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재작년 말 이직과 동시에 재택근무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코로나 때 재택근무를 경험해 본 직장인들은 다 느꼈을 것이다. 집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패턴이 지속되면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을. 나 또한 그랬다. 근 1년 가까이 풀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좁은 내 방에서만 24시간 생활하다 보니 업무와 일상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책상에 앉으면 출근이었다. 기상한 지 5분 만에 출근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오전 시간에 능률이 오를 수가 없다. 내 뇌는 반수면 상태인데 나를 찾는 문의는 줄줄이 사탕으로 온다. 내 두뇌는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강제로 돌아가며, 나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로 일을 하면 저녁까지도 마음이 불안해진다. 불안이 각성된 상태에서 집중을 하면 퇴근 후에 기력이 쏙 빠진다. 맥없이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일어나면 보이는 정돈되지 않은 침대, 널브러져 있는 베개와 이불, 그리고 저녁시간임에도 마치 조금 전 일어난 듯 헝클어진 머리와 잠옷 차림의 내 모습... 어느 날 퇴근 후 보게 된 내 모습에 나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다짐을 했다. 나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다음 날부터 출근 전 아침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나 스스로와의 사투가 시작됐다. 남들처럼 미라클 모닝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모닝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을까? 원래도 아침잠이 너무 많았던 나는, 재택근무 1년 만에 8시 55분에 일어나는 생활 패턴이 몸에 박혀버렸다. 이런 몸 상태로는 그 무얼 시도해도 실패하기 일쑤였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꼭 명상을 한다길래 나도 도전해 보았다. 그러나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이 한 몸 일으키는 것부터가 어렵다. 자리에 앉는 것도 힘들어 아침 명상이랍시고 누워서 유튜브를 틀었다. 명상이 될 리가 없었다. 정신 차리니 명상 가이드는 저 홀로 끝나버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잠이 든 상태였다. 명상이라는 이름 아래 잠만 10분 더 자는 꼴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차라리 깔끔하게 10분 늦게 일어날 것을...
명상 실패의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겨우 침대 밖으로 몸을 꺼냈다. 양치질을 하고, 가볍게 세수를 했다. 비몽사몽이던 정신이 살짝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거울 앞 나의 맨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조금 부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 부쩍 주름이 고민이었다. 이제 나도 서른 중반을 지나는지라,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는 주름이 마음 아팠다. 화장솜에 토너를 적시고 피부결을 정리해 주었다. 자칫 거친 터치로 피부가 상하지 않게끔 세심히 닦아주어야 했다. 다음으로는 에센스를 꺼내 손등에 살짝 덜었다. 이마와 양 볼, 턱을 꼼꼼히 바르고, 관자놀이 쪽은 깔끔하게 발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좀 더 신경 써서 발라줬다. 손으로 에센스를 펴 바르며 내 얼굴 피부 곳곳의 상태를 느낀다. 얼마 전 레이저 시술을 받아 없앤 편평 사마귀 흔적도 체크하고, 다른 곳에 사마귀가 퍼지진 않았는지 매의 눈으로 살핀다. 와중에 턱에 살짝 올라온 뾰루지가 여간 신경 쓰인다. 요 며칠 잠을 늦게 잤더니 피부로 올라온 모양이다. 얼굴에 에센스를 고루 펴 바르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에센스를 흡수시킨다. 이번에 나름 얼굴에 투자한답시고 내 기준 비싼 화장품인 설화수 윤조 에센스를 샀다. 비싼 에센스니 내 얼굴이 듬뿍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톡톡 두드린다.
다음으로 수분크림을 꺼내 손등에 살짝 덜었다. 역시 이마와 양 볼, 턱에 꼼꼼히 펴 발라준다. 손바닥으로 크림이 잘 흡수되게 톡톡 두드리며 지금 내 피부의 수분 상태를 체크한다. 충분히 촉촉한 상태여서 이 정도로 마무리해도 괜찮을까? 오늘은 피부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뾰루지도 살짝 올라왔고, 요철도 느껴진다. 재생크림을 소량 덜어 살짝 더 발라주었다. 재생크림이 뾰루지와 요철에 좋은진 모르겠지만, 바를만한 크림이 이거밖에 없었다. 스킨케어 라인을 좀 더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뾰루지 올라온 곳에 티트리 오일을 콕 올려주며 오늘의 아침 스킨케어를 마무리한다.
약 5분 남짓의 시간 동안 스킨케어 활동에 집중하다 보니 비몽사몽 하던 정신도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나는 스킨케어에 집중했던 5분의 시간 동안 오늘 아침 명상에 실패했단 사실을 잊었고, 잠시 후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었다. 마음이 눈에 띄게 차분해진 상태였다.
아침의 차분한 마음이 주는 효과는 놀랍다. 매번 비몽사몽 출근하느라 잠옷차림으로 일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잠옷을 벗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어질러진 침대도 눈에 들어와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있던 베개를 원래 자리에 두고, 머리카락을 치우고, 이불을 정리했다. 구겨진 곳 없이 싹싹 이불을 정리하니 내 마음도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토록 정돈된 상태로 출근을 할 수가 있다니, 나 오늘 어쩌면 미라클 모닝을 경험한 걸까?
일상의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하면 그 자체가 명상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늘 관성적으로 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아침의 스킨케어 시간도,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하면 그 순간이 명상이 된다. 사실 나에게 아침 스킨케어 시간은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매번 영상을 틀어놓고, 손으로는 화장품을 바르면서 눈과 귀는 핸드폰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오늘 유튜브라는 방해꾼 없이 조용한 상태로 내 모든 집중을 스킨케어라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피부 보습과 함께 마음의 보습까지 챙겼다. 나는 이 날부터 아침에 화장품 바르는 시간을 스킨케어 명상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스킨케어 명상을 체험한 이후, 아침 명상 시간을 억지로 만들려 하지 않고 있다. 세수하고 화장대로 와서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는 그 순간이 나에게 충분한 아침 명상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시간을 만들지 않아도 내가 집중하는 이 순간이 명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소소한 기쁨이고 위로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킨케어 명상을 시작한 순간부터 오히려 아침에 출근 전 5분~10분 명상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했다. 스킨케어 이후 차분해진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 명상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허락한 것이다. 억지로 하려 노력했을 땐 그렇게 안되던 명상이, 차분한 마음에서는 저절로 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최근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10분 만에 출근하는 일이 거의 없다. 20~30분 정도 나를 위한 아침 시간을 쓰고 있다. 차분해진 상태에서 출근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물론 그렇다고 업무시간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는 기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나를 괴롭힐 때가 많다. 그래도 이렇게 나를 돌보는 활동 하나하나가 모이다 보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초연한 무적의 직장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