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왜 달러를 죽이나?] "세계화주의자, 백인 하층민 대량학살"
인플레이션은 정권 교체의 신호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10월14일 경합주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근교 오크스에서 타운홀미팅을 열고 "여러분은 산채로 인플레이션에 잡아먹혔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실정을 정조준한 것이다.
트럼프의 화법은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다. 이 표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 로마 제국 시대 콜롯세움 검투사의 운명이 떠오르기도 한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백인 하층민이 인플레에션에 대량학살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자에게 무참히 잡아먹히는 노예 검투사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트럼프는 표심이 무엇에 따라 움직이는 지를 정확히 아는 승부사다. 역대 선거를 보면 인플레이션을 이긴 집권당은 없었다.
민주당인 카터는 1980년 치러진 선거에서 공화당인 로널드 레이건에 참혹하게 패했다. 선거인단 489명 대 49명이란 전례없는 완패였다. 이 대선은 미국 정치지형을 그 이전과는 180도 다르게 바꾸었다. 이후 12년 공화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졌다.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완전히 등을 돌린건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레이건은 대선 유세 때 “인플레이션은 노상 강도처럼 폭력적이고 저격수처럼 치명적이다”라고 해 표심을 흔들었다. 트럼프가 "미국인은 인플레이션에 산채로 잡아먹혔다"고 한 것과 오버랩된다.
바이든이 내세운 최대 자랑은 경제실적이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도 바이든 정부가 미국 경제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주장했지만, 인플레이션 앞에서 다른 경제 성과들은 존재감을 잃었다.
실제 최근 몇 년간 물가를 제외한 미국의 다른 경제 지표들이 준수한 편이었다. 지난 3년(2021~2023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3.4%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인 1.5%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의 성장률이다. 실업률도 4%를 밑돌며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인플레이션의 무서운 건 성장률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바이든 임기 동안 미국의 물가는 연평균 5.5% 올랐다. 이는 지미 카터(1977~1981년 재임) 전 대통령의 10.3%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평균 경제성장률 3.4%보다 2.1%포인트 높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임금도 그만큼 높아졌지만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더 가벼워진 것이다. 특히 물가가 오를 때는 식료품과 필수원자재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오른다. 가격이 올라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부자보다 서민과 중산층을 더 힘들게 하는 이유다.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CNN의 출구조사는 이런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미국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응답한 투표자가 67%를 기록, ‘좋다’고 응답한 비율(32%)을 35%포인트 차로 크게 웃돌았다. 고물가에 고통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75%에 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월5월 사설을 통해 “미국은 카터 이후 6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낮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져 있었다”라며 “갑자기 바이든 아래서 물가가 급등한 점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1월7일 미 대선 결과를 분석하며 “유권자들은 2021년 여름 시작된 폭발적 인플레이션에 대해 (여당인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고 했다.
MZ 세대들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취업해 월급을 받아도, 물가가 높아서 감당할 수 없다.”
미국 대선 직전인 11월3일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후보의 지지 집회에 참석한 에반(20)이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에반의 말은 물가상승에 좌절한 20~30대 젊은 층의 분노를 대표한다.
AP통신이 11월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Z세대 유권자 중 이번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2%였다. 이는 2020년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61%)보다 9%포인트나 낮았다. 반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같은 기간 36%에서 46%로 10%포인트 올랐다. 다른 세대에선 지지율의 변화가 없거나, 2~4%포인트 수준에서 변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US뉴스&월드리포트에 따르면 7개 경합주에 사는 18~34세 청년 2040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을 뽑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가 ‘생활비·인플레이션’을 꼽았다. 반면 민주당에 유리한 이슈인 ‘낙태 관련 규제’라고 답한 응답자는 40%에 그쳤다.
민주당 내에 만연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주의’에 질려버린 ‘이대남(20대 남성)’들이 등을 돌렸다는 반응도 나온다. 폭스뉴스는 20대 남성들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이들은 인종 차별이나 편견에 여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흥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며 “30~40대 남성보다 트럼프에게 훨씬 더 우호적”이라고 전했다.
