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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Mar 10. 2024

10년 차 직장인의 분노 다스리기, 점심시간 라떼 명상

명상을 시작하면서 내 감정 조절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정확히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과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같이 작은 것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과몰입하는 예민 보스라면 꼭 필요한 연습이다.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업무시간 중 여러 번 빡침을 경험할 것이다. 근 4~5개월간 야매로 나만의 명상을 실천하면서, 나는 빡칠 때 화를 잠재울 수 있는 나만의 명상법을 하나 체득했다. 바로 점심시간 라떼 명상이다. 사실 별건 아니고, 점심 시간에 카페까지 라떼를 사러 다녀 오면서 실천하는 명상이다. 나는 점심시간 라떼 명상을 즐겨하지만, 점심시간은 업무시간 중 땡땡이로, 라떼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 아아나 아바라 등으로 응용 가능하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든 직장인이 다 똑같겠지만, 마케터는 특히 월말이 바쁘다. 다음 달 새롭게 오픈할 프로모션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유독 월말은 더 바쁘고 마음이 분주해진다.


그날도 어느 월말과 다르진 않았다. 당장 내일 오픈해야 하는 프로모션을 셋팅하고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그런데..... 나와 함께 협업하는 유관부서로부터 당장 내일 오픈하는 프로모션의 수정 요청이 들어왔다. 모두 이미 협의가 완료된 내용이었는데, 이제 와서, 오픈 하루 전날 수정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나만 혼자 고생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면 당연히 why not이다. 하지만 이건 나 혼자 고생해서 반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엮여있는 유관부서가 너무 많았다. 수정해 달라고 바로 뚝딱 반영할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었다.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누가 할 것이며 (내가 해야겠지) 갑작스러운 변경에 따른 불만 제기는 누가 들을 것이며 (내가 듣겠지)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얼마나 클 것이란 말인가?(딱 봐도 리소스 투입 대비 효율은 미미해 보였다.)


나는 난색을 표했고, 실무진 선에서 결정하기 힘들며, 위로 올려서 의사결정을 받겠다고 답변하였다. 관련 아젠다를 팀장에게 보고하였고,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전 업무가 끝났다. 내일 오픈할 프로모션을 차분히 셋팅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내겠다는 나만의 플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예상 밖의 이슈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우고 해결되지 않는 이슈를 손에 쥔 채 끙끙 앓고 있었다.


- 아, 나 지금 예상치 못한 이슈에 화가 난 상태네.

- 지금 이 기분에 과몰입되어 있어 봤자 나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 안 되겠다. 나가서 라떼를 사 오며 기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해.


명상을 하며 달라진 점 하나, 내 감정을 진단을 하고 스스로에게 응급 처방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불안감이 올라오면서 내가 지금 예상하지 못한 변경사항에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졌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더 이상 이 감정에 과몰입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감정을 끊어내야 했다. 나는 주섬주섬 패딩을 입고 밖을 나섰다. 목적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테이크아웃 하고 돌아오면 왕복 25분, 명상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봄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쌀쌀하다. 양 볼과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내 호흡에 집중한다. 들숨에 찬 바람이 들어오고, 날숨에 공기가 나간다.


- 빨랑 빨랑 결정 나야 하는데, 언제 결정해서 언제 다 수습하지?

- 오후 안에 전부 대응이 가능하려나?

- 개 욕먹겠네...

- 오늘도 칼퇴는 글렀구만. 아이고 내 팔자..

- 아, 나 또 일 생각하고 있었네?


호흡에 집중하겠다 마음먹기 무섭게 귀신같이 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오전의 스트레스 발원지에 내 마음이 뺏겼다.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들숨에 찬 공기, 날숨에 따뜻한 바람.


- 오후에 이 일이 다 수습이 될까?

- 아... 나 또 일 생각하고 있네?


예민한 상태에서 명상을 시도할 때는 호흡에 집중하기 더 어렵다. 머릿속에 업무에 대한 걱정과 화가 가득 차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내 마음은 걱정 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괜찮다. 생각이 나는 건 당연하다. 나는 그저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시 내 호흡으로 돌아가면 된다.


걱정과 알아차림, 호흡의 집중에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였던 카페에 도착한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마친다. 언제나 메뉴는 똑같다.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 따뜻한 카페라떼다.


"주문하신 따뜻한 라떼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손에 따뜻한 라떼를 쥐고, 다시 업무를 하러 돌아간다. 돌아갈 때는 커피를 쥔 손의 따뜻한 온도에 더 집중을 해보려 한다. 양 볼과 코 끝으로는 찬바람을 느끼고, 왼쪽 손에는 따뜻한 커피의 온도를 느낀다.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며 걷는다. 내 걸음걸이에도 집중해 본다. 양 발에 힘은 균일하게 들어가고 있는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며 걷는다. 손으로 느껴지는 라떼의 따뜻한 온도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오후에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일하면 오전보다는 좀 더 좋은 기분으로 일할 수 있을 거야. 나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도 소소히 전한다.


돌아가는 길,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을 거치게 된다. 나는 이 오르막길이 좋다. 종종걸음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약간 숨이 가빠지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내 호흡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숨이 살짝 가빠지고, 심장의 두근거림도 느껴진다.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빨리 복귀하자. 걸음에 속도를 조금 더 내기 시작한다.




다시 책상 앞, 따뜻한 라떼와 함께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사실 오전 상황에서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마음은 무겁고, 나는 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칼퇴는 글렀다. 라떼 한 모금을 마셔본다. 따뜻하고 고소한 라떼가 참 맛있다. 내가 이 라떼를 사 오려고 20분을 걸었구나. 라떼를 마시며 생각해 본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나는 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는 결국 이 일을 해결할 것이고, 이 문제가 해결됐을 땐 더 이상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어차피 내가 해결하게 될 문제라면,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내 인생에 크게 중요한 아젠다가 아니다.


명상을 하며 달라진 점 두 번째는, 감정에 과몰입하지 않고 초연해지기 위해 순간마다 마음을 다잡는 습관이 생겼단 점이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내가 다 해결할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지금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는 마인드는 습관적으로 걱정하고 스트레스받는 나의 예민보스 기질을 내려놓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월급 받는 직장인은 떨어지는 숙제를 안 할 수가 없다. 어차피 내가 해결할 일인데, 괜히 감정에 공력 쏟지 말고 나를 보호하며 일해야 한다. 명상은 내 감정으로부터 거리두기 하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오전에 빡칠 때는 10분 정도 떨어진 카페까지 걸어가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 올 것을 추천한다. 목적지까지 갔다 돌아오는 그 과정, 내 호흡과 걸음걸이, 코 끝과 손 끝에서 전해지는 온도에 집중해 보자. 빡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도 괜찮다. 알아차리고, 다시 내 호흡과 걸음걸이에 집중하면 된다. 이렇게 짧은 명상을 끝내고 돌아와서 자리에 앉으면, 과몰입되었던 감정으로부터 조금 거리두기가 가능해진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히 거리두기를 하긴 어렵다. 나도 아직 그렇지는 못하다. 하지만 빡칠 때마다 나에게 말해준다. "너 지금 빡쳤구나? 나가서 라떼 한 잔 사 오자. 라떼 사 오면서 명상하면 니 기분 좀 나아질 거야." 나에게 해주는 이 말 한마디가 은근 힘이 된다.


어느 점심시간에 반짝 반짝 빛나는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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