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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herazade Nov 01. 2020

내가 모르던 삶과 마주했을 때

마라케시, 모르코 

내가 읽은 많은 여행기에서 말하곤 했다.

언젠가 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마음이 허해질 때가 온다고,

어떤 곳을 가도 그 곳이 그 곳 같고 , 더이상 즐거워지지 않는다면

즉 여행의 권태기가 온다면

그 때는 '사막으로 떠나야 할 때' 라고 말했다.

 

여행은 안가도 여행기를 사모으는데 일가견이 있는 나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사막을 가봐야겠어.

 

사실, 모로코를 목적지로로 선택한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떠나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듯 ,

그냥 하얀 집들과 미지의 아프리카에 대한 선망으로

찍은 것이 모로코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모로코로 왔고 , 또 사막을 찾아갔다.

 

사막투어는 당일, 하루자고 오는 것, 이틀 자고 오는 것인데

당일을 빼고 하루와 이틀의 차이는 그것이다.

얼마나 멀리 있는 사막에 가는가.

하루 종일 달려 사막에 다다르고, 저녁 무렵 낙타를 타고 사막에 들어가

하루 밤을 보내고 또 하루종일 달려 도시로 나온다.

그게 전부다.

 

마라케쉬에서 사막투어를 신청하고 나온 다음날.

아침 일곱시 출발인 미니버스 앞에서 나는 절망했다.

우리 팀의 인원은 모두 11명,

그 중에서 역시나 나는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유럽애들. 미국애들.

설상가상으로 그 나머지 열명이 전부 커플이었다.

그러니 다섯커플과 내가 같은 팀이 된 것이다.

 


이런 길을 열시간을 달려 사막에 다다른다.


커플은 국적도 제각각이었다.

이탈리아, 미국, 영국, 독일, 네들란드.. 그렇게 열 명 , 그리고 나..

그리고 그들은 제각각의 언어로 버스 안에서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여행와서 처음으로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무슨 사서 외로움인가.

여행중에 만난 그 수많은 홀로 여행하는 자들은 사막에 안오고 다 어디로 갔는가?

 

수학여행에서 구불 구불 달리던 강원도 고갯길은 8차선 도로로 느껴질만큼 험난한 산길을 달려오며

진정한 멀미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아갈 무렵,

더이상 이런 길에서 차를 더 탔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무렵,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사막에 도착했다.

 


자기네들끼리 쪽쪽거리던 다국적 커플들은 지쳤는지

말이 점점 없어져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낙타 열 한마리와 우리를 사막으로 인도할

사막에 사는 베르베르인들.

그렇게 또 하염없이 낙타를 타고 모래벌판을 걸어들어갔다.

 

무거운 나를 태우고 가는 낙타도 힘들었겠지만

혹이 솟아있는 등위에 앉아 두 시간을 가야 하는 나도 힘들었다.

안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등도 쑤셔오고

엉덩이가 쓸려 따가웠다.

두시간쯤 지나자 , 이렇게 조금만 더 가면 죽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두번째로 들때쯤  우리는 사막에 도착했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저무는 해는 금빛 모래를 붉게 물들이다가 이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 사막은 완전히 암흑이 되었다.

 

몽골인의 게르같은 천막안에서 저녁을 먹고

다국적 커플들과 서로 이름 말하기 놀이를 했다.

내 이름을 발음못하는 그들은 자꾸 '요원' 이라고 내 이름을 말했는데

내 이름을 발음하는 그들의 얼굴은 마치

 '주먹쥐고 일어서 ' '내 머릿속의 바람' 이런 인디언 이름을 들은 캐빈 코스트너의 표정과 흡사했다.

마치 , 내가 진짜 정보기관의 요원이 된듯한 느낌이었다.


짧은 영어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모로코에 혼자 왔다는 나를, 그들은 브레이브 하다고 말했다.

그래, 나도 모로코가 이렇게 브레이브 해야만 올 수 있는 곳인줄 알았다면 쉽게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식이 용감을 불러온 것 뿐이었다.

