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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Nov 01. 2020

혼자 여행하면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베네치아, 이탈리아 

한 달이 넘는 긴 여행을 떠날때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두가지였다  

 

- 진짜 팔자 좋구나 , 부럽다 부러워

혹은

 

- 혼자 가?

 

혹자는 혼자 그렇게 길게 여행을 가다니 정말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구나 ..라고 지레짐작들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

나는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싫어하는 걸 넘어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혼자 가는 이유는, 시간과 여건이 맞는, 같이 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정말 단순명료한 그 한가지 이유 빼고는 없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좀 운이 좋았다.

후배 수현이가 45일 일정 중 앞의 열흘을 같이 가기로 한 것이다.

더군다나 터키에서는 임정이네 부부도 만나기로 되어있다.

그러니 절반쯤은 혼자, 절반쯤은 동행이 있는 여행이다.

환상적이군... 이라고 생각했고

수현이가 가고 나면 혼자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현이가 떠날 날이 다가오자

자꾸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것은 사실 그  절반쯤은 기다림의 시간.

기차를 기다리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동행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같이 해주는 사람이다.

여행의 동행이 있다는 것은,

밤에 호텔이나 호스텔로 돌아와서 외로운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길을 잃었을 때 같이 걱정하고 의논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현이와 헤어진 곳은 베네치아.

수현이는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공항에서 다시 로마로, 그리고 로마에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

   

아침 베네치아,

**사진을 찍고도 스스로 놀랐던 아름다운 아침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에서 수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허전했다.

이제 나도 내일이면 시칠리아로 떠난다.

거기에선 내내 혼자일 것이다.

 

마음은 울적했지만 어쨌든 나왔기에 

 미처 보지 못했던 성 마조레 성당을 보기 위해 수상버스를 기다렸다.

 20분에 한 대씩 다닌다던 수상버스는 한시간이 가까워오도록 오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하며 알아보러 다니다가 우연히 성당을 가기 위해 기다리던 

한 한국인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 스물 두 살인 그녀는 한국에서 대학을 휴학하고

두달간 유럽 배낭여행중인 대학생

첫 해외여행인데 혼자서, 그것도 두달간 도는 중이란다.

두달이면 예산이 어느 정도냐며 물어보니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턱없이 모자란 돈을 이야기한다.

그 돈으로 여행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슈퍼에서 빵만 사먹고 있단다.

 

먹는 것도 보는 것만큼 중요한 여행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알뜰한 배낭여행 중인 대학생에게 것두 오지랖이다 싶어 별 말을 안하고

같이 마조레 성당으로 향했다.

    

성마조레 성당 종탑에서 내려다본 베네치아 

   첫 해외여행의 설레임이라니.. 얼마나 좋을까 이해는 하지만,

   뭘 하나 보면

 

    - 어머나, 이런 건 정말 처음이에요, 너무 좋아요

    - 정말 이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 같아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웃기기도 하고, 

     나도 어렸을 땐 저랬나 싶어  귀엽기도 했다.


 마조레 성당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종탑에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전경,

그런데 입장료가 3 유로다.

망설이는 것 같길래 내가 3유로를 대신 내주며

오늘 밤엔 빵 사먹지 말고 그 돈 보태 스파게티를 사먹으라고 이야기했다.

방긋 웃으며 알겠다더니

결국 돌아가는 길에 보니 또 슈퍼에 들러 빵을 산다. 

부라노 섬, 테마파크 속 동화의 나라에 와 있는 느낌

 

그리고 다음날,

오후 비행기여서 오전에 못가본 부라노 섬을 가보는데

민박집에 오늘 온 한 여대생과 동행하게 됐다.

그녀 역시 스물 세살 쯤으로 독일 한 공대에 교환 학생으로 와 있는 중.

독일어 하나도 못하는데 와서

학비 버느라 알바로 실험실에서 일하는 중이라 했다.

몇 달 짜리 프로젝트가 끝나고 간신히 휴가를 얻어 슬로베니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들어왔단다.

 

 그러고 보면 한국 여자들 참 용감하다.

위험하다는 이탈리아 남부를 돌 때도 어쩌다 마주치는 한국인은 모두 여자였고

2년전 로컬버스를 타고 모로코를 여행중이라는 사람들도

남자가 아닌 여교사 두 명이었다.

 

첫 해외여행에 그 적은 돈을 가지고 혼자 떠난 용기며

힘든 해외 유학생활 와중 돈을 모아 여행을 다니는 부지런함이며

그네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좀 부끄러워졌다.

 

어차피 익숙한 것들과 떨어져 있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나?

멀리 오면서까지 로밍폰에 넷북으로 무장하고

뭔가 커넥션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나는,

정말 저 스물 두 세살 짜리들보다 못하구나. 

 

혼자 떠난 여행은 , 어쩌면 '나와의 동행'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와

나도 몰랐던 나와, 약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생각보다 강했던 나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너무 외로웠던 나와,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왔는데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었던 나와

나도 몰랐던 수 많은 '나와의 동행'

 

여행은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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