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화가들의 친구
나는 언젠가부터 미술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시대의 대표적 미술가의 작품을 찾아보고 간단한 퀴즈를 만들어 보았다.
2023년 1월 1일에 시작해서 그 해 12월 31일까지 1년을 꼬박 했었고
재미있어서 매일 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부터 시작해서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진도가 나갔었고 지금은 잠정 중단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에밀졸라가 계속해서 등장했다.
아마, 소설가이지만 미술비평가이기도 하고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이 많아 그런 것 같다.
그의 첫 등장은 이 그림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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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밀 졸라와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갈라서게 된다. 모네만이 그의 용기에 감동하여 옹호하는 편지를 썼다.
1894년, 프랑스군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독일 스파이 혐의로 남미 '악마의 섬'(실제 지명)으로 종신 유형을 가게 된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조사해 온 졸라는 드레퓌스 대위가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마찬가지로' 함정에 빠진 것을 확신하고 대통령에게 쓴 공개편지를 발표한다. 프랑스 국내의 여론은 좌우, 상하, 종교 등 그야말로 둘로 갈라졌다. 미술 평론가이기도 했던 에밀 졸라는 마네, 세잔, 드가, 모네 등과 친하게 지냈고, 대중이 인상주의 회화를 수용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졸라의 이런 행동에 인상주의 화가들도 양분되었다. 애국심에 불타는 르누아르는 드레퓌스가 유죄라는 쪽에 섰다. 세잔, 드가도 졸라와 갈라섰다.
마네가 졸라와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
그림 속에는 올랭피아와 벨라스케스의 바쿠스가 보인다.
에밀 졸라는 낙선적에 참가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위한 글을 기고했었다.
졸라와 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세잔도 졸라와 관련된 그림을 그렸다.
당시 졸라는 한 신문에 미술 비평을 연재하고 있었다.
세잔은 아들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이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사실 세잔의 아버지는 이 신문을 구독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세잔은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그렸을까요?
점점 에밀 졸라가 궁금해졌다.
특히 그의 대표 작품이라고 하는 <목로주점>을 읽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파리의 낭만적인 소설이리라 생각했는데
주인공의 비참한 삶을 그린 것이라 하여 여러 번 망설였었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면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빨려 들어갔다.
긴박하면서 섬세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묘사가 놀라웠다.
역시 19c 최초의 프랑스 베스트셀러가 명불허전이 따로 없었다.
원래 제목은 'L'Assommoir' (아쏘무아르),
'도살용 도끼 혹은 곤봉'이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치명적이고 돌발적 사건'을 의미한다.
또한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의 선술집 이름이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콜롱브 영감의 주점을
가리킨다.
콜롱브 영감의 주점에는 사실 木壚(널빤지로 만든 긴 상)는 없다.
그럼에도 역자는 목로주점이라는
일견 낭만성 뒤에 숨겨진 삶의 아이러니와 이중성을 드러내려 의도했다.
"제르베즈는 새벽 두시까지 랑티에를 기다렸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읽어 본 소설의 첫 문장이다.
처음 읽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첫 문장이 제르베즈의 운명을 예견하는 듯하다.
인상에 남는 첫 문장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다.
일본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문으로, 문학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로 꼽히는 문장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에는 영어 번역도 한몫했다고 하는데
일본어 음률이 기가 막히게 좋다고 한다. 일본어를 몰라 궁금하다.
쿠포와 결혼(두 번째 남자)한 제르베즈는 랑티에와의 여관생활을 청산하고
서민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며칠 전 갔었던 '창신동' 주택가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1층은 주로 봉제공장 같은 가게나 공장이 있고 2층부터는 주택이다.
지금 주상복합 아파트의 시초가 아닐까!
서울의 한복판에 70년대를 옮겨 놓은 듯했다.
제르베즈가 살던 아파트가 생각났다.
"비좁은 집들의 세간이 바깥으로 나와 있어, 빈곤의 흔적이 엿보였다."
"건물은 소박한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창문에 널려 있는 누더기 같은 옷가지 속에서는 삶의 활기가 느껴졌다.
화분에 심겨 있는 꽃무... 빈곤의 얼굴 뒤로 아이들이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목로주점>의 시간적 배경은 나폴레옹 3세의 통치 하인 1856년부터 제르베즈가 죽는 1869년까지로 당시 독자들이 사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이곳은 가난하지만 활기 있고 정감 있는 곳이리라!
창신동에 가서 받은 느낌도 그러했다.
파리는 19c 중반,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오스만 남작이 중세의 비좁은 골목길, 낡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신도시로 건설되는데 소설 속 아파트도 아마도 그 무렵에 철거된 건물일 듯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