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무심코 (2024)
나는 무심코 어떤 컵 안에 들어갔다. 빨대 위에 잠깐 올라가 쉴 생각 뿐이었다. 종일 날아다니는 것은 힘들다. 물론, 날개가 있어서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종일 날았고, 아마 내일도, 내일 모레에도 이곳저곳을 누비며 날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을 생각하니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날면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엿들었다. 실수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실수가 뭐지? 실수라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어깨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 머리카락 위에도 올라가본다. 나는 적절히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날고 앉아있는 곳을 따라 손을 허우적거렸다. 내가 적절히 쉴 곳을 찾는 건 힘들어 보였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빨대였다. 다른 컵의 빨대들과 달리 혼자만 노란색을 띈 빨대. 그래서 나는 그걸 골랐다. 노란색. 노란색이어서.
길가의 작은 쓰레기봉투에서 태어난 나는, 그 주변을 내내 떠돌았다. 나와 함께 태어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 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러다가 향긋한 향기가 나서 그뒤를 쫓았다. 그사람에게서는 슬쩍 달콤한, 아니, 새콤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 잘 모르겠다. 그저 그 향기가 내 날개를 슬슬 끌어당기는 것 같았고, 나는 그것에 반해 슬슬 끌려온 것 뿐이다. 휘휘 날아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난 것 같다. 그 사이에 사람이랄 건 단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고,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어보였다. 지치고 지쳤다. 긴 테이블 위를 뱅글뱅글 걷는 것도, 밤이 되면 밖의 불빛을 보면서 창 앞에 날아올라보는 일도, 뭐든 지쳤다. 그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매끈하고 노란 동그라미의 끝. 나는 사람들이 제각각 어떤 화면들을 보는 것을 곁눈질로 한바퀴 살펴본 뒤에 그 동그라미의 끝에 앉았다. 마냥 매끈하다기엔, 뭔지 모를 게 묻어있었다. 아무래도 빨대이니 안에 들어있는 음료가 슬쩍 묻어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슬며시 맛을 봤는데 달달하진 않았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물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게 뭔지 알고 싶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다 똑같이 찰방거리는데, 모두가 다른 맛이 난다. 나는 입가를 그것에 대고 핥아보았다. 잠깐 컵의 주인을 살펴본다.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여기서 실수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 9명처럼 입을 열고 어떤 목소리라도 낼 수 있다면 이게 뭐냐고 물어볼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 하니, 빨대의 동그란 끝을 따라서 돌기 시작했다. 최대한 이것의 맛을 보기 위해서. 나는 발끝에 묻은 것까지 싹싹 핥기 시작했다. 이런걸로라도 목을 좀 축이니 살 것 같았다.
그때였다. 발이 미끄러진 것이다. 나는 그대로 컵 안으로 빠졌다. 내가 빠지면서 일순간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근처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느끼면서 발을 허우적거려본다. 이 정체모를 것은 꽤나 깊은지, 발이 어디에 닿을 줄을 몰랐다. 날개가 아직 젖지 않아 몸이 가라앉진 않고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다. 나는 이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 아아.
아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이 노란 빨대를 고른 것? 어떤 향을 쫓아 이곳에 들어온 것? 내가 그 향이 나오기 전까지 그 앞에서만 헤매고 있었던 것? 어떤 작은 쓰레기봉투에서 태어난 것?
컵이 번쩍 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곤 컴컴하고 깊은 물과 함께 휩쓸렸다. 허우적댈 새도 없이 그대로 휩쓸려서 함께 쏟아져 나왔다. 물이 한곳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아마도 싱크대인 것 같았다. 구석으로 힘겹게 기어갔다. 날개가 흠뻑 젖어 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사람들이 우루루 빠져나갈 때 나는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 사이에 몸을 숨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때 어디선가 달달한 냄새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날개가 달달한 바람을 맞아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민도 하지 않고 바람 위에 날갯짓을 더한다. 아, 향긋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