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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노 Oct 24. 2021

나의 영원한 강아지 정호에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강아지에게

나의 영원한 강아지나의 정호살아 있을 땐 산책도 자주 안 나가고일찍 집에 들어오지도 않던 내가 네가 없으니까 이렇게 집착한다너도 어쩌면 어이가 없겠지아니다너는 괜찮다고 말하겠지만나는 네가 어이없어해 주기를 바란다그래야 나도 죄책감이 덜 드니까.


너는 지금쯤 어디니길가에 너를 닮은 들꽃이나 민들레를 보면서 너의 얼굴을뭉게구름을 보면서 너의 전체 모습을흩날린 듯한 구름을 보면서는 너의 꼬리를 떠올려 본다그러고 나서 하나하나 다시 너를너의 것들을 기억하려고 해.


속눈썹과 속눈썹에 눌어붙은 눈곱혹은 말캉한 누런 눈곱머리에서 목까지 쓰다듬을 때 느껴지던 가장 부드러운 곡선까끌까끌하지만 폭신한 발바닥새카만 코그리고 촉촉한 코가장 건조함이 느껴지던 너의 귀 안쪽 털과 얇아서 걸을 때마다 펄럭이는 귀뒤뚱뒤뚱 엉덩이가장 부드러웠던 너의 겨드랑이그 안쪽을 맨날 파고들던 나딱 내 품 안에 들어오던 너의 몸.


주말 아침에 늦게까지 자고 살짝 깼을 때 손이 닿아 너를 만질 수 있을 때의 행복감집에 돌아왔을 때의 나를 반겨주던 너의 모습가장 안전하고 단단한가장 적당하고 동일한 기복 없는 행복감을 주던 너네가 떠나고 나니 그 행복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특별한 일들의 즐거움보다 늘 똑같은 행복감이야 말로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가장 슬펐던 것은 너를 만지지 못해서야네가 하염없이 만지고 싶은 날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위안을 받고 싶은 하루일 때마다 그렇게 사무칠 수가 없었어인간관계가 힘들었던 날회사에서 자존감이 떨어진 날다른 강아지를 만지고 온 날다른 강아지들을 보고 온 날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저번에는 한 참새를 묻어주었어갈색노란색네가 주로 생각나는 색깔들이 무엇인지 알지내가 어떤 것에 너를 더 잘 떠올리고 반응하는지 너는 잘 알지그 죽어있는 참새가그 갈색 참새가너의 갈색 털을 떠올리게 해서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참새를 나무 밑에다 두고 왔어묻어주고 올걸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더라.


네가 떠난 후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졌어. 그냥나중에 너 볼 때 조금 덜 부끄럽게혹시라도 어쩌면 내가 덕을 많이 쌓으면 너를 더 일찍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를 매일 자기 전그리고 일어나서 생각하고 있는 거 알지습관으로 들여놨어아침에 일어나면 너 이름을 부르면서 기지개를 켜는 것저녁에는 불 끄기 전에 전등 스위치에 있는 너 사진을 보고 너를 떠올리는 것이 어떤 나의 의식 같은 거였잖아.


 개와 주인도 서로 닮아간다는 말을 나도 믿어나는 너를 닮았고너는 나를 닮았잖아그래서 그럴까 나는 네게 정말 많이 의지한 것 같아물리적 명목만 보호자였지 나의 정서적 지지대는 서로 뒤바뀌었던 것 같아그래서 내가 자꾸 힘들면서글프면서러우면화가 나면분하면네가 생각나네가 내 옆에 꼭 있어야 할 것만 같아그런데 또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해서제법 지낼 만해서 나는 또 이런 감정들이 싫어.


사실 요즘에는 가끔 아침에 너를 까먹을 때도 있어내가 많이 괜찮아졌나 보다, 정호야. 나는 정말 이런 감정들이 너무 싫어너를 영원히 잊지 않고 싶어너를 생각하면 감정이 요동쳤으면 좋겠어너의 죽음이 아직까지도 내 삶에 늘 영향을 끼치면 좋겠어


그런데 너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겠지한없이 사려 깊은 나의 강아지는 늘 나의 행복을 빌겠지그러면 나는 또 너를 위해 다시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  

 

-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나는 정호와 산책을 많이 나가지 않았다많은 사람이 내가 정호를 많이 사랑했고정호도 나와 있어서 행복했을 거라고 말해주지만그것에 쉽사리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되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 터놓고 말하자정호가 죽기 며칠 전까지그러니까 정호 혼자 몇 시간씩 두고 회식과 약속을 갔다 왔다나밖에 돌볼 사람이 없었는데도그러니까 나는 사실 주변에서 정호가 나 덕분에 행복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이 더 내 마음을 미어지게아프게나는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그래차라리 그런 말을 듣고자 한다내가 계속 죄책감을 느낄 수 있게.


잘 살 것이라고네가 슬퍼하지 않도록 잘 살 것이라고더 많이 웃고네 몫까지 더 행복할 거라고 다짐했지만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내가 즐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너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라는 걸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제는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죄책감으로 이 말을 쓰고 있는 것 같아 무기력함을 느껴정호야너는 지금쯤 어디에 있니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너는 꼭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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