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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넌 Oct 11. 2024

행복한 민주의 행복한 서울살이 (2024)

서울

행복한 민주의 행복한 서울살이 (2024)


 6년을 살았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던 그곳에서 6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고, 울면서 그곳을 떠나왔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던 골목길을 그곳에 두고, 내가 사랑하던 연인을 그곳에 두고, 내가 좋아했던 라멘집, 단골 포차와 동네 슈퍼, 봄이 되면 집앞을 물들이던 벚꽃나무, 가을 즈음 동생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던 자그만 공터,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학우들, 무릎이 닳도록 오르내렸던 학교 계단, 매일 점심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가 사먹던 주먹밥, 야작을 하다가 내려와 친구와 담배를 피우던 미대 앞 벤치, 그 앞의 가로등 하나, 그런 것들을 그곳에 두고 이곳으로 왔다.


 나는 서울에 오는 게 싫었다. 내가 사랑에 빠졌던 6년이 모두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나는 사랑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랑과 행복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실은 막상 그렇게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았으면서 떠나려고 생각하니 울적해졌다. 나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을 하기도 했고, 빈 과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우는 날도 많았고, 그쯤부터 학교 상담센터의 권유로 심리상담을 받고 있었으며, 언젠가 짝사랑하던 오빠에게 차였던 것도, 친구들과 둘러 앉아 신나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며 꺼이꺼이 소리를 내어 울던 길도, 우울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멍하니 앉아있던 정자도, 모두 그곳에 있었는데도 막상 그곳을 떠난다니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불행한 날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서울에 올라온 지 8년이 되었다. 그렇게 오기 싫었던 서울에서 벌써. 나는 이곳에서 또 누군가와 이별을 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가 헤어지고, 어느 학교의 캠퍼스에 앉아 쓸쓸히 별을 헤아려 보기도, 우울증이 심해져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비좁은 방에 구겨 넣어 놓은 벙커 침대의 위에 누워 얼굴 앞에 다가와 있는 천장을 보면서 엉엉 울기도 했다. 아마도 그곳에 사랑을 두고 와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 8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사이에 조금은 어른스러운 30대가 되었고.

 지금은 이별했지만, 덧없이 행복한 사랑을 나눈 이가 있었고.

 대전에서도 나를 보러 오는 친구가 생겼고.

 퇴근하고 불쑥 불러내 같이 그림을 그리는 친구.

 늦은 저녁 혼자 다리를 건너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던 어느 날.

 미술관 관람을 갔다가 탄 리프트와 그 위에서 내려다 본 강가의 버드나무.

 출근하며 익숙하게 올라타는 하늘색 버스.

 땋은 내 머리카락을 보면서 아이돌 같다고 좋아하는 학원 아이들.

 3주마다 병원에 가는 길에 매번 살펴보는 동그란 화단.

 하얀 테이블 위에서 늦은 시간까지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

 조용한 가운데 울리는 타자소리.

 익숙하게 인사를 하는 단골 카페의 사장님.

 올라간 입꼬리.

 웃음소리.

 서울.

 서울.


 울며 불며 올라온 서울에서도. 그러므로 나는 행복했고, 행복할 것이다. 서울에서도. 대전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불행하고, 불행할지언정, 불행할지라도.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한 서울의 행복한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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