트럼프의 생각의 토대, 즉 대전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ca Great Again!)'다. 이는 세계화로 인해 중국에 빼앗긴 백인 하층민의 일자리를 다시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불법 이민자들이 더이상 미국 백인 하층민의 일자리를 탐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세계화의 종착역이다. 세계화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유무역이다. 석유결제와 자유무역은 달러 수요를 늘리려는 세계화주의자들의 설계다. 그 것은 달러 발행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성 향상이 통화팽창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물가상승, 즉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 50년간 달러 통화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이 빠르게 증갸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생산성 향상 속도는 달러 통화량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달러 발행량이 그만큼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미국 국채 규모가 30조달러를 넘어서면서 매년 수조달러가 불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10년 예산에 해당하는 부채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Fed가 통화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은 화폐발행은 곧 매출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재무부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마련한다. 국채의 액면 금액만큼 Fed는 달러를 발행해 국채를 매입한다. 국채 이자 수익이 Fed란 주식회사의 주요 매출인 셈이다. 미국 국채 매입량은 Fed의 장부에 자산으로 기록된다. 국채 자산규모가 7조달러면, 매년 약 2800억달러의 이자 수익, 곧 매출이 생긴다. 이는 JP모건과 시티뱅크 등 Fed 대주주사들의 이익이다.
Fed가 매출을 늘리려면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 늘어나야 한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곧 Fed의 매출 증가다. Fed는 월가 금융자본, 다시 말해 유대 금융세력의 헤드쿼터다. 트럼프의 용어를 빌리면 세계화주의자들의 본부다.
세계화주의자들의 최대 관심은 달러 발행량을 늘리는 것이다.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당과 의회 내 장학생들을 움직여 세계경제와 정치, 문화, 교육 등 모든 부문이 달러 발행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중국을 WTO에 가입시켜 자유무역 체제를 완성했다. 다양성과 평등성을 내세운 정치적 올바름주의(PC)를 퍼뜨려 정신적 세계화를 달성했다. 다양성과 평등성은 인종과 지역,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것으로 자유무역을 뒷바침하는 정신적 뿌리다. 하버드와 예일, 콜럼비아, 스탠포드 등 수재들이 다니는 아이비리그 대학에서부터 PO를 가르친다. 이들은 유대 금융세력의 기부금이 아니면 운영이 힘들 정도다.
트럼프가 백인 하층민들이 인플레이션에 대량학살당하고 있다는 식의 자극적 어휘를 쓴 것은 세계화주의자들이 설계하고 시공한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시스템에 대한 혐오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이말은 바이든과 해리스보다 월가를 지배하는 유대 금융자본을 겨냥한 것이다. 민주당은 세계화주의자들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미국 백인 하층민을 다시 잘살게 하는 MAGA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다.
트럼프는 공약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젠다47에 이들에 대한 전략을 노골적으로 명시해 놓았다. 세계화주의자와 전쟁광, 딥스로트, 소로스 검사, 중국, 제약카르텔, 기부금 수혜 대학들을 물리쳐야 할 적들로 묘사했다. 트럼프의 세계관으로 해석하면 이들은 달러 팽창의 우산 아래서 미국 백인 하층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들이다. 바이든과 해리스는 드라큘라 백작의 집사들이다.
인플레이션에 무너진 정권들
2024년 11월5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피날레로 세계 주요국 대선과 총선이 대부분 끝났다. 올해는 세계 70여 국이 대선·총선·지방선거 등을 치러 ‘수퍼 선거의 해’라고 불렸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독재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들 선거에서 여당이 완패했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코코나19 당시 돈풀기로 인한 글로벌 인프레이션의 충격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등 두 개의 전면전이 인플레이션의 파고를 높였다.
