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노 Oct 21. 2021

정호는 나의 수호천사가 되어준 것일까

정호가 떠난 후 호의들에 대해서 생각해



요즘은 가까운 사이에서의 얻는 공감보다 예상치 못했던, 완벽한 타인에게서 받는 선의에 마음이 더 뭉클하다. 따뜻한 마음과 또 다른 따뜻한 마음과 더 따뜻한 마음이 모이면 어떤 모양일까.  


키우던 노견 정호가 무지개다리를 떠난 뒤로 여러 호의를 만났다. 이상하리만큼 정호와 관련된 일에 늘 이유 없는 따뜻함과 다정한 따랐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그리고 정호에게 고맙다고 되뇌었다. 나의 마음을 지탱해준 선의들로 인해 나는 이렇게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나마 조금씩 글을 쓸 수 있다. 

정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바로 다음날엔 비가 왔다. 회사를 쉴까도 고민했지만, 그냥 회사를 갔다. 점심은 혼자 김밥을 먹었다. 어제 정호가 죽었는데도 배가 고팠고, 밥은 잘 넘어갔다. 그런 내 모습에 질려하며 김밥을 먹고 있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러 회사를 나올 때는 비가 오지 않아 우산 없이 나왔는데, 빗방울이 꽤 쏟아지고 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이 조금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인가? 벌써부터 이런 혼잣말과 상상에 헛웃음이 났다. 밥만 잘 먹어놓고 또 갑자기 울컥해졌다. 네가 진짜로 없다는 것이 바로 실감이 났다. 그냥 비를 맞고 회사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김밥집을 나설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문 앞에 있는 우산 쓰고 가요."


김밥집 사장님이었다. 우산을 다시 돌려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눈치채셨는지 사장님은 그냥 가지라고 했다. 우산 하나 내어주는 마음. 그 마음이 그렇게 큰 지 몰랐다. 


정호가 죽었는데, 비도 오는데, 갑자기 들어온 다정한 마음에 어쩐지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그날 사장님이 주신 우산을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며 눈물을 훔쳤다. 우산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청승맞게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아서 좋았다. 그날은 사무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자꾸만 바라보았다.  


정호의 죽음 이후로 애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잊지 않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죽었을 때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지,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49재, 죽은 영혼이 이승을 머물다가 진짜로 천국으로 올라가는 날. 나는 그날 정호를 닮은 꽃을 샀다. 작고 노란 꽃봉오리들이 알알이 동그랗게 만개한 정호를 닮은 꽃. 그 꽃을 사자 처음 간 꽃집 아주머니는 작은 장미 한 송이를 내게 무료로 주었다. 고작 3,000원짜리 꽃 한 송이를 샀는데 추가로 주신 빨간 장미꽃. 완벽히 모르는 타인에게서,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타인이 내게 준 작은 선물.  


그 꽃집에서 정호의 1주기 때 정호를 닮은 또 다른 꽃을 샀다. 이번에는 아예 작은 꽃다발 자체를 무료로 받았다. 어차피 내일 꽃시장에 갈 거니, 그냥 무료로 준다고 한 노오란 튤립. 내 눈엔 여전히 싱싱하고 활짝 핀 정호를 닮은 노란 튤립. 날이 날인지라, 나는 그날 꽃다발을 들고 네가 좋아하던 공원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흘렀다. 정호야, 너와 관련된 것들은 자꾸 이렇게 다정함으로 물드는구나. 


나는 종종 이유 없는 선의 속에, 그중 너와 관련된 호의 속에 아리송함을 느낀다. 세상은 원래 따뜻함으로 가득 찼는데 내가 그동안 몰랐던 것일까? 아님 네가 정말로 내 곁에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내가 정말 어떤 희망을 걸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 네가 내 곁에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나의 수호천사가 되어주었다는 것을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일까? 


어쩐지 정호가 떠난 이후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이전 회사에서는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연달아서 성공해 타인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 덕분에 더 규모가 큰 회사로 이직을 했다. 정호가 없다는 것만 빼고 나는 정말 잘 살고 있었다. 단지 정호가 없다는 것뿐. 그것뿐이었다. 


나는 사실 조금 힘들어도 되니까 차라리 네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괜한 말을 했다. 

아니다, 정호야, 나는 그저 내 곁에 있다고 믿게 해주는 네가 고맙다. 많이 고맙다. 

이전 03화 6.9kg만큼의 빈자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