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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결, 틈

by 김민주

<크루아상>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신호등을 기다리며 건너편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건너의 상가 건물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그 자리는 내가 종종 혼자 술을 마시러 가던 작은 술집이 있던 곳이었다. 언젠가 간만에 친구들을 데리고 그곳에 갔을 때, 사장님은 "오랜만에 오셨네요. "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멋쩍게 네에, 하고 허허 웃으니 "저희 이번 주까지 영업하고 폐업하거든요, 오늘 많이 드시고 가세요. "라면서 울상을 지었다. 나도 함께 울상을 지으며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최근 들어 자주 못 가긴 했지만, 내가 우 동네에서 꽤 애정하는 장소였기 때문에 내심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가게가 결국 떠났는지 새로운 가게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내가 애정하던 것을 밀어냈나 싶어 나는 그 가게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길을 건넜다.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그 가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길 모퉁이에 있는 철물점이나 오래된 피자 가게, 그 옆의 삼겹살 집 같은 것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빵 가게였다. 제빵모를 쓰고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빵 그림이 통유리를 따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빵을 그리 자주 먹지 않는 나로서는 빵집이 들어온 게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 빵집에 들어와 두리번거리면서 빵을 고르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해놨나 보자, 하면서 힐끔힐끔 빵집 안을 훔쳐보다가 너무도 달달한 버터 냄새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빵집 문을 열어 버린 것이다. 식빵이나 크루아상 같은 것을 골랐다. 윤기가 도는 겉면에 홀렸다. 엄마에게 받은 반찬거리가 이미 한 짐, 손에 큰 보냉백을 가득 들고 있었지만 계산하고 받은 빵 봉투를 손에 또 욱여넣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받은 반찬들을 대충 냉장고 앞에 흘려 놓고,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덜렁덜렁 들고 온 빵 봉투의 겉면을 슬슬 쓸어 만져봤다. 거친 듯 매끄러운 종이의 면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입구를 열어본다. 빵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우유식빵과 크루아상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무엇을 먼저 먹을지 고민했다. 어디, 얼마나 맛있나 보자.


나는 엄마가 크루아상을 먹을 때 늘 그렇듯 결을 따라 방을 주욱 찢어봤다. 내가 당기고 미는 방향을 따라 부드럽게 찢어지는 것을 본다. 그것은 켜켜이 쌓여 있으면서도 사이사이 틈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다 크루아상을 만드는 영상을 봤던 게 생각난다. 잘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를 펼치고, 버터를 발라 준다. 냉동 보관 후에 다시 펼쳐 버터를 바르고, 또 냉동 보관을 하며 겹을 만든다. 꺼낸 덩어리를 밀대로 밀어 크루아상 모양을 잡기 위해 한쪽이 뾰족한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 준다. 그리고 이등변 삼각형의 짧은 변을 잡아 돌돌 말아준다. 달걀물을 발라 예열한 오븐에서 구우면 반질반질한 크루아상이 만들어진단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든 그 결을 죽죽 찢어봤다. 제빵을 해보지 않은 나는 모든 크루아상이 이렇게 만들어질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을 만들기 위해서 꽤 많은 정성이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됐다. 나는 그 결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그게 문제라니까.


점심을 먹으면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뭐가 문제라고, 도대체. 반박할 말을 찾아 머릿속을 헤매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가 문제라고, 싶으면서도 그게 내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말이 맞지. 나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 때문에 벌써 8년 넘게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긴 시간 이 약을 먹으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죽죽 찢으면 찢을수록 그 사이사이의 공백이 드러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엄마도 그걸 아는 것이다. 너는 그게 문제야, 찢으면 찢는 대로 틈이 보이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그 무엇보다도 그게 문제라고 하는 말이 싫어서 치가 떨렸다.


크루아상은 어떤 결을 만들기 위해 밀대로 밀어 버터를 바르고 접는단다. 또 그 결을 쌓기 위해서 냉동실에서의 20분을 견딘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결과 결이 생긴단다. 나는 점시 위에 죽죽 찢어놓은 크루아상의 작은 조각들과 남은 크루아상 반쪽을 번갈아 쳐다봤다. 찢어진 조각들은 어느 때 크루아상이었던, 허나 더 이상 크루아상으로 보이지 않는, 그저 어떤 조각들로 보였다. 나는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먹었다. 하나. 하나. 깨작깨작 주워 먹었다. 조각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남은 반쪽을 한입에 물어 오물오물 씹었다. 입 안에서 크루아상이 씹히고, 녹았다.

퇴근길 같은 때에 나는 자주 그 빵집에 들러 크루아상을 사 오게 되었다. 입에 적당히 들어갈 만큼 3등분 쯤 되게 크루아상을 찢어 놓고, 한 조각씩 입으로 잘라먹게 됐다. 그럼 입 안에서 그 층과 틈이 적당히 기분 좋은 맛과 향을 냈다.



너는 그게 문제라니까.


통화를 하면서 엄마가 또 그런 말을 했다. 나는 크루아상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면서 대충 맞아, 맞아, 하고 대답했다. 반박할 말을 찾아 머릿속을 헤매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크루아상을 들고 나타났다. 의아하긴 했지만, 크루아상이면 됐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엄마, 나는 크루아상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몰라, 나도.


통화를 마치고, 남은 한 조각을 입에 물어본다. 크루아상은 틈을 따라 찢어지면서도 결을 가지고 있다. 그 틈을 만들어 놓아서, 그 위에 또 다른 층을 쌓아 올릴 수 있다. 찢으면 찢는 대로 틈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크루아상은 원래 그런 빵이라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맛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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