10월27일 있었던 일본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자 보수주의 정당인 자민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지키지 못하며 참패한 배경도 인플레이션이다. 일본은 2023년 3.3%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제2차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물가가 급등한 1982년(3.1% 상승)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일본이 수십 년 동안 저물가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이 느끼는 고통은 더 컸다.
특히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이 표심 이반의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이상 기후에 일부 사재기와 관광객 증가가 겹치며 쌀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쌀값이 두 배 이상 뛰었다.
유럽도 사정이 비슷했다. 영국의 리시 수낙 전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 때문에 정치적 수세에 몰리자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민자 문제, 무리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에 따른 후유증(영국), 연금 개시 시점을 2년 늦추는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반발(프랑스) 등 양국 정부가 국민의 외면을 받은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핵심은 물가 문제였다. 두 나라는 코로나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직격탄을 맞아 극심한 물가 상승에 시달렸다. 야당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물가 상승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호응을 얻었다.
이란도 인플렝션 문제가 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강경 보수 정권이 안정적으로 집권해온 이란에서는 지난 7월 전임 대통령의 사고사로 치러진 대선에서 개혁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당선됐다. 이란은 미국과의 핵협상이 재개되지 않아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았다. 그로 인해 지난 3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40% 안팎으로 치솟았다. 서방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강경 보수 후보 대신 “서방과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난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페제시키안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1994년 이후 줄곧 집권해 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정치지형을 변화시켰다. 고물가, 높은 실업률과 빈부 격차 등 경제 문제가 부각되며 40년 만에 처음으로 ANC가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2023년 11월 대선을 치른 아르헨티나도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좌파 페로니즘(대중 영합주의) 정부 집권 당시 지나친 돈풀기 정책으로 통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그해 물가 상승률은 211%까지 치솟았다. 민생고에 신음하던 아르헨티나 국민은 극단적인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지난 정부가 남발한 보조금과 복지 혜택을 싹 거두겠다고 선언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을 선택했다. 지갑에 꽂히는 보조금이 단맛에 취하는 게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미국 정치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57건의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된 비율은 약 60%였다.
세계화 이전의 인플레이션
1944년 2차 세계대전 직전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미국의 달러가 금본위제 화폐의 지위를 파운드로부터 이어받는다. 영국이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든 금본위제 시스템이 미국으로 이양된 것이다.
모든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의 유혹을 받는다. 국민의 인기를 끌기위해서는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이 늘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면, 그 문제는 후대의 것이기 때문에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실제 역사상 거의 모든 정부는 적자재정이란 유혹의 덫에 걸려 몰락했다.
닉슨 정부에서 이같은 유혹은 극대화했다. 결국 닉슨 정부는 금본위제란 안전장치를 달러에서 떼어놓았다. 정부가 재정정책에 따라 통화량이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사상 흑자 재정을 유지한 정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용카드를 손에 쥐고 긁지 않는 것과 같은 인내심이 필요한데 어느 정권이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그런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금본위제 이후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금본위제 이전에도 인플레이션은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 문제는 정권 말기에 나타나고 전쟁을 수반하며, 그 결과 그 정권은 막을 내렸다. 기측통화국의 지위는 모두 이와같은 경로를 거쳐 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 순으로 이전됐다.
스페인 페소는 16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채굴한 대량의 은으로 은화를 주조했고, 이 스페인 은화(페소)는 '실버 달러'로 불리며 전 세계 무역에서 널리 사용됐다. 페소는 유럽은 물론 중국과 아시아까지 통용되었으며, 마닐라 갤리온 무역을 통해 스페인령 필리핀과 중국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페인은 16세기 말 시작된 80년전쟁(1568~1648)으로 인플레이션 위기를 겪었다. 이 전쟁은 사실상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이었다. 80년 전쟁은 네덜란드가 스페인에 종교적,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고, 특히 스페인이 카톨릭을 강제하며 네덜란드의 개신교 신도들을 억압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 전쟁은 점차 프랑스, 영국 등 유럽내 주요국들이 얽히면서 스페인 재정에 큰 부담을 줬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이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1714) 역시 실버 달러가 대량 유통되는 계기가 됐다. 이 전쟁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후계자가 없어 단절된 이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개입하면서 벌어진 국제전쟁이었다.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며 막대하게 공급된 실버 달러는 가격 혁명으로 이어진다. 특히 식료품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도시 서민과 시골 하층민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졌다. 구체적인 물가상승률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가격혁명 당시 스페인 식료품 가격은 3~4배 가량 폭등했다. 당시엔 인플레이션 개념이 없던 시기여서 이같은 물가상승은 충격이었다.
