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시각
<허무맹랑한 로맨스 소설>
어때. 내가 말했던 노래야. ”너는 달을 볼 때 눈이 커졌고 나는 너의 눈에 비친 것을 보네 네가 사랑하는 것이 나와 같아 나는 너를 보네“ 너한테는 이 노래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어. 나는 이 노래가 꽤 달콤하고 꽤 사랑스럽다가도 꽤 슬프기도 해.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 노래를 들은 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기대를 하곤 해. 나는 네 눈을 보고 있거든.
나는 이 노래를 듣고 네 눈을 상상해. 너는 어떤 것을 보고 있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봐. 어느날의 파란 하늘, 조금 흐리다면 조금의 구름들을. 버스 정류장 근처의 이름 모를 풀잎 같은 것, 이곳에 오면서 보았던 키가 작은 나무나 벽에 걸려 있는 어떤 사람의 사진, 용을 닮은 바위 그림과 웃고 있는 사람들의 입매, 창밖으로 보이는 다리, 반짝이는 강. 난 참 그런 것들이 자꾸 보여.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나는 자꾸 네 눈을 보고,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얼까. 너는 무얼 보고 있을까, 그런 걸 상상해 보게 되나 봐.
네가 사랑하는 것은 무얼까. 네가 사랑하는 것이 나와 같진 않을까. 그래서 나는 네 눈에 비친 것을 보면서 아, 내 사랑, 그런 걸 깨닫게 되진 않을까. 그래서 허무맹랑한 로맨스 소설을 써 봐.
<허무맹랑한 로맨스 소설>
어떤 날 이후, 우리는 꽤 가까워졌다. 가까워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 사람을 잘 몰랐고, 그 사람도 나를 잘 몰랐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눈을 맞췄다. 좋아하는 것을 자꾸 보는 나는 그 사람의 눈을 자꾸 봤고, 그러면 그 사람의 눈에 담긴 것들을 따라갔다. 잠깐씩 눈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저 사람도 좋아하는 걸 보는 사람은 아닐까 괜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은 자꾸 눈에 넣고 싶어서, 자꾸 그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그 사람이 보는 걸 따라 보았다.
아직 그 사람이 무얼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우리가 같은 것을 좋아할지도, 라고 생각했던 기대와 다르게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도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 그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있는 그 눈이 사랑스러울 것이고, 나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그 사람의 눈을 닮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것이 더 많아지겠다는 사랑스러운 상상을 해본다.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잘 쓰지 않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저 허무맹랑한 소설일 뿐인데도, 허둥지둥 써 버렸어. 마치 벌써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저 소설일 뿐인데. 나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