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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점점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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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석순 Oct 20. 2024

점점 (7)

  처음에만 해도 관리소장도 민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 여기고 무리한 요구도 다들 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올해 제초 작업은 기계가 아닌 일일이 낫으로 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생각이 한참 어긋났다. 단지 내 주민들의 휴식과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했다가 섬세하고 완벽한 제초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얼마 전 기계로 제초할 때 옆에서 구경하던 노인에게 나뭇가지가 튄 게 문제인 듯했다. 노인은 다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민원을 제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민원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103동 경비가 웅얼거리는 소리는 관리소장은 놓치지 않았다.     


   “말을 똑바로 하셔야죠. 민원이 아니라 작업에 서툰 탓입니다. 그게 103동이었죠?”     


   그 일로 오래전 제초 작업 중 모래가 튀어 주민의 차에 흠집이 생겼던 일까지 불거졌다. 그래도 관리소장 선에서 적당히 타협할 수 있지 않았었나 싶었다. 볼멘소리에도 관리소장은 결연했다.     


   “이미 B조까지 동의한 내용입니다. A조 중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죠?”    

 

   다들 고개를 숙이고 딴청을 피웠다.   

  

   어쩌면 체력이 떨어지는 경비부터 내치고 새로 뽑을 계획인지도 몰랐다. 아무 이유 없이 자르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실수나 부족함이 드러나게끔 의도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때껏 경비들이 관리소장 지시에 고분고분 따른 적이 별로 없으니 싹 물갈이하려고 내내 벼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민원을 핑계 삼아 경비들을 길들이려는 수작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다 일부러 경비들의 사소한 잘잘못까지 따끔하게 지적하면서 서로 이간질하고 내분을 우려해 사적 대화까지 금지한 거란 확신에까지 닿았다.     


   그러고 보면 저번부터 주어진 새 업무도 그저 효율적인 관리 때문이 아니라 미화원과의 와해를 노린 건가 싶었다. 청소할 때 계단 끝 신주까지 꼼꼼히 닦으라는 통에 미화원들 사이에서도 관리소장을 향한 불만이 터져 나온 참이었다. 변색됐거나 때가 눌어붙은 신주는 기계가 아니고서야 완벽하게 세척할 수 없었다. 형편을 아는 탓에 여태 느슨한 기준을 적용했지만 관리소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애걸복걸해 봐야 오래된 단지일수록 청결이 최우선이라고만 했다.     


   “이왕 순찰하시는 김에 같이 점검해 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관리소장은 경비들에게 특히 신주를 꼼꼼하게 살펴보라고 귀띔했다. 주민들이 눈여겨본다면서. 이어서 쾌적한 환경은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순찰하면서 전단을 떼라는 것까지는 그럴싸했다. 몇몇 주민들이 왜 할인 정보까지 멋대로 가져가느냐고 항의했지만 관리소장의 지시를 납득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청소 상태를 검사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구석에 뭉쳐진 작은 먼지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얼룩이라도 지나치면 고스란히 관리 감독 소홀로 이어졌다. 곧 업무평가에도 영향을 줄 테고 나중에 재계약 때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화원과 마찰을 빚을 때도 잦았다. 관리소장에게 한 소리 듣고 나온 미화원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외친 적도 있었다.     


   “서로 사정 뻔히 알면서 다들 진짜 그러는 거 아냐! 내가 가만 안 둬.”      


   어느 순간 경비와 미화원 사이에 인사는커녕 건성으로 고갯짓만 주고받을 뿐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마주쳐도 홱 돌아서기에 바빴다. 점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서 보기 흉하다거나 점만 건성으로 찍어 댈 뿐 현관문 주변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어쩌면 미화원에게도 업무가 추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들이 순찰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성실히 점을 찍고 있는지 감시하라는. 그렇다고 확인해 볼 순 없었다.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릎보호대를 지적받은 후에는 다른 경비들도 나와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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