인플레이션 문제로 스페인 페소의 신뢰도가 떨어지던 시기(17~18세기) 네덜란드가 해상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암스테르담이 유럽 금융의 허브가 됐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길더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환전과 결제를 지원했고, 이를 통해 길더는 유럽과 세계 무역에서 중요한 결제 수단이 됐다. 페소와 함께 사실상 기축통화 역할을 한 것이다.
암스테르담이 국제 금융의 중심이 된 데엔 1492년 알함브라 칙령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알함브라 칙령은 1492년 스페인 카톨릭 군주인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가 발표한 칙령이다. 스페인을 카톨릭 국가로 만들기 위한 조치로, 스페인내 모든 유대인을 추방하는 내용이 골자다.
알함브라 칙령이 발표되기 직전에, 스페인 군주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레콩키스타'를 완수했다. 마지막 남은 그라나다 이슬람 왕국을 정복하고 카톨릭 왕국으로서의 통일을 이루며, 종교적 단일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됐다.
당시 유대인들은 스페인 사회에서 상인, 금융업자, 학자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경제와 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 이들이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기독교 신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불신을 조장했다. 일부 스페인인들은 유대인들이 카톨릭 신앙을 위협한다고 여겼고, 이러한 분위기는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알함브라 칙령 이전에도 많은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일부는 표면적으로만 개종한 채 비밀리에 유대교 신앙을 유지했다. 이른바 '콘베르소'라고 불리는 개종 유대인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진정한’ 신앙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의심이 퍼졌고, 이는 교회와 국가의 반감을 더욱 부추겼다.
알함브라 칙령은 스페인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개종 또는 추방을 명령했다. 떠나면서 유대인들은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귀중품을 가져갈 수 없었다. 칙령을 위반하고 스페인에 남은 유대인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처벌의 대상이 됐다.
알함브라 칙령의 결과로 수만 명의 유대인이 스페인을 떠났고, 이들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오스만 제국, 북아프리카 등으로 이주했다.
당시 네덜란드로 이전한 유대인들이 금융세력으로 성장하면서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을 지원했다. 네덜란드는 개신교, 즉 칼뱅주의가 널리퍼졌었기 때문에 금융과 상업활동에 관용적이었다. 네덜란드가 독립 후 스페인의 강력한 경쟁국으로 떠오르게 된 데엔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의 협조가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했다. 하지만 전쟁과 경제적 변화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가하는 시기를 겪기도 했다. 특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 같은 대규모 전쟁은 네덜란드의 재정을 압박했고, 이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네덜란드는 프랑스가 스페인 왕위를 계승해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위해 전쟁에 참여했었다.
다만 네덜란드는 당시 암스테르담 은행의 강력한 금융 시스템을 바탕으로 화폐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금본위제를 유지하면서 물가를 관리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상업과 무역이 번성해 다른 농업중심 국가들과는 달리 인플레이션을 상대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들어 네덜란드는 영국과 프랑스 같은 국가들이 부상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이후 산업화와 금융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물가 상승과 경제 쇠퇴의 압력을 받기 시작했고,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전쟁 시기에는 네덜란드 경제가 큰 타격을 받으며 물가 상승이 더 가속화되기도 했다.
