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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Nov 02. 2015

빠른 것만이 최선일까? - 터키횡단버스-1

우리는 왜 길이 아닌 길을 걸어가는 걸까?

                                                                                                                                                                        

내 인생이 고달파지는 것은 언제나 

'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 ' 라는 

무모한 용기와 쓰잘데기 없는 과감함 때문이다. 

 

터키의 이웃나라, 조지아로 넘어갈 때도 그랬다. 

옛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와 이스탄불간의 

왕복 항공료는 무려 700 유로 .. ( 100만원도 넘는다) 

그러면 안가면 그만인 것을, 거기 원래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보고 싶어 죽겠는 애인이 거기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 라는 생각에 

나는 이스탄불에서 트빌리시까지 24시간, 만 하루가 걸린다는 

버스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버스는 목적지까지 36시간이 걸렸다 -_-) 

 

버스는 그야말로 터키 서쪽 끝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우리나라의 여덟배가 넘는다는 터키 내륙을 횡단하는 버스. 

 

 

말 그대로 하루종일 버스타고 터키를 달리는 거다. 

( 지도로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나는구나 -_-) 

 

 

1. 출발 3일전 

 

터키는 고속버스 회사만 수십개. 

그러다보니 손님 유치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거대 지하도시 같은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순간 

각종 호객꾼들이 몰려들어 내 가방을 낚아채기 시작하는데 

팔팔한 청년들 사이, 

나는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손님을 끌겠다고 나온 허름한 옷차림의 할아버지에게 

시선이 가 닿았다. 

그래, 이 버스나 저 버스나.. 

어떤 버스를 탄 들 무슨 상관이랴,  

이왕이면 저 할아버지가 커미션을 받을 수 있게 해주자.

그렇게 그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한 버스 회사를 찾아갔는데.... 

이것이 바로 나의 긴 불행의 시작일 줄이야. 

 

2. 출발 

 

아침 열시에 이스탄불을 출발하는 버스는 

다음날 오전 11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25시간. 원래 들었던 것보다 한시간이 더 늘어났지만 

만 하루를 달리는 버스에서 한 시간쯤이야. 

 

아침 아홉시 반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회사 직원들이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웅성웅성한다.

그러더니 나를 가리키며 뭔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동양여자 혼자 로컬버스를 타고 멀리 가는 게 그네들 눈에는 그럴수도 있겠다며 자체 이해.

근데 한 차장 아저씨 나를 지나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간다. ( 너 대단하다 .. 이런 감탄의 눈빛도 팍 쏴주신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진정 몰랐다. 

 

3. 출발 2시간째 

 

버스는 이스탄불의 보르헤스 해협을 가로지르며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버스 여행 시작 2시간만에 

나는 이 여행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창문도 안 열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와 차장 아저씨 그 기세도 당당히 담배를 피우신다. 

 가끔 손님들도 앞으로 나와 담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아무도 그에 대해 뭐라는 사람도 없다. 

 문제는 내 자리가 기사 아저씨 바로 뒷자리라는 것.  

 담배 연기에 속이 울렁거린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는 풍채가 너무도 좋으신 아주머니가 앉으셨다. 

내 몸집도 적은 편은 아닌데 두 사람이 앉으니 자리가 빽뺵했다. 

내 뒷자리에는 대여섯살짜리 꼬마와 그 아빠가 앉았다. 

꼬마는 버스를 타면서부터 싸구려 오락기로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그 게임기는 한 단계 레벨을 넘고나면 축하송으로 -_-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단음의 멜로디로 흘러나온다. 

 

출발 여덟시간째, 

몸은 반으로 접혀 구석에 처박히고, 

담배 연기는 매캐하고,  8시간째 반복되는 '환희의 송가'에 나는 미쳐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중에는 정말 저 노래를 작곡한 베토벤에게까지 적대감이 생겨났다. 

 

거기에다가 이스탄불에서 트빌리시까지 직행이라는 이 버스는 

직행은 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터키의 온갖 도시들을 다 들렀다 서가며 쉬엄쉬엄 가고 있다. 

심지어 길다가 사람들이 손을 들면 차를 세워 태워주기도 한다. 

알고 보니, 트빌리시까지 가는 버스는 두 종류가 있었다. 

24시간이 걸리는 메인버스, 

온갖 국경지대 마을을 들러들러 가는 36시간짜리 버스.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후자의 버스회사로 간 것이다. 

