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한 달을 꼬박 준비한 프로젝트가 이번주 오픈 예정이다. 디데이가 다가올 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잘할 수 있을까?', '망하면 어쩌지?'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온갖 걱정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침 출근 전, 업무 수첩에 오늘의 마음가짐을 담은 한 문장을 썼다.
회사는 나의 평화를 방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야심차게 쓴 오늘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회사가 날리는 원투펀치에 나는 맥없이 넘어졌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면서도, 퇴근하고 런닝머신을 하면서도 정신차리면 어느새 내 머릿 속에는 프로젝트에 대한 걱정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던 생각의 고리는 의외의 곳에서 끊어졌다. 바로 부엌이었다.
내일은 오랜만에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 (평소에 나는 재택근무를 한다.) 점심값도 아낄 겸 도시락이나 싸볼생각에 요즘 집에서 자주 해먹는 샌드위치를 만들 준비를 하였다.
냉장고를 열어 샌드위치 재료를 꺼냈다. 냉장고 문을 2회 이상 열고 닫는 행위를 하고 싶진 않았다. "삑삑" 빨리 문을 닫아 달라는 냉장고의 울음 소리가 나기 전에 모든 행동을 끝내야했다. 냉장고를 빠르게 스캔하고, 당근과 사과, 크래미, 마요네즈, 딸기잼을 꺼냈다.
삶은 달걀도 준비했다. 껍질을 까서 작은 볼에 넣었다. 스테인레스 휘퍼로 삶은 달걀을 잘게 부셨다. 이 타이밍에 식빵도 2개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굽기 시작했다. 180도에 5분을 설정하고 조리 시작을 눌렀다. 샌드위치 속재료 준비 마무리까지 앞으로 5분이면 충분했다.
당근과 사과를 잘게 채썰었다. 당근은 너무 두껍게 썰면 특유의 당근 맛이 강하게 나서 샌드위치 맛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얇게 썰어야 하지만 칼질에 재주는 없다. 하나 하나 채를 써는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크래미도 잘게 찢어 넣고, 비건 마요네즈를 살짝 뿌렸다. 그리고 숟가락을 가져와 속재료를 열심히 섞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모든 속재료가 섞이면서 맛있는 비주얼을 뽐내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고, 빵이 다 구워졌다는 알람 소리가 들렸다. 에어프라이어에서 식빵을 꺼냈다. 바삭바삭 노릇하게 잘 구워져있었다. 식빵을 접시에 담고, 딸기잼을 발랐다. 스테비아 저당 딸기잼이니, 잼을 바르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진 않는다.
딸기잼을 바른 식빵 위에 샌드위치 속재료를 올렸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활용해 신중히 올리기 시작한다. 속재료가 많아서 대충 올리면 재료가 빵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식빵의 빈틈이 보이지 않게 속재료를 채워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식빵으로 뚜껑을 덮어주었다. 다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랩핑하고 칼로 절반을 잘라주었다. 잘린 샌드위치의 단면을 보니 뿌듯하다. 도시락통에 샌드위치를 넣고, 냉장고에 보관하였다. 내일의 출근을 위한 준비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정신차려보니,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던 내 마음 속 불안감이 놀랍도록 사라져있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시간동안에는 과거의 걱정도 없고, 미래의 불안도 없었다. 오로지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고, 만드는 현재만 있을 뿐이었다. 이 잠깐의 시간을 몰입하며 순간의 즐거움을 느꼈다.
내가 연습하고 있는 명상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로지 현재에 두며 그 순간에 집중하는 행위, 그것이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일상 명상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행위에 몰입하면 나를 괴롭히는 이유모를 불안감을 사라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만드는 이 시간이 그랬다. 만드는 과정에만 집중하였을 뿐인데, 다 만들고 나니 나를 하루종일 괴롭히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나는 이것을 샌드위치 만들기 명상이라 칭하고 싶었다.
마음이 분주하고 소란스러울 때, 나를 위한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고 그릇에 담는 과정 하나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음식이 다 만들어졌을 때, 맛있는 음식과 함께 덤으로 내 마음의 안정도 선물처럼 찾아올 것이다. 샌드위치 명상, 파스타 명상, 볶음밥 명상, 달걀후라이 명상까지, 직장인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일상 명상의 세계는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