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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지현 Feb 11. 2024

월요병을 치유하는 출근길 버스 명상

직장생활 10년 간 치유하지 못한 불치병이 있다. 그것은 바로 월요병. 완치는 퇴사밖에 없다는데, 먹고살아야 하니 방법을 알면서도 치료하지 못한 세월이 벌써 10년이다.


월요병 치료에는 왕도가 없다. 10년 동안 직장 생활했으면 이제는 적응할 법도 한데, 매주 월요일이 새롭고 다양하게 괴롭다. 이직을 하며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됐지만, 집으로 출근하냐 회사로 출근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 월요일은 늘 괴롭다. 심지어 내가 다니는 회사는 월요일마다 오후에 출근하는 아주 감사한 제도가 있다. 그럼에도 월요병은 치료되지 않는다. 그저 늦게 일어나서, 기분 나쁘게 오전을 보내다 출근할 뿐이다. 월요병 치료에는 왕도가 없다.




오늘은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눈을 뜨면 긴 한 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이었다. 그렇지만 눈을 안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직장인의 운명이니까... 머리를 말리는데 오늘의 할 일이 떠오르려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한다. 모든 일을 오늘로 미뤄버린 지난주 금요일의 나를 원망할 뿐이다. '너 다음 주로 미뤘을 때는 좋았지?', '벌써부터 업무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아!' 머리를 말리는 것인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고갯짓과 함께 드라이를 한다. 마음은 여전히 괴롭다. 지독한 월요병의 시작이다.  


패딩을 목 끝까지 올리고, 어그부츠를 신고 밖을 나섰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고 싶었지만 맨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걷기엔 바람이 차다. 아쉽지만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종종걸음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간다. 오랜만에 이 시간에 걸어보는 것이었다. 바람은 많이 찼지만, 한 겨울의 추위는 아니었다. 봄이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몇 분 후 도착하는지 확인했다. '5분 후 도착'이라는 글이 보였다. '곧 도착'은 아니지만 5분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나는 버스가 오길 기다리며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코 끝을 스치는 찬 바람이 느껴진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바람이 많이 차다. 아직 겨울이다. 2월의 찬 공기가 콧 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콧 밖으로 나가고 있다. 아마 내 코 끝과 양 볼이 벌게졌을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 5분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한 둘씩 모인다. 다들 전광판에서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돌린다. 핸드폰을 보는 사람도 있고, 멍하니 앞을 보는 사람도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한 어르신이 다른 어르신께 의자가 따뜻하다며 앉아볼 것을 권유하셨다. 버스정류장 의자가 따뜻한 의자로 바뀌었나 보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저 멀리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버스 탈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나도 인도 끝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카드 지갑도 손으로 꼭 쥐었다. 나는 늘 버스를 타기 직전에서야 카드지갑을 챙겼는지 체크하게 된다. 사실 예전에도 집에 카드 지갑을 두고 나와 출근길 고생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카드를 찍고 버스를 탔다. 다행히 버스 안의 자리는 여유로웠다. 나는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히터로 훈훈한 버스 공기 덕분에 벌게진 코끝과 양 볼이 녹고 있었다. 출근길 내내 주머니 속에 있던 양손을 꺼냈다. 핸드폰도 같이 꺼내려다 이내 행동을 멈췄다. 오늘의 출근길은 핸드폰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창밖으로 동네 풍경을 바라보았다. 익숙하고도 새로운 풍경이다. 저기 못 보던 카페가 생긴 것 같다. 달리는 버스에 이미 지나쳐버린 새 카페의 이름을 보기 위해 창문을 보며 고개를 꺾었다. '언제 저런 카페가 생긴 거지?', '요즘 내가 회사 출근을 진짜 안 하긴 했나 보다.' 잠깐 사이에 소소하게 바뀐 동네 풍경이 생경하고 재밌다. 또 내가 못 본 변화가 있는지 눈으로 꼼꼼히 담아본다.


갓 상경한 사람처럼 창밖으로 바깥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도착지가 목전에 있었다. 누군가 벨을 눌러주진 않을까 잠깐이나마 기대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버스 벨을 누르고 버스 뒷문으로 갔다. 카드도 미리 태깅한다. 이제 내릴 준비를 한다.


버스 뒷문이 열리고, 다시 찬 바람이 내 얼굴에 스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조금만 걸어가면 도착이고, 난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분이 아까보다 좋아졌다. 걸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오늘 무얼 해야 할지, 어떤 괴로운 하루가 펼쳐질지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시간, 걷고 있는 이 순간, 2월의 찬 바람을 몸으로 느끼며 종종걸음으로 걷는 지금이 좋았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출근길의 개운함이 업무시간 내내 유지되는 기적은 없었다. 여전히 일은 많았고, 회의는 피곤했으며, 그토록 염원했던 칼퇴근도 실패했다. 기분 좋은 출근이 노동의 행복까지 보장해 준다면 아마 난 진작에 춤을 추며 출근했겠지. 


비록 노동의 행복까지 보장받진 못했지만, 나는 평소보다 덜 불안하게 한 주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날의 월요일은 여타 다른 월요일과는 달랐다. 컴퓨터를 켜기 전, 책상에서 오늘의 TO DO LIST를 정리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따뜻한 물에 차를 우리며 준비된 마음으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이렇게 월요일을 시작하니, 비록 칼퇴근에 실패했어도 화가 나진 않았다. 오히려 오늘 계획한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다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이 모든 것이 출근길 핸드폰을 보지 않고 출근하는 과정 자체에만 집중해서 얻은 효과라니, 월요병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바쁜 시간 짬내어 명상하지 않아도 된다. 출근하는 시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명상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꺼내지 않고, 출근길 보이는 것을 내 눈에 꼼꼼히 담으면 된다. 그 뿐이다.  


물론 나는 그동안 매일 재택근무를 했으니, 오랜만에 하는 출근 자체가 새로운 자극이 되어 집중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나도 매일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씩 출퇴근하던 시절에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었으니까. 그래서 또 다른 흥미로운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새로움과 생경함을 느끼려면 어떻게 집중해야 할까? 당장 돌아오는 월요일, 나는 어떤 마음으로 출근을 하게 될까?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커튼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새롭게 느낄 수 있을까? 창문을 열었을 때 불어오는 찬 바람의 온도를 생경하게 느낄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월요일이 되어봐야 알겠다. 여전히 월요일은 싫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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