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서. 그 섬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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