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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Nov 19. 2017

운명은 꼭 개척해야만 하는 것일까?

루앙프라방, 라오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평생 가슴에 어떤 질문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그 질문 하나 때문에 내내 힘겨워하던 , 그래서 그 답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간 그런 사람들. 그 사람들의 여행은 답을 찾아가기 위한 하나의 고행길과 같았다. 간혹 여행기를 읽다보면 여행을 통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답'을 얻어오는 사람들이 있다.그것이 당장 눈앞에 닥친 실연의 상처에서 비롯된 질문이든,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인생을 보듬는 질문이든 참으로 희한하게도 그리고 대단하게도 그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갈 때는 얻을 수 없었던 그 답을 여행의 어느 순간에 얻어 돌아왔다. 


내 경우는 좀 달랐다. 

나에게 여행은 늘 '질문'이었다. 

살아가면서 너무나 당연해 한 번도 왜 그럴까하고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이 불쑥불쑥 내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런 질문과 만날 때면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나는 위에서 말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답은 나에게 쉽게 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중에 만난 질문은 돌아와서도 희미하지만 내 삶에 남아 자꾸 나에게 뭔가 말을 걸었다. 


한증막 속을 걸어다니는 것 같았던,  한없이 늘어지는 습기로 인해 몸도 마음도 축 쳐지는 것만 같았던, 그래서 모든 것이 느릿하게만 흘러가는 것만 같았던 루앙프라방에서 내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왜 그토록 부정적이었을까?


루앙프라방으로 오기전 베트남 북부 국경지대의 고산마을에 잠시 머물렀다. 호텔에서 나와 잠시 거리를 걷기라도 하면 이내 전통의상을 입은 소수민족 여성들이 나를 따라붙었다. 푸른색 물을 들인 천에  알록달록한 장식이 달린 옷을 입고 등에는 큰 대나무 바구니를 맸던 키가 작고 거무잡잡했던  소수민족의 여자들. 그녀들은 산악지대 트레킹을 위해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을 자신의 마을로 안내하거나 그들에게 기념품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영어를 잘하는 여자들은 호텔과 연계해 관광 가이드 일을 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여자들은 개인여행객들이 트래킹을 나서면 무작정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호객행위를 하지도, 그렇다고 자기네들을 가이드로 써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혼자 트래킹을 하려던 개인 여행객들은 약간 불편한 마음으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내버려둘 수 밖에 없었다. 조용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트래킹을 하던 개인관광객들은 어느 순간엔가는 그들을 가이드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주로 갈림길에서였다. 산악지대로 접어들수록 길은 인적이 끊기고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숲을 헤쳐나가야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일 때 그녀들은 조용히 나타나 손을 내밀었다. 난 가이드는 쓰지 않을테야 하고 고집을 부리던 여행객들은  마침내 마음 속의 작은 저항을 포기하고 자신을 뒤따라온 그녀들을 가이드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녀들이 하루에 걷는 산길만 20여km, 오늘 하루 걷고 나면 내일 어제와 똑같은 20km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 중엔 나이지긋한 아주머니들도 있었지만 이제 열 다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들도 적지 않았다. 산악지역의 많은 소수민족들은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시작되는 나이는 적게는 열 셋넷, 그렇게 많은 소녀들이 거리로, 산으로, 들로 돈을 벌기 위해 나섰다. 나는 라오스에서 많은 소녀들을 보았다. 

말간 얼굴로 나를 보고 웃던 사파의 몽족 소녀,그리고 루앙프라방 야시장을 지날 때마다 때가 낀 작은 손으로 내 옷깃을 잡았던 구운 바나나를 팔던 소녀. 

그네들을 보며 깊은 산속의 작은 마을을 떠나고, 이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들 중 몇 명이나 여기를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나라면,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이곳에서 벗어났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루앙프라방에서의 내 일과는 단순했다. 새벽에 일어나 탁발행렬을 보고 아침시장에 들러 구운 바나나와 라오스식 빵을 하나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커피 한 잔과 아침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구운 바나나를 팔던 소녀와 일주일 가까이 마주치면서 나는 너무 해맑기만 한 그 얼굴이, 하나라도 더 팔려는 악착이 없는 그 행동에 마음이 좀 불편했다. 


너는 왜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니,

너는 왜 영어를 배우지 않는 거니,

너는 왜 더 큰 세상으로 떠나지 않는거니. 


그러다 어느 비오는 날 아침, 비를 맞으며 바나나를 파는 소녀와 또 만나게 됐다.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바나라를 하나 더 덤으로 주었다.  바나나를 사고 돌아나오는 길, 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시장으로 찾아온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며 꺄르르 웃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네들에게 더 큰 세상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세상을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을 수 있겠다고. 지금 이대로 사는 일이 모두 행복할리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잘 살아나가고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 다시 바나나 파는 소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는데 그 표정에는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특유의 편안함과 유순함이 있었다. 그것은 운명과 싸우다 지쳐버린 체념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생각해보지 않은, 인생에 있어 '더 나은'이라는 비교급을 적용하지 않는 말 그대로 삶을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안함이었다. 


왜 나는 인생을 계속 나은 방향으로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나.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은 지식,학력, 재산,환경을 얻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라오스 사람들은 표현 그대로 참 착했다.자전거를 빌려 골목이며 도로를 다니는 여행자들에게 한 번도 클락션을 울리거나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가 겁먹게 만들지 않았다.루앙프라방에는 강을 건너는, 나무로 만든 오래된 올드브릿지가 있는데 한줄로 서서 자건거와 오토바이가 지난다.내가 거기를 자전거 타고 가다가 부서진 나무 판자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 많은 오토바이행렬 중 누구도 클락션을 울리지도 않고 호들갑스럽게 다가와 나를 일으켜주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가 일어서기를 아무말없이 지켜보고 기다려주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장사꾼들도 악착같이 흥정하려 하지 않았고 맨발의 가난한 아이들도 손을 내밀어 구걸하거나 뭔가를 얻어가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뭔가 한없이 나른하고, 공기의 흐름마저 느릿하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편안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흘러가는 대로 , 억지쓰지 않고 , 그냥 나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일이란 참 아름답구나.


열정과 도전, 노력과 성취, 꿈과 미래 같은 단어는 어쩌면 행복하지 않은 인생의 진통제 같은 것들인지도 모르지.



첫동이 틀 무렵에 시작되어 해가 뜨면 끝나는 탁발.  스님들은 이렇게 공양받은 음식을 탁발 행렬 끝에서 기다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또 나누어준다.    



루앙프라방에선 동물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곳 사람들이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알 수 있다 



푸시힐에 올라 기다렸던 메콩강의 선셋.한동안 시끌벅적 하던 사람들도 해가 지기 시작하자 모두 말을 않고 가만히 노을을 보라보았다.



길을 잃고 헤매이다 어느 이름없는 사원에서 만난,내가 정말 루앙프라방을 닮았다 느꼈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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