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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Nov 01. 2020

인생에 움츠려들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도쿄, 일본 

10여년전에 가보았던 도쿄의 추억은 그랬다.

도대체, 왓 (WHAT) , 무엇이 서울과 다르다는 말이냐.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숙식이 저렴하게 제공된다는 것이 (촬영팀이 미리 가 있었기에) 하나의 매리트라면 매리트랄까?

 

그래도 명색이 해외여행인데

민박이라고 잡아놓은 방은

미국으로 치자면 LA의 코리아타운과 비슷한 곳,

신주쿠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신오오쿠보(新大久保)
. 

내려서니 전철역에서 '유학생 환영, 휴대폰 가입 저렴' 문구가 보이고

나를 치고 가는 사람의 입에서는 쓰미마셍 대신 죄송합니다가 나오고

슈퍼앞에 박스째 쌓여있는 신라면이며

거리 곳곳에는 삼겹살 집들이 --;; 줄지어 서 있었다.


촬영팀은 촬영을 가고 오후 내내 신사 구경과 하라주쿠와 시부야를 걷느라 지친 나는

토요일 저녁에 결혼 후 도일,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효영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환율 때문에 억대연봉이 된 팔자좋은 외국인 노동자다)

 

효영 선배가 일본에 온지 1년이 넘은 데다가

그의 와이프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그들 부부라면 현지인들만이 아는 숨은 맛집에서 끝내주는 일본음식을 맛보리라..

잔뜩 기대했던 나는 효영선배와의 통화끝에 심히 실망하고 말았다.

 

" 나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 그냥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에서 보자.

  삼겹살 먹자고. 일본 음식은 촬영팀이랑 먹어라.

  난 삼겹살이 먹고 싶구나 "

 

현지인들만이 아는 숨은 맛집과

끝내주는 일본음식에 대한 기대를 접고

선배와 만난 곳은 참이슬과 삼겹살이 기다리는 한 삼겹살집.

비싼 돈내고 해외여행 와서 코리아타운에서 삼겹살을 먹어야 하다니.. (나는 해외여행을 왜 온 것이냐)


내가 억대연봉을 운운하자 선배가 말했다.

한국에서 연봉 4천 5백을 받을 때보다 더 생활의 퀄리티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시드니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남미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그조차도

일본에서의 생활이 힘들어 향수병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한국인이라고 은근히 무시하는 일본인 상사들.

점심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 앉아 각자의 도시락만 먹는 초 개인주의적 일본 문화.

엄청난 물가 때문에 집과 회사만 왔다갔다 해야 하는 생활들.

 

밤을 새고 일해도 마음을 나누고, 동료라는 느낌으로 뭉치던 한국에서의 직장문화에 익숙한 그는

한국과는 다른 일본의 직장문화와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외국인들에 대한 감정이 더 안좋아져 일본 생활이 힘들다고 했다.무엇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직장내에서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 그런데 왜 일본에 있어? 한국에서도 오라는데가 많은데?


- 한국에서는 비전이 없어. 그 끝이 뻔히 보이는데 그냥 저냥 살 수 없잖아.

그래서 큰 마음먹고 일본을 왔는데.. 내 인생의 큰 그림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고 배우자던 그 결심이 생활에 묻히다보니 지켜나가기가 쉽지가 않네

 

와이프가 아기를 가져 얼마 후면 아빠가 된다며

처음 초음파 사진을 봤을 때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어떤 자리나 경험을 하기 전까진

절대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제 아버지가 되는 그가 예전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삼겹살 2인분에 참이슬을 먹고 나선 길..

토요일밤의 신오오쿠보(新大久保) 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선배와 같은 재일 한국인들로 넘쳐났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선배의 예전 후배.

그는 이 곳에서 도쿄의 한국인 모임이 있어 나가는 길이라며 우리를 초대했다.

결국 촬영나갔던 피디까지 합세, 술 한잔을 나누었는데

그들의 사정 역시 제각각 이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15년간을 이곳에서 보낸 한 사람은

너무나 달라졌을 한국이 무서워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고

또 한사람은 불경기 탓에 얼마전 직장을 잃고서도 어떻게든 일본에서 견뎌보겠다고 했다.

무역회사, 인테리어 업자, 컴퓨터 프로그래머등으로 제각각의 생활이었으나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어도

신오오쿠보(新大久保)의 한국식 주점에 모여

1인분에 만 오천원하는 삼겹살과 만원짜리 참이슬을 마시며

토요일밤을 보내는 그들은 불안해보였다.

 

그러다 내가 병이 또 도지고 말았다. 인터뷰 병.

나는 그들에게 왜 일본에서 꼭 살아야 하냐고 재차 물어보았다.

그냥요...하고 답을 피하던 그들의 입에서 마침내 나온 대답은


" 그래도 한국보단 여기가 나아요 "

" 삶의 퀄리티가 달라요"

 

12시 마지막 전철을 놓치면 택시비만 15만원이라며 서둘러 자리를 파하는 그들과 선배를 보며

피디와 숙소로 돌아오다 이야기했다.


- 이렇게 각박하게 사는데 그래도 저 사람들은 이곳에서 삶의 퀄리티가 더 높다고 생각하네.

이상하지 않아?


- 현재가 중요한게 아니라 미래가 중요하니까 그렇겠지.

 

그러다 곧 그 사람들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미안해졌다.

왜 여기에 살고 싶어하냐는 것은, 너희들은 불행해보인다는 전제를 이미 깔고 있었던 질문.

그냥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있다고 왜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낯선 곳에 가서 무엇이 제일 먼저 보이는가를 보면 자신의 마음과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다.

나는 여행을 가서도 줄곧

아침부터 프렌차이즈 덮밥집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

늦은 밤 이자카야에서 혼자 술마시는 외로운 가장들,

코스프레를 하는 ,검은 옷에 검은 화장을 하고 노란색 펑크 머리를 한 

하라주쿠에서 부딪친 10대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

늦은 밤, 만원짜리 소주를 마시며 신오오쿠보(新大久保) 거리를 방황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자꾸만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내가 최근 줄곧,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며 힘든 시기를 보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날 그 밤거리에서 문득 느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나 불안정하고 정해진 미래란 없었는데

나는 그때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아진 지금 왜 더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내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가 움츠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겁없이 무엇에든 뛰어들었다.

새로운 것이 좋았고 도전하는 것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힘들어도 그게 힘든 것인줄 몰랐다.

외로워도 그게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많은 사건과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힘듦과 외로움'에 대해 알게 됐고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들을 만나고 오면서 생각했다.

그들도 처음엔 일본에 어떻게 하면 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다음엔 일본에서 직장을 가지는 것이

다음엔 일정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이,

그리고 그 다음엔 그 직장에서 짤리지 않는 것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고민이 되었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하나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의 고민.

그 안에서 결국 그  힘든 고민을 해결해야 하고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외로움.

이 둘은 어떻게든 인생에서 같이 가지고 가야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구나.

 

어쩌면 지금 나보다 더 많은 생각과 고민, 두려움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을

한국인들로 가득찬 토요일밤의 시노우에보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움츠려들지 말자고.

어쩌면 실패하고 더 힘들어질지라도 부딪쳐 보는게 원래의 나이고

그렇게 할때만이 오히려 사실 덜 외로울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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