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
죽음도 복이라면 (2025)
모든 게 죽음으로 향할 때가 있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죽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구나 한 번쯤 겪곤 하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에게 힘든 시간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어떤 것이었다. 죽지 않고 버티면 이것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나 기대도 없었다. 내 인생은 죽고 싶을 때와 죽지 못할 때, 죽을까 봐 겁에 질려 있을 때로 나뉘었다.
처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12살 무렵이었다. 그때는 죽는 게 너무 무서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너무 무서웠다. 매일 밤 내가 왜 태어났을까 곱씹으며 고민하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다음은 15살, 17살, 19살, 22살, 25살. 그리고 13살, 14살, 아니면 16살, 18살, 20살, 21살, 23살, 24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때에는 내가 언제 또 죽고 싶어 하게 될까 불안에 떨면서 지냈다. 나는 죽고 싶거나 죽지 못하거나 죽을까 봐 겁에 질려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27살이었다. 막 서울에 올라왔을 때였다. 내가 서울에 올라오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같이 살기로 했던 친동생이 제주도로 떠났다. 한 달 뒤에 동생이 돌아왔을 때 나는 몸무게가 20kg 가까이 줄어 바싹 말라 있었고, 2시간 이상 잠드는 날이 없었다. 매일 가위에 눌렸다. 잠드는 게 괴롭고 힘들었다. 오늘 같은 날이 내일도 있다고? 내일도 오늘처럼 버티는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방에는 볕이 들지 않아 늘 캄캄했다. 나는 좁은 방에 겨우 끼워 넣은 벙커 침대에 누워서 눈앞까지 다가온 천장을 발로 차면서 소리 없이 울었다. 내가 제일 무서웠던 것은 12살, 그다음은 15살, 17살, 19살, 22살, 25살, 그리고 지금 다시 지옥 같은 날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거울 속의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면서 끝없는 혼잣말을 늘어놓고, 어떻게 죽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밤. 그래서 나는 그다음이 무서웠다. 나는 또 죽고 싶어 할 거야.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아마도 29살, 아니면 30살 즈음에 27살의 나를 원망할 것을 생각하면 두려웠다. 그때 왜 죽지 않았어, 네가 그때 죽지 않아서 내가 또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25살에 죽지 않은 나를 원망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고 있으면 그건 안 봐도 뻔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나 스스로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왜 그때 죽지 않았어. 그때라면 죽을 수도 있었어. 나는 내가 무서웠다. 어디까지 나를 미워할 수 있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으니까.
정말 이상하게도,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마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울고 불고 바닥을 구르면서는, 뿌옇고 흐린 시야로는, 울음소리에 귀가 먹먹할 때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들. 나의 죽음이 무엇으로 남을 것인지, 나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지, 죽음이 더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서야 나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서로 시작했다. 몇 날 며칠에 걸쳐 길고 긴 유서를 썼다. 울고, 또 울고, 또 울면서 엄마에게 남기는 유서를 마무리 지었을 때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구나, 마음속에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구나, 그런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이 통탄스러웠다. 그렇게 긴 유서를 적어 놓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작은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우느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어느 날은 울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었다. 언젠가는 하염없이 하소연하는 글을 쓰고, 언젠가는 하루의 나를 관찰하는 글을, 또 언젠가는 과거의, 아니면 지금의 공허함을 묘사하는 글을 썼다. 어떤 것으로부터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나는 왜 제자리걸음을 하듯 다시 죽음으로 돌아오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2-3개월에 걸쳐서 사람들에게 남기는 편지를 썼다.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나의 죽음을 설득하는 글.
나는 여지없이 죽음으로 가고 있었다. 나의 죽음을 위해 남기는 것들은 그렇게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내 마음이 담긴 글들이 쌓일수록, 내가 죽음과 더 가까이 갈수록, 나는 조금씩 죽음과 멀어지고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를 옥죄어 왔던 반복되는 불안과 공허, 그것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정말 내 인생의 끝에 있을까? 그야말로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내 인생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차고 끝이 나 버렸을 것이다. 그것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내가 내 손으로 내 인생에 그런 것들을 담아 놓고, 또 내 입으로 그것뿐이라고 선포하면서 죽어간다니. 그런 생각을 할 즘에 소설을 한 권 썼다. 죽는다고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었다니, 할 말들을 어디 마음껏 해보자.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남겨 놓은 나를 죽이자,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하나 죽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닐 텐데도 나는 그 녀석이 죽을 때 마침내 소리 내어서 울 수 있었다.
죽음도 복이라면. 나는 아마 계속 이런 식으로 살 것이다. 나는 또 끝도 모르고 나를 미워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래서 또 죽을 것을 마음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내 인생은 모든 게 죽음으로 향하고 있고, 죽음이 내 인생의 답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이제 내가 죽을 것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둥켜안고 마음을 쏟고, 그 소박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자꾸 글을 쓴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 그림이 될 어떤 그림을 상상하면서 그것이 내 마지막 그림이라면 오늘 좀 더 마음이 담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죽음이 무엇으로 남을지 도통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사랑으로 남았으면 해서 사랑을 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답이 죽음과 함께 있다면, 내가 어떤 답을 얻어낼 것인지 골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 수 있다. 하루를 보낼 때 내일도 사랑하며 살아갈 나를 기대할 수 있다. 이제 내 인생은 죽고 싶어 했을 때와 죽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해냈을 때,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몰두하는 때로 나뉜다. 그래서 결국 죽을 때에, 나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서, 아마 죽으면서도 그런 말을 할 것이다. 죽음도 복이라면, 죽음과 함께 하는 내 인생은 복 많은 인생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