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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an 31. 2024

겨울 시골주택살이

설, 추석 따위의 명절에 부득이 그날 찾아가 인사를 하지 못할 경우, 그 전에 미리 찾아가는 일을 토박이말로 밀뵙기라고 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나에게는 밀뵙기 같은 거다. 다가오는 음력설까지 글을 또 쓸 여유가 있을까 싶다.


시골 주택으로 이사한 지 오늘로 33일째이다. 나는 불교가 아니라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는 잘 모르지만 관세음보살의 33가지 모습에 각각 보살의 이름을 붙인 것을 삼십삼신관음이라고 한단다. 넓은 자비심을 상징한다는데 남편 말만 듣고 갑자기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와 살고 있는 33일째의 나를 생각해보면 보살 맞다 뭐.


나와 아이를 기다리며 먼저 들어와 살고 있었던 남편도 겨울을 온전히 이 시골주택에서 난 것은 이번에 처음이었다. 도시가스 없이 전기로만 돌아가는 이 시골집의 첫 겨울나기란 어떤 것일까 정리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1. 장작

남편이 혼자 지낼 땐 딱 한 번 정전이 있었다고 했다. 혼자면 뭐 잠시 굶어도 되고 어두워도 되지만 아이가 있을 땐 게다가 겨울엔 그런 일에 대비를 해야하니 우리는 장작을 아주 많이 주문했다. 캠핑도 스스로 안 해보고 항상 캠핑족 동생을 따라다니기만 해봐서 장작을 주문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주문한 장작을 실은 트럭이 집 앞에 도착해서 장작을 와르르 쏟아놓고 갔다. 아.. 이런 거구나 하며 언제 정리하지.. 싶었는데 유난히 춥고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이번 겨울 덕에 요긴하게 사용하긴 했다. 그리고 다행히 정전도 없었다.

시골집엔 벽난로가 층마다 있는데 대가족도 아니고 굳이 층층마다 땔 필요는 없고 그날그날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층의 벽난로에 장작을 피우고 있으면 고구마를 굽거나 불멍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공간의 온도를 더 따뜻하게 해준다는 점.


2. 제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는 이번 겨울. 남편은 외국인이라서, 나는 여자라서 군대도 안 가봤는데 올 겨울에 군인 못지 않게 제설을 한 것 같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경사진 것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제설을 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집에 갇혀 차로 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산속 시골집 특성 상 새벽배송도 없고 음식배달도 되지 않아서 차로 나가고 들어오는 길이 먹고 살기 위해 매우매우 중요한데 남들이 새벽배송을 확인하러 현관문을 열어볼 때 우리는 새벽에 동네가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싶으면 아 이거 눈이다, 싶어 얼른 옷을 갈아입고 제설을 하러 나갔다. 고즈넉한 산 속에 울려퍼지면 버억- 버억- 땅 긁는 소리는 눈 치우는 소리이다. 군청에서 염화칼슘을 나눠주기도 하는데 집으로 갖다 주는 게 아니라서 가지러 가야 한다. 염화칼슘을 가지러 나가기 위해서 또 다시 제설을 해야 하는 도르마무 같았던 이번 겨울.. 눈은 이제 끝이기를,


3. 눈썰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는 얘기도 했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경사졌다는 이야기도 했다. 눈치가 빠르다면 그것이 바로 눈썰매를 타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것도 아셨을 터. 엄마 아빠가 제설하려고 준비를 하면 겨울방학에 이사를 하는 바람에 새 동네에서 친구 없이 혼자 심심한 우리 아이는 차고에서 얼른 쓰레기봉투를 가져온다. 눈썰매를 타기 위해서다. 제설에 지친 나는 아이에게 눈썰매를 열심히 타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아이가 타고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눈이 치워지는 효과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다들 부러워했지만 당장 오겠다는 말은 못/안 했다. 제설을 해야 차가 들어오지..


4. 마시멜로

최근 MBC 우리말나들이 원고에 '마시멜로우'가 아니라 '마시멜로'가 맞다는 내용을 적었다. 이번 겨울 장작이야기도 했으니 마시멜로 얘기도 해보자. 벽난로에서 장작을 태울 때는 의외로 마시멜로를 굽기가 어렵다. 벽난로가 집 안에 있기 때문에 화구를 열면 재도, 연기도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주말에 친구들이 아이를 데리고 놀러오면 꼭 마시멜로 굽기 시간을 주는데 벽난로에서는 하고 싶지 않고 조금 춥긴 하지만 시골주택살이의 장점을 살려서 마당에서 장작을 태운다. 그러면 잠시나마 캠핑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연기 걱정도 없다. 나는 도시사람답게 마당에서 장작을 태울 때마다 '코트 탄다! 뒤로 뒤로! 너무 가까이 가지마 옷에 불 붙어!' 따위의 잔소리를 하느라고 바쁘지만 그래도 신난다. 처음 해보는 친구들이 마시멜로를 맘껏 태우라고 기다란 나무막대도 1000개짜리로 구비해두었다.


5. 창문의 성에

기온이 영하일 때 유리나 벽 따위에 수증이가 허옇게 얼어붙는 서릿발을 성에라고 한다.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있어서 잘 모르고 살았는데 주택의 안과 밖 온도 차이가 심해 유리창에 매일 비가 내렸다. 어느 날은 밖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가고 실내온도는 보일러를 틀어서 21도에서 23도를 웃돌았다. 버리는 수건들을 모든 유리창 바닥에 놓고 아침 저녁으로 닦았지만 결국 곰팡이가 창틀 여기저기에 생겨버렸다. 나는 제설보다도 이게 너무 싫었다. 다음 겨울엔 더 효율적으로 성에를 제거하는 방법을 모색해봐야겠다. 이 와중에 이사 전까지 살았던 방 두 개 짜리 아파트의 난방비가 약 40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했다. 주택의 전기료는 굳이 언급하지도 않겠다... 일 해야 한다.. 돈 벌어야 한다.. ㅎ  


마당 장작

여기까지가 지난 33일 동안의 기록이랄까. 오늘 같으면 그냥 봄 같기도 하다. 이제 슬슬 보일러 온도를 하향조정하고 벽난로 청소라도 해야겠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자꾸 날아다니며 내 얼굴을 때린다. 무당벌레는 겨울에도 사방팔방 난리가 났는데 그래도 뱀은 겨울잠을 자니까 뱀걱정은 없어서 좋았다. 다음엔 봄을 온전히 살아내고 다시 기록하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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