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랑 아빠랑 ep.06
딸 단아는 아빠, 엄마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자고 있다. 아직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독립은 할 수 없고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상황이다. 잘 때도 마찬가지.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혹시 자다가 눌리기라도 할까 봐 몇 번씩 깨기도 했다. 그래도 반년이 지나고 단아도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잘 잡으면서는 아직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같이 잘 땐 조심스러운 게 하나 있다. 단아가 배밀이를 통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탓에 잘 때는 늘 베개와 이불로 간이 펜스를 만들어 놓는다. 조금의 움직임을 느꼈을 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후다닥 침실로 들어가 아이를 확인하는 일상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모든 사고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침실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고, 분명 불길한 사고가 터졌음을 직감했다. 우리 부부는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실로 뛰었다. 오 마이 갓..!! 아이가 50cm되는 침대(프레임+매트리스 높이) 아래로 떨어져 울고 있었다. 그것도 밖으로 보이는 곳이 아닌 안쪽 구석 바닥의 틈으로 떨어진 것이다. 어떻게 떨어진 건지 알 순 없지만 잠결에 뒤집고, 배밀이하다가 떨어진 것 같았다.
이렇게 크게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 딸 단아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고, ''나 아파..''라고 말하는 것처럼 더 크게 울었다. 그리고 엄마도 울고, 아빠는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두 여자를 보고 침착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에겐.
살면서 처음으로 '119'에 신고를 했다.
상황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너무나 차분하게 받은 상대방에게 말했다.
6개월 된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상대방이 말했다. "병원에 가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침착했던 나의 이성의 끈이 살짝 느슨해짐을 느끼며 조금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떨어졌다고요. 그러니까 전화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이다. 그 이후에도 답답함을 느꼈다. 해당 지역으로 전화를 돌려주고, 또 같은 설명을 해야 했고 구급차를 보내주는 게 아닌 '응급실'이 있는 병원 번호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각 병원에 전화를 해서 방문이 가능한지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코로나19로 아무나 받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일단 가까운 '아산병원 소아전문 응급실'을 찾아 급하게 차를 몰고 달렸다. 다행히 가는 내내 울음은 멈췄지만 머리에 이상이 있을까 봐 걱정이 가득한 채로 차 안의 공기는 결코 따뜻해질 수가 없었다.
평일 저녁.. 조용한 대형 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다. 보호자는 단 한 명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딸과 아내가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색 '응급실' 간판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강렬했다. 톡으로 내부 상황을 주고받았다. 대기의 연속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를 의식하지 않는 듯한 시스템은 더 답답할 뿐이었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시동도 켜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던 순간 아내와 딸은 밖으로 나왔다.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평소에 잘 떨어질 수 있다. 걱정하지 마라.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다쳐도, 지능엔 문제가 별로 없는 게 대부분이다. 걱정하지 마라.
3일 정도 일상을 잘 지켜보고, 토를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다시 오면 된다. 걱정하지 마라.
약 1개월 정도 잘 지켜보자. 걱정하지 마라.
결론적으로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떻게 '쿵'하고 떨어졌는데 문제가 없었을까 싶지만 의외로 아이들의 '머리뼈'는 단단했고, 의사도, 주변 사람도 너무 태연한 얘기가 이어졌다. '괜찮습니다. 아이는 원래...'
아내와 나는 놀란 가슴을 달래며 끔찍했던 순간을 조용히 간직하기로 했다. 앞으로 더 조심하자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딸 단아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순간들.. 엄마 아빠가 처음인 우리는 아이와 함께 '쿵' 심장이 떨어진 날이었다.
두 번째는 부모의 실수로, 세 번째는 아이가 부쩍 더 커가면서 침대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닌 덕분에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부족한 부모였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역시나 응급실을 찾았지만 갈 수가 없었고, 근처 '정형외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돌아오는 피드백은 똑같다. '괜찮습니다. 잘 지켜봐 주세요'
단아의 이마엔 처음으로 '큰 혹'이 생겼다. 눈에는 크고 작은 눈물이 흘렀고, 콧물까지 흘렀다. 엑스레이를 찍어야 했고, 더 강렬하게 차가운 바닥과 회색 빛깔의 실내 분위기에 저항했다. 우리 딸.
이번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오롯이 우리 부모의 잘못이기 때문에 조용히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우는 딸을 달래며 말이다. 최근 3개월 동안 매달 1번씩 바닥에 떨어진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딸은 이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는 걸까? 오히려 우리를 달랬다. 세상 장난스럽고, 골목대장 마냥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부모를 웃기고야 말았다. ''사랑해.. 단아야, 고맙다''
...
9개월이 된 지금,
여전히 이리 쿵, 저리 쿵하며 다닌다. 바닥에 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앞을 보면서도 '쿵'하며 직진한다. 조심스러움이 전혀 없다. 직진녀
그래도 참 다행이다. 언제나 웃고, 떠든다. 우리도 이렇게 '상처를 받아가며 아무것도 아닌 척' 해내고 있다.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다고요?
'괜찮아요.. 아이는 다 그런 거래요'라고 말해주고 싶진 않다. 다만, 119는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누구보다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가세요.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었으니까.
우리는 왕조시대
왕조시대 Jr. 단아를 응원합니다.
instagram, @baby.wangjo.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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