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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Oct 08. 2017

누구에게라도 '영웅'은 필요할까?

멕시코시티, 멕시코 

의외로 인기가 많았던 여자 복면레슬러들의 경기 



멕시코에 오기전부터 이것만은 꼭 봐야해 하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그건 와 '루차리브레'  복면레슬링이다.금요일 밤 경기는 TV로 중계까지 되는데 그 열기가 어마어마하다.

저마다 응원하는 복면 레슬러가 있고 좋아하는 선수의 가면을 같이 쓰고 응원하는데 특히 어린이 팬이 

많다.


프로레슬링 경기는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몰랐는데 이건 정말이지 하나의 유쾌한 '쇼'였다.

경기에는 쇼와 슬랩스틱과 격투기가 공존하는데 그 안에 스토리텔링이 있더라. 

먼저 선수들은 철저히 우리 편과 악당으로 나뉜다. 모든 영웅들이 그렇듯 우리 편 선수는 처음에는 수세에 몰리며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하기 마련인데 경기가 하이라이트를 향해 갈수록 흥미로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악당 레슬러에게 당하던 우리편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기가 막힌 공격을 성공시키며 왕좌에 등극하는, 그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영웅 스토리. 

짜고 치는 고스톱인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 올드한,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역전 스토리에 열광한다. 


이 날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트럼프 얼굴이 그려진 성조기를 들고 나온 악당선수팀과 멕시코 팀의 대결. 

악당들이 심판까지 매수해 우리편 선수들을 이기자 장내에는 흥분한 관객들이 난리가 났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멕시코 대표선수들이성조기를 빼앗아 꺾어 던져버리고 링 밖에서 덩치 큰 악당 레슬러를 물리친다. 그리고 링 로프에 올라 포효하자 사람들은 멕시코,멕시코를 외치며 난리가 났다.

이건 흡사 한.일전 느낌이다. 잘 몰랐는데 여행 중 만난 멕시코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면 아즈텍 문명이라든지 여러 가지 역사나 문화에 대해 여기 사람들의 자부심이 엄청나던데 그런 사람들을 뭉뚱그려 ‘불법체류자’로 단정한 트럼프에 사람들이 참 많이 상처받았구나 싶다.


멕시코에서 루차리브레 선수는 '영웅'이다. 그들은 가면 속 영웅들의 역전 스토리를 보며 힘을 얻고 환호한다. 그래서 루차리브레 선수 중 상당수는 은퇴할 때까지 가면을 벗지않고 익명이 주는 신비감속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 익명성과 신비감 역시 팬 서비스의 일종인 셈이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갔던 전설적인 레슬러 중 한 명은 유언으로 가면을 쓴 채 장례식을 치러달라고까지 했단다. 또 한 명의 유명한 가면 레슬러는 은퇴 후 가면을 벗었는데 놀랍게도 신부님이었다고 한다.  ( 성당에서 키우는 고아들을 위해 레슬러로 활동했다고) . 루차리브레와 그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멕시코 사람들이 이 가면레슬러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 스스로 얼마나 자신을 명예롭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시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왜 아직도 이처럼 영웅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가 열광하는 영웅 역시 우리 중 한 명일 뿐이겠지만 지금 우리는 모두가 힘든 시간을 '살아내는 '중. 

평범한(하지만 힘든) 일상에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그래서 잠시의 열광을 맛보는 그런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국민적인 스포츠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날, 경기장 '아레나 멕시코'의 열기는 너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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