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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노 Oct 24. 2021

반려견이 떠난 뒤 처음으로 다른 강아지를 만진 날

만질 수 없다는 것, 실체 없음

거짓말같이 정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1년이 지난 후, 정호를 생각해도 눈물이 많이 줄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정호에 대한 글도 쓸 수 있었다. 정호의 이야기를 울지 않고, 울먹이지 않고 주변인에게 얘기할 수 있었다. 


한 때는 지나가는 길에 강아지만 보아도 눈물이 났었다. 그러다가 몇 달 후에는 시츄 강아지만 보면 눈물이 흘렀고, 또 몇 달 후엔 더 이상 길거리의 강아지들을 보아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친구에게 내가 먼저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었다. 강아지를 만지고 싶었다. 정호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 강아지의 형체를 한 번도 만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매일 만지던 강아지인데, 하루아침에 사라진 나의 강아지 정호. 


머리부터 목까지의 그 유연한 곡선과 가장 따뜻한 겨드랑이 안 쪽, 그리고 가장 부드러운 털. 사타구니 쪽의 가장 여린 털들. 까끌까끌하지만 말랑말랑한 발, 그 발을 만졌을 때 벌려지는 발가락들, 가장 습한, 동시에 가장 기름져 있고 가장 얇은 귀. 그리고 두 손 가득 만져지는 동그란 얼굴과 검은색 눈동자에 가득 차 있는 내 모습. 내 품에 알맞게 딱 안기던 정호.


모든 것이 만지고 싶었다. 강아지의 검은 눈에 완연히 비친 내 모습이 보고 싶었다. 순전히 내 욕심 때문에, 사실은 강아지를 만지고 싶다는 그 마음 때문에 친구의 반려견을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친구의 반려견은 복슬복슬하고 곱슬곱슬한 털의 비숑이었다. 정호보다는 조금 더 무겁고, 정호 보다는 조금 더 큰 강아지. 


친구의 반려견은 확실히 정호랑 달랐다. 그래도 좋았다. 강아지를 오랜만에 만진다는 것은, 그 작은 생명체를 동시에 말랑말랑한 생명체를 만질 때마다 나는 어떤 위안과 안전함을 느꼈다. 가장 완벽하게 무결한 생명체. 

친구의 강아지를 안고도, 우리가 함께 놀아도 정호가 생각이 났지만 울음이 나진 않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잠이 오질 않았다. 1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2만 보 가까이 걸은 날이었다. 평소보다 더 많이 몸을 움직였고, 분명 피곤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공허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내가 자기 전에 항상 정호를 안고 올라오던 이 침대. 침대에 앉아 정호를 안던 그 기억, 너와 눈을 마주치고, 너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안정감을 느끼던 나날들. 나는 너를 안던 기분으로 너를 떠올렸고, 그날은 밤을 새우며 울었다. 네가 떠난 지 정말 오랜만의 울음이었다. 다른 강아지를 만지지 말았어야 했을까, 내가 괜찮아졌다고 착각한 것일까. 괜찮았는데, 나는 정말 괜찮았는데 이렇게 오롯이 나 혼자일 때의 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더 이상 너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정호가 보고 싶으면 남겨두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다. 그때마다 마음을 조금 달랠 수 있었다. 처음 6개월 정도는 일부로 보지 않았던 정호의 영상과 사진들을 이제는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보고 싶으면 사진으로라도 볼 수 있었다. 


만질 수가 없었다. 그 작은 발, 그 까만 눈, 동그랗게 이어지던 너의 코와 이마, 내 두 손 가득히 잡히던 너의 얼굴, 너의 오동통한 엉덩이, 너의 탄탄한 다리, 나는 이제 그 모든 것을 만질 수가 없다. 실체 없는 너를 나는 만질 수가 없다. 


“언니 정호가 만지고 싶으면 어떡해?”


정호를 떠나보낸 다음 날에 내가 물었던 질문이다. 언니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죽음은 어쩔 수 없다, 죽음 앞의 어떤 과학 기술도, 아무리 많은 사진이라도, 아무리 움직이는 동영상이어도, 내가 아무리 너를 매일 기억하고 생각해도, 너의 사진을 만져보아도, 너는 실체 없음이다. 만질 수 있다는 것, 생명은 그런 것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정호를 만지고 싶고, 정호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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