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꿈을 높게 잡았잖아.
2년 차 신규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명목은 '컨설팅'이다.
얼굴에 야.무.짐이라고 적힌 예쁜 선생님이었다.
교실도 선생님의 열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A4 2장으로 이야기 나눌 흐름을 적어보았다.
언제나 첫 문장은 "왜 교사가 되었는가?"였는데
오늘에서야 드디어 수정되었다.
1. 계속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첫 문장의 낯섦에 신규 선생님은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오묘한 미소로 무슨 의미인 줄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황스럽죠? 그런데 요즘 또래 선생님들 이런 이야기 많이 나누지 않나요? 계속 교사를 할 건지, 다른 일에 도전해 볼건지?"
"네.. 맞아요."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은 어때요?"
"아, 사실은... 저도 원래 문과였는데 교치지원으로 한의대를 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영어 절대 평가 첫 해였는데 89점으로 1점이 부족해서 최저를 못 맞췄어요."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까.
차마 '너무 아쉽다.'라는 위로도 못하겠어서 미소만 지었다.
"그랬구나. 어때요? 도전해 볼 마음이 있어요?"
"사실 여태 그냥 지내왔는데... 얼마 전에 제가 문과 교차지원 가능한 한의대를 검색하고 있더라구요. "하며 웃는다.
"선생님, 마음이 많이 왔다 갔다 할 거예요. 요즘은 분위기때문에 더 그럴거구요. 저는 선생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합니다."
"그럼, 지금은 계속할 것인가? 에 YES!인 거죠?"
"네"
"네, 그럼 2번으로 갈 수 있겠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1점 차이로 최저를 못 맞췄다고 말할 때 선생님의 그 표정이 떠오른다.
6학년 담임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하던 잔소리가
"너희 장래 원하는 직업은 하나같이 다 되기 어려운 거면서 공부는 그만큼 안 하잖아.
꿈을 낮추던지, 열심히 공부해서 그 수준을 만들던지 해야지!"
정승제 일타 수학강사가 입시 준비생들에게 거침없이 하는 말을 내 아이들에게 해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표정은
'제가 안 될 것 같아요? 전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런데 오늘
실력을 높이던지, 꿈을 낮추던지 라는 말은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참 아픈 말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점이 부족하면 한의사를 할 자격이 부족한 걸까.
직업의 적정 인원수는 누가 어떻게 정한 것이며, 과연 합리적인가.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경쟁을 더 할 수 밖에 없는, 더 경쟁이 심화되게 하는 빡빡한 인원 제한이 참 안타깝다.
[100명까지 뽑으면 100등안에 들면 되지!]
라고 말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요즘 아이들의 학습량과 공부 수준은 특히 상위권 아이들은 가히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매우 엄청나게 높다.
그런 충분히 넘치도록 잘하는 아이들에게 100등과 101등은 과연 의미 있는 차이일까?
그래,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영어 1문제를 더 맞췄어야 했다. 이게 현실이다.
"엄마, 오늘 학교에 변호사 왔었어."
"왜? 딥페이크 때문에?"
"학교폭력이랑 교권침해랑 여러 가지 이야기했어."
"그랬구나. 변호사 보니까 어땠어?"
"그냥 직장인 같았어."
"아들, 너 엄마랑 법원 구경 갔을 때 그날 법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잖아."
"응"
"근데, 판사, 검사, 변호사만 아니라 법원 공무원도 법원에서 일하거든. 법원 공무원도 되긴 쉽지 않지만 일의 종류도 많고. 법원에서 일하는데.. 어때?"
(아들아, 엄마는 네가 꿈을 너무 높게 잡아서 좌절하고 상처받을까 두렵단다.)
"싫어"
"검사가 되고 싶어?"
"응"
(검사는 공부가 취미고, 네가 먹은 하리보 젤리 수 만큼의 문서를 편하게 읽는 사람들이라고!)
"그렇구나. 검사 돼서 나쁜 사람들 다 벌주고 싶어?"
"응"하며 씩- 웃는다.
"안 봐줄 거야? "
"응"하며 더 씨-익 웃는다.
그래, 저도 모르게 씨-익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아이들의 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니까.
그러나 좀 더 자라다가, 좀 더 공부하면서
정말 간절한 너의 장래희망이 생기면 그땐 아쉬움 없이 네 꿈에 다다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들!
네가 분명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엄마는 너를 공부시키는 거다.
엄마는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그러게 기회를 줬을 때 눈치를 챘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