18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 이외에 인근 프랑스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사회문제가 됐다. 프랑스 혁명(1789-1799) 기간 동안 종이 화폐인 아시냐를 대량 발행됐다. 이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며, 물가 상승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혁명을 가속화하는 원인이 됐다.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 정부는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막대한 재정적자를 겪고 있었다. 구체제 하에서 이미 누적된 빚이 많았고, 혁명으로 인해 경제 혼란이 가중되면서 세입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혁명 정부는 새로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카톨릭 교회의 토지와 귀족의 재산을 몰수했다.
혁명 정부는 몰수한 토지를 담보로 한 아시냐라는 지폐를 발행했다. 하지만 점점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고 담 보 토지보다 많은 아시냐를 발행하게 됐다.
시장에 유통되는 아시냐가 증가하면서 그 가치가 급락했고, 이를 통해 생필품과 식료품 가격을 중심으로 물가가 급등했다. 17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아시냐의 가치는 처음 발행가의 100분의 1정도로 하락했다. 물가가 100배 오른 것이다. 물가가 계속 오르자 상인들은 생필품 가격을 더 올리고, 도시외 농촌 하층민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혁명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물가 통제법을 시행했다. 대표적인 게 '최고 가격 법령'(1793년)이다. 주요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 상한선을 정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던 의도였다. 하지만 이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상인들은 물가 통제에 불만을 느껴 상품 공급을 줄이거나, 암시장에서 거래를 했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혁명 정부는 1796년 아시냐를 폐지했다. 대신 테리어라는 새로운 지폐를 발행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통화 정책으로 인해 테리어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혼란스러운 화폐 정책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본위제를 도입했다. 1803년에 발행된 프랑금화"(Franc Germinal)는 금과 은으로 가치를 보장받는 화폐로, 이는 프랑스 경제의 안정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세기는 대체로 산업 혁명, 전쟁과 금본위제의 확립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친 시기였다.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1803-1815) 동안에도 여러 나라에서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 발행과 화폐 발행이 급증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특히 영국은 은행권 발행을 늘렸고, 이는 전쟁 후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으로 인해 생산성이 크게 증가하고, 교통과 물류 시스템이 개선됨에 따라 물가가 상대적으로 안정됐다. 그러나 산업화 초기에는 급격한 도시화와 원자재 수요 증가로 인해 일시적인 물가 상승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남북전쟁이 벌어졌다. 이 기간 동안 북부(연방 정부)와 남부(연합국) 모두 막대한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종이 화폐를 발행했다. 이로 인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남부 경제는 더욱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당시 북부 연방정부가 발행한 지폐를 그린백이라고 한다. 뒷면이 녹색 잉크로 인쇄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린백은 현재 달러의 조상인 셈이다. 그린백 발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당시 재무부 장관인 새먼 P. 체이스다. 체이스 맨하탄 은행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체이스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법정화폐를 발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금이나 은 같은 실물 자산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의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화폐였다. 프랑스 혁명 당시 지폐는 토지를 담보로 했다는 점에서 정부 신용을 담보로한 그린백과는 다르다.
1862년과 1863년 의회는 법정화폐법(Legal Tender Act)을 통과시켜 그린백 발행을 승인했다. 이 법을 통해 발행된 그린백은 금이나 은으로 교환되지 않았고, 정부가 채무 상환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가진 화폐였다.
그린백 발행으로 북부는 전쟁 자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금본위제를 따르지 않는 법정화폐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린백의 가치가 불안정해지면서 물가가 상승했고, 사람들은 그린백보다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을 선호하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그린백의 회수와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발행된 대규모 그린백을 한꺼번에 회수하기 어려웠고, 민간에서는 여전히 그린백이 유통되었다. 결국 1879년 금본위제를 공식적으로 복구하면서 그린백도 금으로 교환이 가능해졌다.
