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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Sep 07. 2017

다음 생이 있다면, 삶이 달라질까?

발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군은  어쩌면 택시 드라이버가 아닐까 한다.

호텔 문을 나서 열발짝도 걷기 전 택시? 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그건 발리가 아닐 것이다. 

정식으로 등록된 파란색 '블루버드' 택시를 모는 기사들 외에도 자가용만 있으면 누구나 손님과의 개별흥정을 통해 택시 기사를 할 수 있는 것이 발리의 택시관련 정책인 듯 하다. 

그간의 택시 호객 빈도만 생각하면 발리의 모든 남자들은 자신의 직업과 택시기사를 겸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밭 갈다 우연히 관광객을 보면 농사짓다말고 - 혹시 택시 필요하우?

레스토랑서 음료 서빙하다 누군가 잠시 지도라고 보면 - 택시 필요하면 저한테 말하세요.. 이런 식. 

우붓, 네카 미술관에서 돌아오는 길,

비가 쏟아져  흥정을 하고 한 발리청년의 자가용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걸어온 길을 차를 타고 찾아가려니 헷갈리기도 하고 뭐라고 말을 하는 그 청년의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익스큐즈 미? 를 두 세번 했더니 나를 곁눈질로 힐끗 보며 그 택시 드라이버 왈, 


- 너, 영어를 별로 못하는구나

= 뭐,,, 그렇지. (떨떠름) 

근데 너는 영어를 어디서 배웠니? 학교에서 ?

- 아니, 난 학교 안다녔어. 

 호텔에서 일할때 우리 보스가 영국인이라.

  근데 너는 영어 안배웠니? 


이보게 택시 드라이버 청년,

지금 자네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영어! 잉글리쉬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말이야.  중,고등학교 6년을 내내 영어와 씨름하고 방학때마다 의대 다니던 엄마 친구 아들에게 과외받고 대학에서는 입학하자마자 보카 22000을 샀으며 방학때마다 토익강좌에 졸업하고서도 파고다, 영국문화원 어학원, 심지어 1:1 영어학원까지 다닌 내가 ....왜 학교도 안다닌 발리 청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근데 써놓고보니 나도 궁금해지네. 저렇게 살았는데 난 왜 도대체 영어를 못하는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_- )

 

이런 자괴감이 잠시 찾아왔지만 길을 좀 헤맨 것이 미안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해서 그 청년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러게, 너는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하니, 

  완전 영어 천재구나 


역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법, 내 칭찬에 마음이 풀어진 드라이버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 너도 다음에 발리오면 나한테 꼭 연락해. 

  내가 너한테 영어 가르쳐줄게 

 너는 '비우티풀 마담' 이니까 

 특별히 공짜로 가르쳐 줄게 


거기에서부터 청년의 나에 대한 '신상털기'가 시작됐다. 휴가는 혼자 왔는지, 며칠이나 머물렀는지, 결혼은 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등등. 아직 미혼이라는 이야기에 그 청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너는 종교가 다른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니? 


발리에 와서 나는 의외로 많은 외국여성이 발리에 놀러왔다가 발리 남자와 결혼해 정착한 것을 보았다.(내가 머물렀던 빌라 역시 일본인 부인과 발리 남편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보다 훨씬 어린 발리 남자와 결혼해서 집을 빌리거나 사서 빌라를 하거나 카페를 했다. 외국여성과 결혼하는 그 청년들은 동네 다른 청년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대부분 택시 기사거나 ,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던 그들이 한 순간 사업가가 되거나 부자가 됐으니까. 


관광지에서 태어나 관광객을 보며  자라고 그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며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래알고 깊이 사귀는 사이가 아닌 언제나 스쳐가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삶, 오늘의 인연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언제나 친절하고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고 어쩌면 외국인과의 결혼이  한순간에 많은 것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삶. 


발리 시골마을을 자전거로 돌며 하는 트레킹에서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자전거 행렬이 지나가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손은 흔들고 헬로우를 외쳐주었다. 세상에 , 이렇게 친철하고 착한 사람들이... 하는 감격은 제 언니 품에 안겨 구경나온 갓난쟁이들까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까지) 헬로!를 외치는 것을 보자 좀 슬픈 마음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듯 발리에선 이런 삶이 당연한 것인지도. 

의욕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표명하던 그 드라이버 청년은 내가 종교가 없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그 후로 나에게 별다른 말을 걸지 않았다. (종교가 없다는 것과 신을 믿지 않는다는 건 다른 이야기고 나는 어떤 절대적 존재와 운명은 믿는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앞서 이 청년이 말했듯이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ㅋ )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는 나에게 드라이버 청년이 말했다. 


-종교가 없어도 카르마는 믿어야 해. 

지금이 다가 아니야. 

내가 뼛속 깊이 ,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 신이 만약 나에게 다음 생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리하여 오늘의 삶으로 인해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한다면 지금의 삶은 무엇이 달라질까?

나는 기다리고 있는 다음 생으로 인해 더 행복해질까? 아니면 지금보다 삶이 더 두려워질까?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언제나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 생이 전부임을 믿지 않고 다음 생까지 예측하며 사는 사람들, 참 다른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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