 

할아버지, 

꼭 커미션 받아서 행복해지셔야 해요. 흑

 

 

4. 출발 12시간째 

  

12시간째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이제는 마치 내 자신이 헤비 스모커인듯 담배 연기가 자연스럽고 

혹시 닿을까 싶어 잔뜩 움츠렸던 몸은 될대로 되라는 자세로 

마치 우리 엄마인 것처럼 아주머니와 살을 맞대고 있다. 

이제는 환희의 송가가 들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꼬마가 뭔 일이 있나 싶어 뒤돌아보게 된다 -_- 

 

터키에 오기 전 , 밤비행기로 이탈리아에 처음 도착한 나에게

마중나왔던 지영이가 그런 말을 했다. 

 

- 언니, 이탈리아를 여행하시려면 이거 하나만 알아두시면 돼요. 

  ' 이탈리아는 원래 그렇다 ' 

  왜 저 사람은 접시를 던지듯이 주고 가는 걸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큰소리로 화내듯이 이야기하는 걸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분나빠하지 마세요. 

  언니한테만 그러는게 아니라 이탈리아가 원래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뭐 좀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이탈리아는 원래 그렇다... 라고 생각하세요 

 

원래 그렇다.... 

여행 초기, 지영이가 말해준 이 한마디는 

그 후,  나의 여행과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그랬다. 

터키는 원래 그런 것이다. 

터키는 원래 흡연자들의 천국으로 이들은 이제껏 해온대로 담배를 피는 것뿐..

( 심지어 아이를 안고 가면서 담배를 피는 아빠도 보았다. 

  나쁜 아빠라기보다 담배에 대한 개념 접근 자체가 다른듯 ) 

아까 휴게실에서 화장실 갈 때 보니 내가 내리려고 좌석을 나오자 

아주머니가 참았던 숨을 길게 내 쉬며 몸을 폈다. 

아주머니 역시 나를 위해 불편함을 참아가며 여행중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터키의 버스 서비스는 훌륭하다. 

차장이 있어 음료와 간단한 간식 서비스도 제공이 되고 

차도 전부 벤츠사의 것이다. 

 

왜 터키엔 기본적인 익스프레스의 개념도 없는 것인가?

왜 저 꼬마의 아빠는 아이에게 공공장소에서 계속 오락을 하도록 허락하는가?

왜 터키에는 막힌 공간에서의 금연이라는 기본적인 에티켓도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은 모두 

나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 

터키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 

나는 이 나라를 알고, 보기 위해 찾아온 여행객일 뿐이니까 

원래 그런 이 나라에 내가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 

 

5. 출발 22시간째 

 

출발한지 만 하루가 가까워오는 시간. 

차장 아저씨의 눈물겨운 배려와 외국인이라는 특혜로 

나는 아주머니와 헤어져 혼자 두 자리를 쓰게 됐다. 할렐루야 ~~ 

하지만 긴긴 여행으로 나의 무릎은 이미 내 무릎이 아닌것 같이 감각조차 없었고 

어떤 자세로 몸을 돌아앉아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지만 

정말 그 순간만큼은 '버스의 신'이 있다면 

그에게 간절한 용서의 기도를 올리고 싶었다. 

 

- 버스의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세요. 진주집에 갈때 '고작' 네시간 밖에 안걸리는 고속버스가 힘들다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곤 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저에게 내리신 이 가혹한 형벌을 거두시고, 

제발 이 버스가 얼른 트빌리시에 도착하게 해주세요. 

 

버스는 터키 동부의 밤을 달리고 있었다. 

모두 피곤에 지쳐 잠에 빠져든 새벽 , 캄캄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둑 어둑한 산하가 차창 밖으로 스쳐간다. 

나무와 들판들 사이, 어슴프레한 초승달이 버스를 따라온다. 

 

야간 열차나 밤버스를 타고 갈때면 알 수 없는  이상한 슬픔에 빠질 때가 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열차소리, 버스 엔진소리.

옆 자리의 고단한 승객들은 모두 잠이 들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풍경,  

그걸 보고 있자면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는데 

그것은 흡사 고향을 떠나는 이가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고향 풍경을  돌아볼 때와 비슷한 것이었다.    

밤버스와 야간열차에는 그렇게 묘한 감상이 있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 기대 밖으로  

이 고단하고 힘든 터키횡단버스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꼽을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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