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의 폐는 부풀어 올라도, 귀여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의 노견 정호는 헥헥대고 있었다. 정호가 어렸을 때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부터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며 나를 귀찮게 했는데, 개는 나이가 들수록 잠이 더 많아졌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다는데, 개는 나이가 들수록 잠이 더 많아지는 걸까.
16년을 같이 산 나의 정호도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나보다 더 늘어지게 잠을 자곤 했다. 내가 출근하는 것도 모른 채.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먼저 일어나 앉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선홍빛 혀를 살짝 내밀고 가쁘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덥기엔 여전히 봄이었고, 어제 무얼 잘못 먹었나 생각했을 땐 늘 똑같은 사료를 먹었다.
정호가 왜 저렇게 숨을 쉬는 걸까, 어제의 나날을 잠결에 꾸역꾸역 복기하다가 눈을 떴다. 정호가 조금 더 어렸거나, 내가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우리 가족은 그 징조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 버렸을 것이다.
어리면 어리니까 괜찮아지겠지,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돈벌이를 안 하고 있다면 동물 병원비부터 걱정이 됐을 테니 병원에 가는 것을 주저했을 것이지만, 다행히 정호는 노견이었고, 나는 돈을 벌고 있었다.
정호가 처음 아프던 당시의 나는 신입이었다. 연차 오래된 언니가 당일에 휴가를 쓰고 가까운 동물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근데 와중에 그렇게 헥헥대고 있는 모습조차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픈 모습조차 귀여워서 그랬을까. 정호의 병이 심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정호의 숨이 찼던 이유는 폐에 물이 차서라고 했다. 입원할 것 없이 바로 퇴원하고 일주일 치 약을 지어 받아왔다. 정호는 다행히 괜찮아졌다. 의사 선생님은 “정호가 약발이 잘 받네요”라고 웃으며 말해주었고, 나는 그 말에 괜스레 뿌듯해졌다. 그리고 모든 걱정이 수그러들었다. 정호는 잠깐 아픈 것이며, 금방 나을 것이고, 이것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밥을 잘 먹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잘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누워있는 내 얼굴을 발톱으로 밟고 지나가도 아픔보다는 그저 웃음이 나던 그런 나날들. 회사에서 힘든 날 얼른 집에 가서 정호를 안고 싶다고 생각하며 바삐 움직이던 퇴근길의 발걸음, 월급을 받으면 정호 간식거리를 쇼핑하던 낙이 참 좋았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엄마 몰래 넣던 강아지 간식이 아닌, 수제 유기농 간식거리를 사줄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던 나날들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정호가 약발을 잘 받네요.”라고 말한 후, 그러니까 내가 내 강아지는 귀여운 것도 모자라 약발까지 잘 받는 건강한 강아지라는 자부심이 생기자마자 다음 말을 덧붙였다. “폐가 부풀어 오른 이유가 심장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예요.” 나는 이내 심각해졌지만, 그럼에도 정호는 지금 내 품 안에 있고, 분명 선생님이 약발을 잘 받는다고 했으니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심장이 비대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으나, 약으로 유예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모든 전조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투병 생활이었다.
그날 이후로 일 년 동안은 정호가 잠들었을 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심장 소리가 예전보다 커졌나? 심장 박동 수가 예전보다 많이 뛰나? 그 작은 심장에 내 귀를 대어보았다. 정호의 심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펄떡펄떡 둥둥거리며 뛰는 심장이 지금 잘 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리해서 뛰고 있는 것인지, 나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정상인 강아지들은 1분의 박동수는 어떻게 되는지, 강아지 심장에 좋은 음식은 무엇인지 검색했다. 정호가 눈을 뜨고 돌아다닐 때는 이따금 궁금해졌다. 이렇게 똑같은데 정말로 아픈 것이 맞는지, 정호의 심장은 지금쯤 얼마나 커진 건지, 너는 왜 아픈 와중에도 그렇게 계속 귀여운 것인지 그래서 왜 슬픔보다 또 내게 기쁨을 주는지, 우리는 나름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했는데도 너는 끝까지 아리송한 존재다.
정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여러 생각을 했다. 동네 동물병원이 아닌 조금 더 큰 병원에 가야 했을까, 아니 대학 병원에 가야 했을까. 정호는 결국 심장이 아닌, 심장약으로 인해 망가진 신장으로 인해 죽었다. 차라리 심장약을 먹이지 말았어야 했을까, 정호가 죽기 며칠 전에 내가 그때 약속을 잡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회식을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부지런했다면, 내가 더 정호를 사랑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도 나는 궁금하다. 과거의 어떤 선택들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하루라도 너의 목숨을 더 길게 유지할 수 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너를 붙잡고 있던 것이 내 욕심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