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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노 Oct 13. 2021

6.9kg만큼의 빈자리

혹은 슬픔, 혹은 공허함

 나는 동그랗고 복슬복슬하고 오동통한 강아지들이 너무 귀여웠다. 강아지는 자고로 많이 먹고 포동포동하고 덥수룩해야 귀여운 것이라고. 반듯하게 털이 잘 깎인 강아지나, 곰돌이 컷이나 예쁘게 미용을 한 강아지보다, 강아지의 얼굴에 내 얼굴을 대면 바로 구수한 꼬린내가 날 것 같은 모습에 애정을 느꼈다. 


나의 개, 정호는 6.9kg이었다. 시츄. 소형견. 정호가 7kg을 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나날도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과체중에 걸쳐 있던 나의 작은 강아지. 정호의 오동통한 연분홍빛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뱃살을 좋아했고, 조금은 탄탄한 다리를 좋아했다. 마른 것보다는 통통한 것이 훨씬 귀여웠던 정호는 거의 내 팔 반만 했다. 그런 정호를 10분 만이라도 안고 있으면 팔이 저려왔고, 20분 이상 안고 있는 날은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렸다. 다행히 정호는 안기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 걷는 걸 좋아하던 아이이므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진 않았다.


정호는 심장병을 진단받고 난 후 서서히, 슬며시 살이 빠졌다.  심장약을 꾸준히 먹는 약 1년 동안은 6.9kg에서 몇 달 후에는 6kg 정도, 그다음에는 5kg대를 유지했다. 그때의 정호 정도면 적정 체중이었는데도 그 아이의 0.5kg 빠지는 것조차 마음이 좋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오히려 지금 체중이 더 좋다고 말했으나, 마음이 마땅찮았다. 7kg 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지, 살이 빠지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다. 


정호가 죽기 직전엔 가차 없이 체중이 줄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상황이 악화된 것일까. 오늘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이유를 찾아본다. 정호가 죽기 직전에 사료를 안 먹기 시작했다. 소고기를 구워주어도, 연어를 구워주어도, 닭죽을 해주어도, 황태죽을 해주어도 할짝할짝 핥으며 두 세입 정도 먹더니 4kg까지 빠졌다. 정호가 죽기 전엔 3kg대였다. 말 그대로 뼈와 늘어난 가죽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척추뼈 마디마디가 보이는 등, 혼자서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몸, 털이 우수수 빠진 피부, 떼어도 떼어도 떼지지 않던 누런 눈곱과 그로 인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정호. 대소변을 누고 난 뒤에 일어날 힘이 없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리던 정호의 마지막 모습.    




정호가 이 지구를 떠난 뒤 처음 집에 왔을 때는 그 아이의 빈자리가 어이가 없었다. 이 작은 집에, 그 작은 것 하나가 없어졌다고 이렇게 허전할 일인가. 그냥 그 아이가 누워있던 자리가, 내가 앉아 있는 자리보다 작은 그 자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허망했다. 네깟게 뭔데. 고작, 그래, 많이 쳐줘 봐야 6.9kg짜리가, 실제로 3kg짜리가 없어진 것이 이렇게 허전할 일인가. 


우리 집이 좁아서 그런 것일까. 우리 집이 넓었다면 너의 부재가 조금은 덜 어색했을까. 아니면 내가 너를 식단 조절 없이 너무 많이 먹여서인가. 네가 조금만 더 작았다면 이렇게까지 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자꾸 네가 좋아하던 자리, 네가 자던 자리, 네가 누워있던 자리, 네가 걸어 다니던 자리, 이 작은 집구석구석을 눈으로 좇는다. 


점점 너의 형상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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