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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Jan 24. 2016

멀리 떠나야만 꿈을 찾을 수 있었을까?

마나로라 , 이탈리아

아빠도 진주 사람, 엄마도 진주 사람

할머니도 진주 사람, 할아버지도 진주 사람,

시내에서 가게를 하는 사람의 절반은

엄마랑 알거나 아빠랑 동창이거나

어쨌든 한 두 다리만 다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인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스무살이 넘기 시작하면서부터

소도시의 이런 거미줄 같은 관계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대도시에서의 삶을 꿈꾸며

고향을 떠나온지 10년도 훌쩍, 

가끔 집에 내려갈때면 좋기도 했지만 

사흘을 넘기면 다시 가슴이 컥하고 막히듯이 갑갑해졌다.

그리고는 생각했었다.

은퇴후에 아주  나이가 들어사라면 모를까,

새파랗게 젊은 나날을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피렌체에서 기차로 두시간 가까이 떨어진

지중해변 해안 절벽의 작은 마을 manarola.

한 여름 관광객을 대상으로 배를 빌려주거나 산중턱의 포도나무를 재배하면서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바닷가의 작은 기차역이 세상과 이 마을을연결하는 전부다


오후 세시.

마을의 가게는 전부 문을 닫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시골로 갈수록 한낮에 문을 여는 가게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은 그 시간에 낮잠을 즐기거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마을 어귀에 있는 작은 광장에는

놀러나온 아이들과 그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나온 아빠들로 가득.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한동안 광장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저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부모들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그런 삶도 '행복하겠다고'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라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 같이  커 온 남자 아이들 중 하나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그 남자아이들은 별다른 갈등없이 아버지, 할아버지들로부터 배워온 일을 이어받고,

평생을 살아온 마을 한 쪽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오후 두시부터 여섯시까지는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부모가 되고 광장에서 공차기나 뜀박질을 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남편을  행복한 눈길로 쳐다볼 수 있고  해마다 여름이면 빛나는 지중해 햇살에  키워낸 포도를 수확하고 그 포도로 만든 술로 축제를 벌이고



크진 않지만 한껏 꾸민 아름다운 집에 살고

창가에 색색깔 예쁜 화분을 키우고

 




아직도 편지를 써서 부치는 우체통이

마을 가운데 있을만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저녁이면 동네 카페에 모여

같이 축구 경기를 보거나

와인 한 잔을 들이키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죽고 나면 마을 가까운 곳 ,

 바닷가가 보이는 언덕에

생전 가장 아름다웠던 사진과 함께 묻히고

언제나 자신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죽어서도 외롭지 않은...



그런 삶도 있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나는 왜 꼭 떠나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을까? 

나는 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이렇게 살아도 참 행복하겠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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