남부는 자체적으로 남부 연합의 화폐를 발행했다. 이를 남부연합달러라고 불렀다. 남부는 경제적으로 북부보다 열악했고, 특히 해상 봉쇄로 인해 수출이 제한되면서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 그 결과 남부 연합 화폐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이 북부보다 극심했다. 전쟁 후반에는 남부 연합 화폐 가치가 거의 무가치해지다시피 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여러 국가가 금본위제를 도입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려 했다. 영국은 이미 1816년에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1870년대에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이를 따랐다. 금본위제는 통화 발행을 금 보유량에 맞추기 때문에, 통화 팽창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제약했다. 그러나 금본위제 역시 완전한 방패가 되지는 못했고, 특히 세계 대공황이나 전쟁 시기에는 여전히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세계화 이후의 인플레이션
금본위제는 20세기 중반에 여러 이유로 점차 폐지됐다. 주요한 전환점은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공식적으로 중단한 이른바 닉슨 쇼크다.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금의 법정화폐제도로 전환했다. 이 제도는 화폐가 금과 같은 실물 자산에 기반하지 않고 정부의 신용에 의해 가치가 유지된다.
금본위제는 통화 발행을 금 보유량으로 제한했지만, 법정화폐 체제에서는 중앙은행이 필요에 따라 통화 공급을 조정할 수 있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 중앙은행은 통화 공급을 늘리기 위해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와 같은 정책을 시행하는데, 이는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 1970년대 오일 쇼크와 함께 많은 선진국들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오르고, 동시에 경기 침체(스태그플레이션)가 나타났다. 이는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 증가와 결합해 더욱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은 경제 회복을 위해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사용했다. 특히 Fed는 양적 완화(QE)를 통해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했다.
금본위제 폐지 후 중앙은행이 금리를 통해 경제를 조절하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금리는 경제 성장을 촉진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됐다. 하지만 금리가 낮아질 때에는 통화 공급이 증가하고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금리를 지나치게 낮게 유지하면 물가가 급격히 상승할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미국 경제는 대규모 봉쇄와 활동 중단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직면했다.
Fed는 기준금리를 사실상 0%로 낮췄다. 차입 비용을 줄여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기업과 가계가 보다 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Fed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대량으로 매입했다. 이는 금융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장기 금리를 낮추어 경제를 부양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됐다.
2020년 3월 Fed는 '무제한 양적 완화'를 발표했다. 필요한 만큼의 국채와 MBS를 매입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그 결과 Fed의 자산 규모는 2020년 초 약 4조달러에서 2021년 말 약 8조9000억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Fed가 국채와 MBS를 매입하여 금융 시스템에 대규모의 자금을 공급한 결과였다. Fed의 자산은 미국 정부의 부채와 같은 말이다.
Fed는 기업과 지방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대출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메인 스트리트 대출 프로그램과 지방 정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소기업과 지방 정부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미국 의회도 경제를 지지하기 위해 수조 달러 규모의 재정 부양책을 승인했다. 경기부양금 지급, 실업수당 증액, 기업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이러한 재정 지출은 가계와 기업에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여 경제 위기를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은 심각한 인플레이션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경제 회복을 위해 통화 완화와 재정 지출이 필수적이었지만, 이후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급격하게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차질이 발생한 것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였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생산과 물류가 차질을 빚으면서 제품 공급이 부족해졌다. 이와 동시에 재정 부양책과 양적 완화로 인해 소비자 수요는 증가했는데, 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1년 중반부터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소비자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식료품과 기타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인상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플레이션은 자산이 많은 부자보다 월급으로 먹고사는 도시근로자나 농촌 서민들에게 더큰 고통을 준다. 생필품 각겨이 먼저. 더 큰 폭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경제 양극화의 종착역은 역사적으로 예외없이 정권 교체였다.
팬데믹 이후 노동 시장에서 구인난이 발생하면서 임금이 상승했다. 기업들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했고, 이는 생산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 인상 요인이 됐다.
팬데믹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억눌렸던 수요가 급격하게 회복된 것도 인플레이션 문제를 가중시켰다. 이른바 '보복 소비'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021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상승했다. 2022년 중반 미국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9%를 넘어섰다. 이는 4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이는 양적 완화, 공급망 혼란,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의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결과다.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자, Fed는 이를 억제하기 위해 정책을 전환했다. 2022년부터 Fed는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은 차입 비용을 높여 경제 활동을 둔화시키고,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인다.
