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강아지에게
나의 영원한 강아지, 나의 정호. 살아 있을 땐 산책도 자주 안 나가고, 일찍 집에 들어오지도 않던 내가 네가 없으니까 이렇게 집착한다. 너도 어쩌면 어이가 없겠지. 아니다. 너는 괜찮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네가 어이없어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나도 죄책감이 덜 드니까.
너는 지금쯤 어디니. 길가에 너를 닮은 들꽃이나 민들레를 보면서 너의 얼굴을, 뭉게구름을 보면서 너의 전체 모습을, 흩날린 듯한 구름을 보면서는 너의 꼬리를 떠올려 본다. 그러고 나서 하나하나 다시 너를, 너의 것들을 기억하려고 해.
속눈썹과 속눈썹에 눌어붙은 눈곱, 혹은 말캉한 누런 눈곱, 머리에서 목까지 쓰다듬을 때 느껴지던 가장 부드러운 곡선, 까끌까끌하지만 폭신한 발바닥, 새카만 코, 그리고 촉촉한 코, 가장 건조함이 느껴지던 너의 귀 안쪽 털과 얇아서 걸을 때마다 펄럭이는 귀, 뒤뚱뒤뚱 엉덩이, 가장 부드러웠던 너의 겨드랑이. 그 안쪽을 맨날 파고들던 나. 딱 내 품 안에 들어오던 너의 몸.
주말 아침에 늦게까지 자고 살짝 깼을 때 손이 닿아 너를 만질 수 있을 때의 행복감, 집에 돌아왔을 때의 나를 반겨주던 너의 모습, 가장 안전하고 단단한, 가장 적당하고 동일한 기복 없는 행복감을 주던 너. 네가 떠나고 나니 그 행복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특별한 일들의 즐거움보다 늘 똑같은 행복감이야 말로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가장 슬펐던 것은 너를 만지지 못해서야. 네가 하염없이 만지고 싶은 날, 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위안을 받고 싶은 하루일 때마다 그렇게 사무칠 수가 없었어. 인간관계가 힘들었던 날, 회사에서 자존감이 떨어진 날, 다른 강아지를 만지고 온 날, 다른 강아지들을 보고 온 날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저번에는 한 참새를 묻어주었어. 갈색. 노란색. 네가 주로 생각나는 색깔들이 무엇인지 알지. 내가 어떤 것에 너를 더 잘 떠올리고 반응하는지 너는 잘 알지. 그 죽어있는 참새가, 그 갈색 참새가, 너의 갈색 털을 떠올리게 해서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참새를 나무 밑에다 두고 왔어. 묻어주고 올걸,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더라.
네가 떠난 후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졌어. 그냥. 나중에 너 볼 때 조금 덜 부끄럽게. 혹시라도 어쩌면 내가 덕을 많이 쌓으면 너를 더 일찍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를 매일 자기 전, 그리고 일어나서 생각하고 있는 거 알지. 습관으로 들여놨어. 아침에 일어나면 너 이름을 부르면서 기지개를 켜는 것, 저녁에는 불 끄기 전에 전등 스위치에 있는 너 사진을 보고 너를 떠올리는 것이 어떤 나의 의식 같은 거였잖아.
개와 주인도 서로 닮아간다는 말을 나도 믿어. 나는 너를 닮았고, 너는 나를 닮았잖아. 그래서 그럴까 나는 네게 정말 많이 의지한 것 같아. 물리적 명목만 보호자였지 나의 정서적 지지대는 서로 뒤바뀌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자꾸 힘들면, 서글프면, 서러우면, 화가 나면, 분하면, 네가 생각나. 네가 내 옆에 꼭 있어야 할 것만 같아. 그런데 또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해서, 제법 지낼 만해서 나는 또 이런 감정들이 싫어.
사실 요즘에는 가끔 아침에 너를 까먹을 때도 있어. 내가 많이 괜찮아졌나 보다, 정호야. 나는 정말 이런 감정들이 너무 싫어. 너를 영원히 잊지 않고 싶어. 너를 생각하면 감정이 요동쳤으면 좋겠어. 너의 죽음이 아직까지도 내 삶에 늘 영향을 끼치면 좋겠어.
그런데 너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겠지. 한없이 사려 깊은 나의 강아지는 늘 나의 행복을 빌겠지. 그러면 나는 또 너를 위해 다시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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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정호와 산책을 많이 나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내가 정호를 많이 사랑했고, 정호도 나와 있어서 행복했을 거라고 말해주지만, 그것에 쉽사리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되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 터놓고 말하자면, 정호가 죽기 며칠 전까지, 그러니까 정호 혼자 몇 시간씩 두고 회식과 약속을 갔다 왔다. 나밖에 돌볼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러니까 나는 사실 주변에서 정호가 나 덕분에 행복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이 더 내 마음을 미어지게, 아프게, 나는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래, 차라리 그런 말을 듣고자 한다. 내가 계속 죄책감을 느낄 수 있게.
잘 살 것이라고, 네가 슬퍼하지 않도록 잘 살 것이라고, 더 많이 웃고, 네 몫까지 더 행복할 거라고 다짐했지만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즐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라는 걸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제는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죄책감으로 이 말을 쓰고 있는 것 같아 무기력함을 느껴, 정호야. 너는 지금쯤 어디에 있니.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너는 꼭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있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