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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섭 Sep 27. 2024

반야(般若)를 잇다 '불무장등'

반야는 모든 부처님(제불)의 어머니, 불모(佛母)

▲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경계짓는 불무장등 산줄기 상의 고개 '당재'. 지리산둘레길이 지나고 있다.  

   

지리산 반야봉 아래 주능선에 있는 삼도봉은 전북(남원), 전남(구례), 경남(하동) 3개 도(道)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이다. 삼도봉에서 반야봉을 거쳐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전북과 전남의 경계를 이루며 뱀사골과 성삼재를 잇는 도로로 내려선다. 그래서 이 산줄기를 ‘도계능선’이라고 한다. 이곳은 정령치를 잇는 도로와도 만나 삼거리를 이루기 때문에 ‘도계삼거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산줄기를 내어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 바로 ‘불무장등’이다. 이 산줄기는 지리산둘레길이 지나가는 농평마을 앞 ‘당재’에서 다시 황장산 능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며 섬진강에서 산줄기를 마감한다. 지금 한창 눈부신 꽃의 향연을 벌이고 있는 하동 쌍계사 10리 벚꽃길의 서쪽으로 드리워진 산줄기가 바로 황장산 능선이다. 불무장등 남서쪽 끝자락에는 작년 1월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연곡사가 있다.   

  

이 ‘불무장등’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백과사전 등에 한자어로 ‘不(아님)’과 ‘無(없음)’의 長嶝(장등, 길고 높은 봉우리 혹은 고개)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중으로 부정되는 이 이름은 단순한 한자어 풀이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구례 화엄사 강사를 지냈던 백운스님이 1988년 10월1일 『불일회보』에 기고한 ‘지리산의 내력-지명에 나타난 불교’ 글을 보면 그 이름에 대한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백운스님은 1930년대 화엄사의 진응강백이 지은 ‘지리산지’를 번역 소개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일신이며, 팔만 권속과 더불어 항상 머물며 설법하는 곳이다. 나는 이에서 여러 해를 두고 의심했던 것을 일시에 떨쳐버렸으며 지이(智異)라고 일컬은 것을 깨달았다. 문수는 오로지 반야(般若)를 주관하며, 반야는 제불의 어머니(諸佛之母)이다.”     


그래서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로 봉우리의 이름을 취했으며, 반야가 의미하는 ‘제불의 어머니’에서 따온 ‘불모(佛母)’에서 불무장등 이름의 의문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즉 반야봉에서 이어지는 높은 산인데, 반야와 같은 의미인 불모로서 이름이 지어졌고 불모는 불무로도 읽기에 불무장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母)를 '무'로 부르는 경우는 운봉의 옛이름인 '모산(母山)'을 '무산'으로 읽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반야봉의 특이한 모습(우중간 위 두 개의 봉우리). 불교에서 반야는 지혜를 의미하며 문수보살을 상징한다.


이렇듯 불무장등이 불교 관련 이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산자락에는 연곡사를 비롯한 많은 절집들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1686년 여름 이곳으로 들어와 약 4개월을 머물다 간 우담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잘 나타나있다. 그는 ‘금류동암’이라는 암자에서 주로 머물며, 인근에 있었던 오향대암, 금강대암, 삼일암 등의 주변 암자를 오고가며 산중암자와 수행승, 그리고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래서 6.25전쟁을 전후한 빨치산 토벌 당시에 모두 불타버린 불무장등 산자락의 폐사암지를 우담의 산중일기에 의해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기록을 발췌하면 이렇다.    

 

‘오향대암의 수좌 명학은 인자한 마음이 있어서 날마다 채소를 가져다주었다. 금류동암에서 오향대암까지의 거리가 353보이니 다녀온 걸음을 합하면 706보였다. 삼일암에 함께 가서 한동안 낮잠을 잤다. 밤에 빈대에게 시달려 불을 밝히고 두어 차례 잡았는데 편히 잠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불무장등 산자락 아래에 있는 농평마을을 찾았다. 깊은 산속, 차량도 힘겹게 겨우 오르던 이곳으로도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333년 전, 우담은 하동 칠불암에서 당재를 넘어 이곳으로 오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광삼스님과 칠불암을 출발해 고개 하나를 넘고, 20리 가량을 걸어 금강대암에 닿았다. 여기에서 잠시 앉았다가 다시 몇 리를 가서 오향대암에 도착했다. (중략) 수백 보를 걸어 금류동암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있는 당재로 가서 한참을 서성이며 머문다. 올해도 여전히 봄은 분주한 모습이다. 매화와 산수유 꽃소식을 들은 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섬진강변과 쌍계사에 이르는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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