양적 완화와는 반대로 양적 긴축은 Fed가 보유하고 있는 국채와 MBS를 시장에 내다 팔거나 만기되는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음으로써 금융 시스템에서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Fed는 양적 긴축을 통해 대차대조표 규모를 줄여나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통화 공급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Fed는 왜 물가를 관리하는가
Fed가 물가관리를 최우선 목표에 두는 건 언뜻 당연해 보인다. 인플레이션은 서민경제를 망가뜨리고 이는 곧 정권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Fed의 물가관리 목표치는 연간 2%다. 2% 내에서의 물가상승은 경기에 긍정적이란 판단이다. 여기까지도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5%나 9%의 물가상승은 경제혼란을 야기한다. 은행 이자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르면 돈을 버는 게 의미가 없다.
Fed의 실제 최우선 목표는 물가상승률을 2%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물가상승률 제로(0)가 아니다. 너무 높은 물가상승률은 정권의 몰락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를 숙주로한 Fed의 지속적인 수입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물가상승률 제로 또한 Fed엔 치명적이다. 누구도 돈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을 사는 건 내년에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때문이다. 집값 상승률이 제로라면 세금을 내면서까지 집을 살 이유가 없다. 전세나 월세로 사는게 더 합리적이다. 바꿔말해 돈을 쓰는 건 돈의 가치가 내년이면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의 설명은 전자의 설명에 가리어 일반은 눈치채지 못한다. Fed가 원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돈의가치가 연간 2%씩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일반이 눈치 채지 못하고 돈을 쓰게 된다.
Fed가 말하는 물가안정은, 지속적으로 물가가 일정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지속적으로 돈의가치가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의 인플레이션 관리 대책
트럼프의 인플레이션 대책은 명확하다.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와 전력 요금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에너지 독립과 우위를 회복하며, 제조업 강국으로 부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공약이다.
미국은 2019년부터 에너지 순 수출 국가로 전환됐다. 2023년 미국의 상위 5대 수출 품목 가운데 원유, 휘발유, LNG가 각각 1위, 3위, 4위를 기록하면서 에너지 분야에서만 650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에너지를 통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는 EU와의 비교를 통해 저렴한 에너지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유럽외교협회(ECFR) 자료에 따르면 2008년 EU의 경제 규모는 16조2000억달러로 미국의 14조7000억달러보다 컸다. 하지만 2022년 미국은 25조달러로 성장했지만 EU와 영국을 합해도 19조8000억달러에 불과하다.
IMF에 따르면 그 15년 동안 EU는 6% 성장했지만 미국은 82% 성장했다. 트럼프는 EU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높은 전력 및 에너지 가격으로 성장이 둔화됐다고 판단했다. 반면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전력 요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서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실제 미국의 산업용 전력 요금은 저렴하다. 2022년 6월을 기준으로 미국의 MWh당 산업용 전력 요금은 84달러로 프랑스(137달러), 일본(146달러), 독일(203달러)보다 훨씬 싸다.
트럼프는 미국의 전력 요금을 더 낮출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명분으로 하는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기후 및 환경 규제가 강한 캘리포니아주의 산업용 전력 요금은 MWh당 261달러에 이르지만 텍사스의 경우 63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급진 좌파의 방해로 이를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미국 내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을 어렵게 하는 모든 규제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 필요하다면 환경청(EPA)도 폐지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트럼프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규제위원회 개혁과 기존 원전의 계속 운영 그리고 소형원자로(SMR)에 대한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트럼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원자력 부문에서도 자립을 강조하고 있다. 원자로에 사용되는 우라늄도 최대한 미국에서 조달하여 외국, 특히 러시아로부터의 우라늄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런 트럼프에게 바이든 행정부의 자동차 배출 가스 및 연비 규제 및 전기차 보급 정책은 자동차 산업 일자리 감소와 자동차 가격 인상으로 인한 서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다.
