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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노 Oct 24. 2021

정호는 내 꿈속에 찾아온 걸까 아니면 나의 무의식일까?

무의식과 예지몽 그 사이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통로라고 했다정호를 화장하고 온 날은 쉬지 않고 울어 체력이 다했는지 집에 오자마자 나는 침대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이내 곧 잠이 들었다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가깊이 잠들지 못했지만 잠은 들었다야속하게도.


나는 자고 있으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듯이 잠을 자는 사람이다유럽 여행 중 야간 버스에서도야간열차에서도 한숨도 깨지 않고 잘 자는 사람이었다찜질방친구네 집심지어 여행 중에 너무 피곤한 날은 길거리에 오도카니 있는 벤치에서도 쪽잠을 자는 사람이다그런 내가 자꾸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고또 어떤 날은 정호의 대변 냄새를 잠결에 맡아 잠깐 깼다그런 나날이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


2~3주에 한 번씩 정호가 꿈속에 나타났다찾아와 준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그렇기엔 정호는 꿈속에서 너무 아팠다한 번은 꿈속에서 정호의 심장이 대동맥 하나에 겨우겨우 너덜거리며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꿈을 꿨다급한 마음에 원래 다니던 병원이 아닌 새로운 병원으로 갔더니 그 병원 원장이 왜 그 병원에 다녔냐며 거긴 돌팔이 의사라고 말.


어떤 꿈은 이렇기도 했다이미 유골이 된 정호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곳이 있다고 해서 굉장히 이상한 에스컬레이터와 360도 회전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동네의 지하실로 들어갔다그곳에서 자기만 믿고 몇 시간 후에 오라고 해서 갔다니유골이 죽이 될 정도로 습해서 결국 정호를 살릴 수 없게 된 꿈.


그 꿈을 꾸면서 나는 처음으로 울면서 잠에 깬다는 것이자면서도 울 수 있다는 것이잠에서 우느라 숨이 막혀 깰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리고 그 후로 잠을 잘 수가 없어 뜬눈으로 밤을 새 지웠다아니 그 꿈으로 인해 뜬 눈이 아니라 우는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야속하게 아침은 새로 시작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세수를 하고 회사를 갔다.




정호를 보낸 뒤 6개월이 지날 때쯤에는 그래도 정호와 직접적인 죽음과 조금 멀어졌다내가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내 품속이나 내 옆에 정호가 있던가우리가 처음 같이 산 집에서 불이 나 어린 시절의 정호오동통하고 털북숭이인 그 아이를 구하러 뛰어 들어간다던가 좋지도 나쁘지도 그런 꿈들이 이어졌다그래도 그렇게 꿈속에 네가 나와준다는 것이 고마웠다그리고 그런 날은 아침부터 네 생각이 나서 더 힘이 났다오늘은 정말 오늘 하루 잘 보낼 것이라고.


신기한 경험을 당근 마켓에 정호의 간식을 올려두고한 두 달 동안 연락이 없었다안 팔리나 보다 하고 그냥 버려야지 생각한 그날, 꿈속에서 정호가 나왔고 내게 처음으로 말을 했다간식들 조금 더 갖고 있으라고그리고 바로 그날 당근 마켓에서 정호 간식을 원하는 구매자가 나타났고혹시 강아지 간식이 더 있다면 다 팔아달라고 했다.


무의식과 예지몽 그 사이에서의 정호의 꿈들은 왔다 갔다 한다아마 무의식이 더 크겠지만객관적으로도 나는 그것을 알지만그래도 정호가 내 꿈에 찾아와 준 것이라고 믿고 싶다정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1년이 지난 후확실히 꿈에 나타나는 빈도가 현저히 잦아들었다


너의 심장이 너덜거려도너의 유골이 곤죽이 되어도네가 화염에 휩싸여 있어도너는 내게 여러 형태로 찾아와 준 것이라고더한 모습으로 찾아와 주어도 괜찮다그 이후의 죄책감이나 슬픔이나 울음은 나의 몫일뿐이고, 너로 인해 여전히 슬프다는 것이 나는 늘 기쁘다그러니 오늘도 찾아와 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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