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eherazade Nov 01. 2020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코펜하겐, 덴마크 

첫인상은 그 어느것에서나  중요하다.  

사람의 첫인상이 인물, 패션, 말솜씨, 나에 대한 호감도등 대체로 몇가지 것에 의해 좌우된다면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 날의 날씨, 길을 잃고 헤맬때 나에게 길을 가르쳐준 사람의 태도,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공항에 첫 발을 내딛고서 느껴진 그 도시만의 냄새, 숙소와 식당들까지. 


그런 점에서 코펜하겐의 첫인상은 완벽했다.

얼굴에 웃음을 띈 친절한 사람들, 햇살은 반짝반짝 빛나지만 습기는 거의 없는 완벽한 날씨, 아름다운 건축물들, 맛있는 맥주(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긴 남자들.


한 때 우즈벡에선 김태희가 밭을 갈고 티벳에선 장동건이 구두를 닦는다더니

이 나라에선 브래드 피트가 인력거를 끌고 디카프리오가 호객꾼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패션센스는 또 어찌나 뛰어난지 거리를 다니는 금발의 잘생긴 덴마크 청년들을 보자  기쁘면서도(안구정화) 한편으로는 슬퍼졌다. (다 내것이 아닌 것들!)


하지만 그 중 어떤 것보다 코펜하겐을 빛나게 하는 것은,

여름이라는 '계절'이었다.

오랜 겨울을 살아가야 하는 북유럽 사람들은 '여름'이라는 이 짧은 선물을 즐기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거리로 몰려나온 것 같았다.


** 뉘하른 항구

오래 전 배들이 드나들었던 곳인데 예전 목조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보트 투어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 코펜하겐에서 광역노선을 타고 30분정도 가면 나오는 클람펜보르( klampenborg) 의 벨레부에 비치(bellevue beach).

내내 걸어다니다 피곤해서 나도 이 잔디밭에 가져간 담요를 깔고 잠깐 달디 단 낮잠을 잤다.

*** 헬싱키에서 페리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수오멘린나(suomenlinna) .

헬싱키 사람들은 이곳으로 소풍을 나와  가볍게 술 한 잔 즐기는 것을 큰 낙으로 알고 있다고.

늦은 오후였는데도 바닷가 바위에 사람들이 모여앉아 wham같은 옛날 팝송을 들으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 내가 있을 무렵 코펜하겐에는 '재즈페스티발'이 열렸다. 거리 어느 곳에서나 재즈선율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그 앞에 앉아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을 놓고 음악을 즐겼다.

그 후에 어딜가나 축제를 만나게 돼 , 나는 내가 여행 날짜를 참 잘 맞췄다고 혼자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북유럽에서는 여름날에는 어느 도시, 어느 날에나 축제가 열렸다.


그들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반짝하고 이 좋은 계절이 지나면 다시 어둡고 긴 밤이, 오후 네시면 세상이 캄캄해지는 겨울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짧은 시간, 행복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여름날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또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했다. 


한달이나 되는 긴 휴가를 떠나고

아침이면 가방에 간단한 먹을 거리를 챙겨 해변으로 갔다.

그들은 미루지 않았다. 햇살이 반짝이는 것은 지금 뿐이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되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미루며 살았다.

이 일이 끝날 때까지만,

회사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만,

집 대출금이 끝날 때 까지만,

애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만. 

지금, 여기에서 찰나의 행복을 맞이하는 대신 나는 그 언젠가 찾아올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 

'화양연화'를 위해 미루고 또 미뤘다. 괜찮아. 이런 건 나중에 곱절로 더 많이 즐기면 돼. 진짜 내가 기다리던 그 순간이 오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행복이란 어쩌면 빛나는 햇살, 길을 가다 들려오는 음악소리, 해변가에서의 나른한 낮잠처럼 찰나의 감각들과 기분들로 쌓아올린 탑일지도 모른다. 한 번에 쌓기에는 너무 벅차고 정작 어느 날 탑을 쌓고도 실망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기다려왔던 행복이라는 탑이 고작 이정도야? 


우리가 미루고 미루는 사이, 짧은 여름은 지나가고 만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계속 내일을 위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며 살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은 멈춰서서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계절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나의 여름은 얼만큼 지나갔는지.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과연 언제인지. 








이전 07화 다음 생이 있다면, 삶이 달라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