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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넌 Oct 18. 2024

숨 30934

한숨

숨 1.

나를 아직도 사랑해? 

아니.


숨 2.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과 지냈던 한달의 시간.


숨 3. - 숨 34.

당신이 잠들면 울며 지새웠던 서른 한 번의 밤.


숨 35. - 숨 66.

그 서른 한 번의 밤 사이 몰래 쓸어보던 당신의 기다란 속눈썹.


숨 67.

창을 타고 들어온 가로등빛에 슬며시 비친 당신의 뺨과 이제는 맘 편히 그것을 매만지지 못하던 나의 손.


숨 68.

우리 역시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일하는 사이 남겨져 있던 당신의 메세지.


숨 69. 숨 70. 숨 71. 숨 72. 숨 73. 숨 74. 숨 75.

당신과 쌓아온 짐을 혼자 남아 정리하던 일곱 번의 밤.


숨 76. - 숨 87.

뒤늦게 알아차린 당신이 숨겨온 다른 연인.


숨 88.

잘 지내?

응, 뭐 그렇지.

남자친구도 잘 지내고?

어, 음. 헤어졌어. 헤어진 지 좀 됐어.

헤어졌다고? 왜? 무슨 일 있었어?

뭐, 그렇게 됐어.

오래 만나지 않았나?

뭐, 그렇지.


숨 89. - 숨 20089.

지워진, 2만 장에 가까운 사진들.


숨 20090.

4년 만에 홀로 보내는 연말.


숨 20091. -


숨 20349. -


숨 25094. -


숨 29834. -


숨 30934. -



숨.


숨.



 당신이 없어서 숨을 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당신이 없어서 숨을 쉬게 되었어. 그리고 이제야 당신이 없는 숨을 쉬어. 어쩌면 조금 섞여 있을지도. 그러나 더 이상 당신이 섞인 몇 번째 숨인지 세어보진 않게 된 것 같아. 당신이 녹은 숨을 쉬면서, 턱턱 막히던 숨이 이제는 조금 틔여. 그래서 가끔 당신은 어떨지, 당신은 내 생각을 하지 않을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하다가. 하다가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당신이 내 곁에 없어서 다행이다.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당신이 없어서. 참. 이상하지. 그 많은 숨 뒤로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그러고 보면, 셀 수 없이 많았던 그 숨을 쉬었던 것이 어찌나 대견스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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