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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2025)

단맛, 쓴맛

by 김민주

배꼽 (2025)


당신과 마시는 술은 꽤 달았던 것 같아. 그래서 당신이랑 있으면 자꾸 술을 마시고 싶었어. 당신과 술을 마시는 게 즐겁고 좋았거든. 왜 그 술이 그렇게나 달았을까 생각해 보면 사실은 술이 달았던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무척 좋아했던 거였겠지 싶어.


그 사람은 작은 이자카야의 좁은 통로 사이에 앉아서 나를 향해 몸을 틀어 앉곤 했다. 그러면서 “배꼽의 방향이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대”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럼 나는 그 사람의 배 언저리를 쿡 찌르면서 “배꼽이 나를 향하고 있네”하고 웃었고, 그 사람은 “응, 내 배꼽은 항상 너를 향하고 있어”라며 우쭐댔다. 그러면서 내게 “당신 배꼽은 앞을 보고 있네, 왜 나를 안 보고 있어?”라고 물어왔고, 그 말에 나는 그저 배시시 웃으면서 “배꼽마저 당신을 향해 앉는 건 좀 부끄러워” 같은 말을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당신은 입을 한 번 비죽 내밀어 보이곤 나를 자신을 향하도록 돌려 앉혀 놓았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 다시 몸을 앞으로 돌려 앉았다. 배꼽 같은 거 알 게 뭐람, 당신의 배꼽이 늘 나를 향해 있는 건 좋으면서도 내 배꼽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당신과 마시는 술은 늘 달콤해서, 적당히 마시기가 힘들었다. 나는 늘 취했고, 취해서 얼토당토않는 얘기를 하고, 시답잖은 장난을 치면서 당신을 놀리고, 결국엔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다음날이 되곤 했다. 눈을 뜨니 작업실 침대였다. 잠들어 있는 당신을 흔들어 깨웠다. 나는 울고 있었고, 당신은 술에 취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컴컴한 천장을 보는 게 무서웠다. 그곳에 나 혼자 깨어 있는 게 싫었다. 정말 이기적이게도 그런 이유로 나는 당신을 흔들어 깨워야 했다. 눈이 어둠에 조금 익숙해져 흐릿하게 실루엣이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당신이 눈을 뜨고, 내 손을 잡고 “산책하러 갈까?”라고 물어왔다. 그 말이 너무 달달하면서, 너무 써서 당신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아냐, 괜찮아.


나는 여전히 술을 좋아한다. 그때는 한창 당신 말고는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지 한동안 술을 마시면 당신이 생각나곤 했다. 벌겋게 취한 얼굴로 내 눈을 깊이 쳐다보면서, 내 허리춤을 잡고 자신을 향해 돌려 앉히던 손길 같은 게 생각났다. 봐봐, 내 배꼽은 항상 너를 향해 있잖아. 술을 마시면 늘 당신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문득 내 배꼽이 지금 어딜 보고 있나 신경 쓰곤 했다. 배꼽 같은 거 알 게 뭐람, 배꼽은 저 사람을 보고 있는데 나는 당신 목소리를 생각하고 있다.


혼자 마시는 술도 어느 땐 달았어. 그런데 그게 왜 그리 쓸쓸한 것인지. 당신이 없는 곳을 향한 배꼽과 이젠 볼 수 없는 당신을 향한 마음 같은 게 술잔에 고여서 달면서 쓴 술을 만든 것이 틀림없다. 당신과 마시는 술은 꽤 달았어. 그래서 나는 이제 달달한 술도 달달하게만 먹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생각해 보면 당신의 단맛이 이렇게나 쓰게 남아버렸네 싶어. 분명. 당신의 배꼽은 늘 나를 향해 있었는데. 배꼽 같은 거. 알 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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