 

그 때, 베르베르인 '사이도' 가 우리를 밖으로 불러냈다.

나보다 먼저 텐트 밖으로 나간 이들의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별이 눈 앞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내 평생 살면서 가장 빛나고 많은 별들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손을 뻗으면 저만치에 있는 별이 잡힐 것만 같은 하늘이었다.

 

불 빛 하나 없는 사막에서 별을 보고 누웠더니 어느새인가 내 몸이 위로 가고

별이 아래로 와 있다.

별의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든 느낌이다.

 

왜 한국에선 이런 별을 볼 수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지 않은지 너무 오래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을 보고 있는데, 사이도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라 했다.

유치하기도 하지. 누가 부르겠어. 생각한 순간 영국 커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다음 독일커플, 그 다음은 나였다.

난감했다.

도대체 무슨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금영 반주 기기라도 있다면 내, 화려한 한국의 유흥문화를 기꺼이 그들에게 소개할 의향도 있었지만

여긴 사막이고 게다가 나는 혼자였다.

 

다행히 노래를 부르던 커플들은 신이 났는지 순서에 상관없이 제각각 노래를 불러 제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각 나라의 축구 응원가가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독일, 네들란드..다 축구라면 환장하는 나라들 아닌가.

잠시, 나도 '오 필승 코리아'를 불러야 하나 고민에 휩싸였지만 참기로 했다. 

 

노래 부르기가 지칠무렵,

다들 담요를 깔고 모래위에 누웠다.

별이 눈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베르베르인 사이도는 혼자 온 날 위해 이것 저것 말을 걸어주고 많이 챙겨줬는데

내 옆자리에 누워서 나에게 별자리를 가르쳐주었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이래로 별자리라고는 본적이 없는 나였다.

가르쳐준다고 해도 그 별이 그 별 같았지만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애쓰는 그의 정성을 생각해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줬다.

 베르베르인들은 밤의 사막에서는 별자리로 길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의 나이는 스물 여섯.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을 떠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형제는 남자형제가 여섯, 여자 형제가 다섯이라 했다.

 

영어, 아랍어, 프랑스어, 베르베르어, 그리고 조금의 독일어까지 다섯개 언어를 말하는 그는

놀랍게도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관광객에게 배운 것들이라고 했다.

 

내가 사막에서 사는 것이 좋으냐고, 남은 인생도 사막을 떠나지 않을 것이냐고 그렇게 물었더니 

잠시 생각하던 그가 대답했다 .

 

" 인샬라 " - 신의 뜻이니까요.

 

인샬라...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약간 경건해지면서 또 조금은 슬퍼졌다. 

인생은 모름지기 개척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다....라고

' 하면 된다'라는 새마을 세대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공부하며 

전쟁같은 경쟁사회를 지나온 나에게

그것은 하염없이 슬프면서도 또 숙연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인생은 참으로 모르는 것이다.

나는 여느 도시에서였다면 같은 길을 가기도 꺼려질만한 차림새의 베르베르인과 나란히 누워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 관해 알아가고 있었다.

세상에는 너무 다른 종류의 삶이 있고 너무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별이 져갔다.

 그리고 다시 사막의 아침이 밝아왔다.

 


 

 

사막을 다녀간 많은 여행자들의 말처럼

사막은 그 자체로 너무 특별하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죽어 까무러칠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 황폐함에 눈물이 나거나 , 뭔가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깨달음이 찾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사막의 천막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벼룩에게 물려봤고

잠 못 이룰 정도의 추위가 어떤 것인지 알았고

세상에 학교 한 번 다니지 못해 자기이름도 못쓰면서

5개국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낙타몰이꾼, 사이도 


 내가 상식이라 믿으며 살아온 것은 어쩌면 또 다른 곳에서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살아온 도시에서의 삶이란 

정말이지 사막의 밤하늘에서 빛나던 수많은 별들중의 하나처럼  

이 세상 각자 다른 모습과 의미를 지닌채 살아가는 많은 삶들 중의 하나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것만으로도 나는 여행자들이 말해온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닐까.

이전 09화 인생에 움츠려들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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