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송이 Mar 10. 2018

나의 서울

작가 지망생의 습작(習作) #2

※ 커버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서울을 책으로 익혔다. 

 20살 가을과 겨울 사이, 자취방 이불속에서 한 장 씩 꾹꾹 눌러가며 읽느라 종이 끝이 너덜 해진 그 책으로 서울을 배웠다.  


이도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정말 멋진 책이다.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내게 있어 지난 7년간 부동(不動)의 베스트셀러 1위로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 공진솔이 자주 들리던 인사동 찻집 '지대방', 앉은자리에서 시집 한 권을 읽어냈던 광화문 교보문고, 매년 마지막 날 제야의 범종을 울리는 종각, 낙원상가와 인사동, 단성사 극장이 보이는 종로 3가, 세운 상가와 종묘가 마주 보고 선 종로 4가, 도매 약국이 즐비한 종로 5가, 그리고 동대문까지의 거리. 그녀가 다니던 라디오국이 위치한 여의도, 이건과 함께 걸었던 겨울밤의 마포대교, 이건의 집이 있는 이화동 산 1-1번지, 처음으로 진심을 내보였던 새벽녘의 낙산공원.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나로서는 전혀 알 도리가 없는 서울의 모습이지만, 그 책을 통해서 마치 내가 지내던 곳인 듯 생생하게 떠올려졌다. 그때의 서울은 낭만의 도시였다. 




  24살 여름, 입사와 함께 서울에 집을 구했다. 신촌에 위치한 6평짜리 작은 복층 오피스텔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월세는 비쌌고, 일은 바빠 여유가 없었지만 공진솔이 다니던 길을 부단히도 따라 걸었다. 퇴근 후, 더위가 한 김 식은 초저녁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청계천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면, 그 책이 그래 주었던 것처럼 힘든 서울 생활에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진솔의 길이 나의 길은 아니었던지, 상경 후 몇 개월은 업무와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감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회사 동기들과 함께한 작은 술자리에서 나의 우울함에 대해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뭐 하러 힘든 거 끌어안고 있어. 주말에 커피 마시면서 동네 산책하고, 가끔 드라이브도 하고. 사람들 사는 거 구경하고. 그럼 좀 살만해." 


 그 후로 공진솔의 종로 거리를 떠나, 신촌을 누비기 시작했다. 집 근처인 신촌 CGV에서 출발해 피아노 치는 예술가가 있는 현대 유플렉스 거리에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사고, 그대로 따라 올라가면 연세대학교로 통하는 굴다리. 그곳을 지나쳐서 조금 외진 골목으로 걸어가면 작은 공원을 지나 이화여대.


 가끔, 사람 붐비는 곳을 피하고 싶을 때는 골목을 다녔다. CGV를 등지고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와 같은 처지의 대학생들이 지내는 원룸촌, 그 사이로 가파르게 위치한 아스팔트 계단을 올라 조금 더 들어가면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 집도 찾아보기 힘든 조용한 주택가, 운동을 다니던 창천 스포츠센터와 나란히 붙어 있는 창천 초등학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게 필요한 건 책 속에 묘사된 낭만 도시가 아닌 앞으로 내가 숨 쉬고, 누군가를 만나고, 일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할 서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었다. 


 서울에서의 많은 날들이 치열하고 외롭지만, 그럴 때마다 노란 장미를 선물해주는 내 옆의 사람을 만나고 글을 시작할 계기를 발견한 도시라고 생각을 다시 해본다.  


 3년 전의 낭만은 온데간데없을지라도, 날 것 그대로의 나의 서울이 나름 나쁘지만은 않다.

이전 04화 싱거운 이유로 결혼을 하고 싶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