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쌓으면 정호를 더 빨리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원래부터 무속신앙을 좋아하던 나는 키우던 노견 정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로 그런 것들을 더 믿게 되었다. 특히 카르마. 내가 더 선의를 베풀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덕을 쌓고 다니면 어쩌면 정호를 더 빨리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정호를 떠나보낸 이후에 윤회사상이나 덕, 환생 등을 자꾸 믿게 된다. 특히 정호가 어쩌면 나의 수호천사가 된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후로 더욱더 카르마라는 것을 더 믿게 되었다. 우리 어서 빨리 만나자, 내가 더 베풀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테니 내게 어서 와주겠니.
정호와 같은 생명 종인 동물들한테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정호의 반려인이라는 것을 다른 동물 친구들한테 떳떳하게 말하고 싶다. 정호가 나를 부끄럽게 느끼지 않을 만큼.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싶을 만큼의 보호자가 되고 싶다. 물론 인간이 동물에게 100%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어느 날 길을 걷는데 멀리서 작은 갈색의 무언가가 축 늘어진 형태로 길가에 있는 게 보였다. 참새 같았다. 가까이 갈수록 죽은 참새이라는 것에 확신이 들었다. 내장이 터져있으면 어떡하지, 시선을 앞에만 보고 걸어갈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렇게 길 한가운데 있으면 발에 밟히거나 자전거에 밟힐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새 사체와 가까워질수록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왜 피하지를 못했니. 왜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버린 것이니, 나는 결국 참새 사체를 무시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참새는 곤히 죽어있었다. 상상했던 내장이나 피가 보이는 징그러운 모습이 아니라, 고이 눈을 감고 있었다.
정호는 갈색의 흰색 털의 시츄였다. 옷을 입으면 유독 노란색이 잘 어울렸다. 그래서 그런지 꽃잎이 무수히, 동그랗게 피어난 민들레를 보면 정호 같다고 생각했었다. 정호가 떠난 뒤 길에 떨어져 있는 갈색 솔방울이나, 노랗고 흰 들꽃들을 보면 참 정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꽃은 유독 흰색과 노란색이 많았고, 나는 그 꽃들을 보며 자주 미소 지었다.
참새를 본 순간, 나는 정호를 떠올렸다. 세상은 이렇게 열심히 시끄럽게 움직이는데 그 가운데 조용히 누워있는 모습이, 그 갈색 털을 가진 또 다른 동물이 정호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마당이 있는 한 음식점이 있었고, 다시 살펴보니 삽이 있었다. 나는 삽을 들고 와 참새를 한 나무 밑으로 옮겨주었다. 더 이상 다치지 말라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그곳에서 정호를 만나면 내가 너를 옮겨주었다고도 전해달라고 부탁도 했다.
다시 길을 걷는데 몇몇 참새가 내 머리 위로 짹짹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그냥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해석했다. 고맙다는 말은 됐다고. 더 행복하고 죽지 말고 인간보다 더 오래오래 살라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