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 완벽
울퉁불퉁해서. (2025)
너에게는 구멍이 있어. 늘 있었지,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아마도 네가 죽을 때까지 그 구멍은 있을 거야. 어느 때에 그 구멍은 아주 작아지고, 어느 때에 그 구멍은 아주 커져. 혹은 매번 같은 크기의 구멍일지라도 너는 그것을 아주 작게 느끼기도, 아주 크게 느끼기도 하지.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는 아무도 모를 거야. 혹은 알고 있다고 해도 그 크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이런 구멍이 있다고 생각해. 아주 작을 수도, 아주 클 수도, 아주 작아질 수도, 아주 커질 수도 있는. 누구나 평생 구멍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야. 누군가는 한 개가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수없이 많을 수도 있어. 그것들 중에서는 어떤 노력과 시간 같은 것들에 의해 메워지는 것들도 있고, 절대 그럴 수 없는 것도 있을지 몰라. 모두가 그렇듯 너도 역시 그런 구멍을 갖고 있는 거야. 크고 작은 구멍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몇 개씩 가지고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
내가 그 구멍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꽤 깊은 상실감에 빠졌어. 나에게 구멍이 있고, 이 구멍을 어찌할 도리가 없이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절망스러웠거든. 그리고 그 구멍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많은 것들을 해왔어. 틀어막을 무언가를 찾아 끼워 넣어 보기도 하고, 주변 것들을 당겨와서 틈을 줄여보려고도 하고, 심지어는 구멍이 없다는 듯이 모른 척을 해보기도 했지. 그러면 이따금씩 어떤 구멍은 막히기도 하더라. 그런데도 정말 나를 절망스럽게 만든 것은 그 구멍이 처음부터 없었던 게 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메워도 매끈하지 않은 그것의 표면과 그렇게라도 만들어 놓은 곳 옆에 또다른 구멍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어. 나는 애초에 구멍이 없는 사람이고 싶었던 거야. 그것만이 나일 수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 절망이 내게 또 다른 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걸 알고 나서도 나는 계속, 계속 그 틈에 얼굴을 밀어 넣고서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들여다 보고, 당겨 보고, 무언가를 넣어 봤어. 그게 그 틈을 점점 더 큰 구멍으로 만들고 있다는 건 한참 나중에야 알았지.
어떤 구멍은 있지, 언젠가 메워지겠거니 하면서 그냥 내가 살 수 있는 하루를 살아내다보면 메워지기도 하는 것 같아. 어느 순간 보면 조금씩 차올라 있는 것이 있더라고. 그것 참 신기하지. 나는 그저 살아낼 수 있는 하루들을 보냈을 뿐인데. 그런데 그 하루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어? 물론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 양, 그 구멍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마냥 매끈한 알맹이를 가지긴 힘들겠지. 하지만 아주 작은 의혹으로부터 그 모든 게 괜찮아지곤 했어. 왜 매끈한 알맹이를 가져야 하는데?
나는 내가 가진 구멍들이, 어쩌면 그저 하나의 흠이면서도 그것조차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알맹이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나는 그 소중한 알맹이를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그로부터 좌절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다시 무언가를 해보고야 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말했듯이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알맹이를 완벽하게 만들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그 매끈하지 못한 알맹이가 다른 형태로 완성될 것을 기대해. 울퉁불퉁하고, 못나고, 구멍이 송송 난. 그런 내가 살고, 살아가다가 죽어서 이런 모양이 되었다, 하면서 보여줄 것을 기대하곤 해. 그래서 너도 구멍이 난 인간이지만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네가 생각하는 나 꽤 괜찮은 사람이지 않았어? 근데 나 이렇게 울퉁불퉁하곤 했어, 근데도 나 퍽 괜찮았지? 네가 너의 구멍을 위해 노력한 것들이 너의 구멍을 막지 못하더라도 너도 또 다른 모양으로 완성되곤 할 거야, 나처럼. 그런 말을 너에게 해주고 싶었어. 완벽하지 않은 너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