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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Jan 18. 2016

빠른 것만이 최선일까?-터키횡단버스-3


버스는 달리고 달려 

정말 터키 국경끝에 다다랐다.

아르한이라는 터키 동부의 작은 마을.

공터같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국경버스라 전부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이었나부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 건 바로 이 모자를 돕기 위해서였다. 이스탄불에서부터 만 하루가 넘는 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 모자는 이불에 옷가지에, 심지어 위성안테나까지 버스에 싣고  고향 마을을 찾아왔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택시 역할을 하는 마차. 

처음 보는 사람들일텐데 이 모자를 돕기 위해 차안의 남자들이 모두 내려서 짐을 옮기고 이들 모자가 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준다.

 

터키 사람들은 참 마음이 따뜻하다.

더불어 오지랖도 끝장이다.

그래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출발 31시간째,

 

터키에서 조지아로 넘어가는 동북부의 국경지대는 정말 아름답다.

멀리 만년설이 덮힌 산 아래 마치 툰드라 지대같은 풍경이 지친 나를 반긴다.

 또 다른 국경마을.

정말 정말 정말 서운하게도 (진심이다) 환희의 송가, 오락기 소년이 이곳에서 내렸다.

환희의 송가 없이 무슨 재미로 이 버스를 탄 단 말이냐 -_-

 

내릴 때 자세히 보니 , 이 꼬마의 아버지는 거의 할아버지 뻘이다. 늦둥이를 본 것인지 가는 곳마다 어린 아들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쥐고 있다.

그 오락기 소리에 지친 것은 나만이 아닐텐데

잠도 못자면서 참고 봐준 이유가 있었구나 ,

늙은 아버지의 마음이 좀 이해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그 아버지보다 한참은 젊어보이는 엄마는 뱃속에 또 다른 아기를 가지고 있다.한 눈에 보기에도 허름해 보이는 행색인데,임신한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30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형편인데, 막노동을 하기에도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는 아버지인데, 둘째는 어찌 낳아 키울꼬... 라는 걱정이 앞선다.

 

( 터키 사람들보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니다. 본인은 시집도 못갔으면서 멀리 이국땅에 사는 사람의 가족 계획까지 걱정하는 이 오지랖을 어쩌란 말이냐 -_- )


버스가 도착하자 , 구두닦이 소년들이 뛰어온다.

땟국물이 졸졸 흐르는 얼굴이며,손님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덤비는 것이며 제 키에 너무 무거워보이는 구두통을 둘러맨 것까지..어쩌면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이렇게 닮았을까.

 

국경마을들을 지나칠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버스 운전사와 차장에게 안부를 묻는다.

하루에 한 번, 먼 도시 이스탄불에서 오는 이 버스는 이 작은 오지 마을에서 반가운 손님이고, 멀리 도시에 대한 선망이다.

버스 운전사도 귀찮아 하지 않고 일일이 그들의 환대에 응답을 하고 안부인사에 꼬박꼬박 답을 해준다.

 

마을을 벗어나는데 동구 밖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본 것인지 어린 형제가 급하게 뛰어온다. 기사에게 ..뭐라뭐라... 하는 말 끝에 파파라는 말이 나온다.

아마, 오늘 우리 아빠 왔어요? 라고 묻는 듯,

그 꼬마 형제를 위해 기꺼이 버스를 세운 기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두 꼬마의 어깨가 축 쳐진다.

 

이들의 아빠는 이스탄불에서 무슨 일을 하며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상상을 하며 국경마을을 지나쳐 온다.

다음 마을은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정말 작은 마을. 여기서 내리는 사람은 3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그런데 정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마중을 나왔다.

다 찌그러진 수십년은 되어보이는 차에 예닐곱명이 타고 와서는그 남자를 껴안고, 볼을 부비고  반가워한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한사람 마중나오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총출동 


출발 33 시간째,

 

이제 버스 안에는 손님이 몇 명 남지 않았다.

터키 사람들은 거의 다 내리고 터키 국경지대에서 새로 탄 조지아 사람들 몇 명과 내가 손님의 전부다.


자포자기인지, 아니면 지나쳐 온 국경 마을 사람들의 모습 때문인지 나는 이 버스가 더이상 지루하지 않다.이제 잠시 후면 버스는 터키 국경을 통과할 것이다.

그리고 세시간쯤 더 달리면 ,

정말 영원히 가지 못할 것 같았던 조지아의 트빌리시에 도착할 것이다.


터키와 그루지야 국경, 단촐하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터키 국경을 넘었다.

 

( 물론 국경도 그냥 넘진 않았다.   출입국 직원이 내 여권을 20분 이상 들여다보다 영어 할 줄 아는 직원을 부른다며 나를 한참동안 기다리게 한 것쯤은이제 사건도 아니다. 36시간짜리 버스를 한 번 타고 나면 인내심 지수가 보통 이정도 향상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등장한 영어할 줄 아는, 엘리트 출입국 직원이 물어본 것은 너 노스 코리아냐 사우스 코리아냐 단 하나 였다는 것 -_- )  

 

국경을 넘고도 세시간을 더 달려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내가 터키를 버스로 횡단하면서 보았던, 느꼈던 , 생각했던 풍경과 사람들은 관광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느리게 오랫동안 달려온 국경완행버스니까 가능한 것들이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가난했으나 모두 친절했고

혼자 이 무모한 여행을 하는 불쌍한 동양여자에게 참 잘 대해 주었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 라는

쓰잘데기 없는 용기와 무모함을 내가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매번 가보지 않는 것보다는 이렇게 온 것이 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이렇게 라도 해 본 것이 백번 나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 

하는 후회를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에 또 버스로 터키를 횡단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절대, 네버, 결단코, 죽어도.... 그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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