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노 Oct 24. 2021

나는 진짜로 노견이 죽을 줄 몰랐다

끝맺음 없음

나는 진짜로 키우던 노견 정호가 죽을 줄 몰랐다. 적어도 두 계절은, 그러니까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은 함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7월이던 한 여름에 나는 정호의 겨울 옷을 구매했다. 이번 겨울에는 뽀글이 강아지 옷과 머플러를 입고 우리 따뜻하게 보내자고.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우리 두 계절만, 이번 한 해만 무사히 넘기자고. 


나는 정호가 죽기 2달 전부터 생전 처음 사는 것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강아지 로션을 샀다. 코와 발바닥에 바르는 로션인데, 이런 것을 바르면 정호한테 좋지 않을까 해서 급하게 로션을 샀다. 앞으로 내가 더 잘 챙겨주겠다는 마음으로. 


따로 양치를 시키지 않았던 정호를 이제와 양치를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치약도 샀다. 갑자기 정호가 먹길 바라며 여러 개의 간식을 샀다. 비싼 유기농 간식을 샀다. 더 이상 공장에서 생산한 간식 따위는 네게 먹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여러 수제 간식들을 샀다. 


그렇게 한 해를 넘기면 또 다른 한 해를, 그렇게 넘기면 또 다른 한 해를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호는 의사 선생님 말대로 약발이 좋은 강아지였고, 실제로 며칠 아프다가도 약을 잘 먹고 산책을 나가면 이내 훌훌 털어버리고 뛰어다녔다. 


산책을 나갈수록, 더 자주 나갈수록 정호는 점점 더 뛸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런 정호를 보고 회춘했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네가 아무리 아파도 약을 잘 먹고,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자주 나가면 언제든지 네가 튼튼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로, 말이 씨가 되라고 “정호가 회춘했네”라는 말을, 정호를 보고 주술처럼 말했다. 너는 회춘해야 한다고. 




약이라는 것이 한 곳을 낫게 하면 또 다른 한 곳을 망치게 하는 곳인 줄 몰랐다. 내 세상 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정호를 떠나보내기 전까지 멀리 있는 곳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운 지인이 이 지상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나는 ‘애도’도, ‘죽음’도, ‘투병’도 ‘아픔’도, ‘안락사’ 그리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심장병이었던 정호는 급성신부전으로 죽었다. 심장을 강화하게 만들어주던 약이 신장을 망가트리고 있었다. 망가진 신장으로 인해 정호의 몸속에서는 독소가 빠지지 않아 앓았고, 입맛을 잃었다. 입맛을 잃은 정호는 모든 음식과 물을 거부했으며, 강급을 하면 다 토해냈다. 


먹지 않는 생명. 먹을 것을 스스로 거부하는 생명. 그런 너를 보면서, 죽어가는 너를 보는 와중에 나타나는 화. 화가 나 억지로 먹인 물에 토를 하는 네 모습을 보며 다시 또 미안해지던 내 모습. 그래도 내가 억지로 오늘은 두유를 먹였으니까, 그래도 네가 스스로 배뇨활 동을 했으니까, 나는 진짜 네가 그날 죽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정호가 죽기 바로 전 날에 네 모습을 담은 타투를 예약한 것이기도 했다. 반려견 타투를 하고, 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다. 너와 함께 가족사진 같은 증명사진을 찍고 싶었다. 너를 닮은 내 타투와 너와 함께.


서서히 망가진 신장은 왜 급성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걸까. 이런 것들은 좀 너무 하지 않나. 몸이 노화가 되어 약해진 몸을 위해 약을 먹는데 왜 그 약은 다른 곳을 훼손시키는 것일까. 그럼 그것은 결국 살리는 일일까 죽이는 일일까. 너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더 일찍 죽고 싶었을까, 아님 내 곁에 더 있고 싶었을까. 


네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나를 향한 너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영원한 미지로 안은 채 사라진 너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끝맺음 없이. 

이전 06화 정호는 내 꿈속에 찾아온 걸까 아니면 나의 무의식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