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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Aug 19. 2017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닮은 사람들일까?

스톡홀름, 스웨덴 


그 날은 서울을 떠나온 지 3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걸어서 발이 너무 아팠다. 

목이 말랐고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미술관 티켓을 끊어놓고도 

백팩을 맡기기 위해 찾아간 락커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만나던, 어쩌면 결혼 할 수도 있었던 남자와 헤어지고 

긴 여행을 떠나온 참이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혼자 다니면서 사적인 감정이 섞이지 않은 간단한 영어 몇마디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떠나올 때는 어쩌면 이 여행이 밤마다 우는 날들일지도 모르겠다고 외로움의 칼날 위에 서서 

아프게 걷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슬프거나 외롭지 않았다. 

대신 좀 쓸쓸했다.  

예전처럼 아주 뜨겁게 누군가가 그립다거나 내가 왜 이렇게 혼자 떠나왔을까 

후회하거나 우울해지는 밤에 맥주캔을 앞에 놓고 울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좀 쓸쓸할 따름이었다. 


조금은 쓸쓸했던 그 날 오후,

스톡홀름의 현대미술관 락커 앞에서 나는  한 커플이 말 한마디 없이 눈으로 싸우고, 

침묵으로 헤어지는 모습을 봤다. 


남자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있었다. 

여자가 눈물이 그렁해서는 남자의 팔을 잡자 

남자는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그 손길을 뿌리쳤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냈다. 


그런데 그 눈길이 너무 차가워 지켜보던 나조차 마음이 아팠다. 

한 때는 얼마나 뜨거웠던 사랑일까.

식어가는 마음을 예감하면서도 두려워 손을 놓지 못했을 

여자에게서 내 지난 모습을 봤다. 


남자는 락커에서 가방을 꺼내고서 여자를 기다리지 않고 

출구를 향해 걸어나갔다.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한 번 뒤돌아보지 않고 남자는 멀어졌다. 

여자는 따라가지 않고 그 모습을 한동안 보고 있다가 

남자가 완전히 밖으로 나가버리자 벤치에 웅크리고 고개를 묻었다.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두는 일은 어째서 이토록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면서 겁도 없이 그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온전해 내어준 것일까? 

더 많은 나라를 다니면 다닐수록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게 닮아있다는 것이 

이 날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많이라는 정도의 차이, 

어떻게라는 방법의 차이, 

그리고 얼마나 자주라는 빈도의 차이일뿐,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모두 닮아있었다.  

 

괜찮아요. 너무 슬프하지 마요. 

마음으로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나도 한동안 그 옆에 앉아있었다.


만나고, 헤어지고, 

마음이 아파오고, 

눈물이 흐르고,

미술관 구석 락커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얼굴을 묻고 있는 그런 날들이 

닥쳐온다는 것은

얼마나 많이, 자주, 

그리고 어떻게 라는 것만 다를 뿐 

우리 모두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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