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대면보고는 사양합니다

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by 정글

"진정한 리더십은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공무원은 서류에서 시작해서 서류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사람보다 서류가 더 중요한 문화가 이어져오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솔직한 대화보다 형식적인 보고가 우선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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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손, 무거운 발걸음

30장이 넘는 기획안을 작성했다. 제일 첫 장에는 한 장 짜리 요약자료를 작성했다. 질의응답을 위한 예상 질문지까지 준비했다. 결재서류를 들고 복도로 걸어가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과장이 해외출장 중이라 과장 대리업무를 맡고 있던 터였다. 지난 주말을 반납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보고서였다. '제발 이번엔 기획안이 통과되길, 이번에는 괜찮을 거야.' 속으로 되뇌며 청장실 문 앞 대기실로 갔다.


이미 K 과장과 H 과장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누가 계십니까?" 윤 비서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금 인력계획과장 결재 중이십니다." 문틈 사이로 청장 고함소리가 들렸다. 벽에 기대서서 결재서류를 열어 요약분을 한 번 더 훑었다. 보고서 견출지가 붙어 있는 곳을 펼쳐 데이터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주에 숫자 하나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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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실 문이 열리고 인력계획과장이 나왔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조심해, 오늘 청장 기분이 별로야"라며 귓속말을 했다. 순서를 기다리던 H 과장은 다음에 결재받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K 과장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역시 굳은 표정이었다. 이제 내 차례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똑 똑 똑.'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들어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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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의 보고서를 결재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정과 보완을 거쳐야 하는지 모른다. 끝없는 수정 요구와 부담스러운 대면 보고는 왜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전자결재시스템이 있는데도 이중으로 대면보고를 하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전자결재를 올리기 전 대면보고를 먼저 해야 하는 관례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감독관청과 지방청뿐 아니라 현업 우체국에도.


국장의 기분과 상황을 살피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하며,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던 시절. 나 역시 그런 답답한 경험을 했던 터라, 비효율적인 결재 문화를 깡그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장실 문부터 개방했다.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을 알아야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보고와 결재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중요한 결재를 제외하고는 과장 전결로 처리하도록 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보고를 전자결재로만 처리하도록 했다. 전자결재 시스템이 이미 구축되어 있음에도 '관례'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대면보고 후 전자결재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과장 중심 업무가 처리될 수 있도록 위임했다.


하지만 대면보고가 없어지자 직원들과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다. 새로운 소통 방식이 필요했다. 현장을 찾아가서 격의 없이 지내려고 애썼다.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다 보면 보고서에 담기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들과 직원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놓쳤던 현장의 어려움과 개선 아이디어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국장을 찾아가는 보고'에서 '국장이 찾아가는 소통'으로의 전환은 조직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파트너십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변화가 가져온 시너지 효과


첫째, 신속한 업무 처리

이중 업무(대면보고 + 전자결재)가 사라지면서 결재 소요시간이 단축되었다. 국장실 문 앞에서의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이 사라지자 보고가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변했다.

둘째,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 능력 향상

대면보고 부담이 줄어들면서 직원들이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창의적인 개선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셋째, 상하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의 인식 전환

직원들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증가하면서 전체적인 조직 만족도가 상승했다. 우체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직원들 표정이 밝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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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다가가는 리더십

"Leadership은 Readership에서 나온다." 이 말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의미를 넘어, 리더가 팀원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정한 리더는 직원들을 국장실로 불러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일터로, 삶 속으로 직접 다가가 소통하고,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가정과 일터를 즐겁게" 다시 근무하고 싶은 우체국은 바로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여 완성된다. 대면 보고의 폐지는 업무 효율성 증대를 넘어, 직원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현장 중심의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수평적이고 신뢰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모든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때로는 익숙한 관행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조직을, 그리고 나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킨다.


내일 29화, 웃는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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