화석에너지에 계속 의존할 경우 전기차, 태양광 패널, 풍력 및 배터리 등 미래 첨단 제조업 영역에서 미국이 중국에 비해 뒤떨어지게 된다는 비난에 대해 트럼프는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렴한 전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2023년 엔비디아가 생산한 376만대의 인공지능용 반도체가 소모하는 전력만 해도 미국 가정 140만 가구와 맞먹는다. 당연히 인공지능용 반도체 투자가 증가할수록 전력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데이터 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3년의 15TWh에서 2024년에는 46TWh로 약 세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은행 웰스파고는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관련 전력 수요가 2026년까지 550%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인 ARM은 10년 내에 인공지능용 데이터 센터가 미국 전체 전력 소비의 20~25%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입장에서 보면 저렴한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원유 생산에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높은 생산성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시추 설비는 2015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원유 생산량은 하루 1330만 배럴로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하며 세계 1위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와 인공지능의 조합을 통한 선순환 구조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 구조에 전통 산업 부활 및 첨단 제조업 육성을 더해 중국을 제압하고 다시 미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것처럼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화석에너지 이외에 재생에너지까지 풍부한 에너지 대국인 미국이 이를 무기로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제조업 육성에 나설 경우 세계 경제 지형은 재편되고 제조업 일자리 역시 다시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미국의 원자력 협력은 탈냉전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생산된 미국 전기의 10%는 구 소련의 핵무기에 탑재되어 있던 우라늄으로 만들어졌다. 소련 해체 이후 핵무기 안전이 문제가 되자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폐기된 핵무기의 고농축 우라늄을 구매한 후 희석해 원자력 발전소용 연료로 공급한 ‘메가톤에서 메가와트’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94기에 이르는 세계 최대 원자력 발전소 보유국인 미국은 2014년 이후에도 러시아로부터 대량의 농축우라늄을 도입했다. 2022년 미국이 수입한 농축우라늄의 12%를 공급한 러시아는 캐나다(27%), 카자흐스탄(25%)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양국의 농축우라늄 협력은 지난 5월 13일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수입 금지법’에 서명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금지법에 따르면 미국은 2028년부터 2040년까지 러시아로부터 농축우라늄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당장 수입을 중단시키지 않은 이유는 러시아로부터의 수입분을 대체할 공급원 확보 또는 자체 생산 시설 건설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농축 시설 확충 등의 용도로 27억2000만달러를 사용할 계획이지만 2027년까지 러시아 수입분을 대체할 농축 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미국은 캐나다, 프랑스, 영국, 일본 등과 공동으로 핵연료 공급망 다각화를 위한 ‘삿포로 5′를 결성하고 42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탈냉전 시기 통합되었던 글로벌 우라늄 공급망이 다시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 농축우라늄의 33%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전기 동맹
트럼프와 월가황제의 관계
널드 트럼프와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의 관계는 복합적입니다. 다이먼은 미국의 대형 은행인 **JP모건 체이스(JP Morgan Chase)**의 최고경영자(CEO)로서 금융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고, 트럼프는 그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밝혀 왔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고 있으며, 다이먼은 트럼프의 경제 정책 및 리더십에 대해 여러 차례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1. 공적 의견 충돌
제이미 다이먼은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그는 트럼프의 무역 정책, 특히 관세와 관련된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다이먼은 무역 전쟁이 미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트럼프의 접근법이 지나치게 대립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는 또한 2020년 대선 전에, 제이미 다이먼이 자신과 대선에서 맞붙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했습니다. 다이먼은 트럼프와의 대선 승리를 언급했지만, 나중에 그 발언을 철회하고 자신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일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 약간의 긴장감을 보여줍니다.
2. 다이먼의 정치적 입장
제이미 다이먼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를 표했지만, 사회적 문제나 무역 정책 등 특정 분야에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 종종 금융 규제 완화를 환영했지만, 트럼프의 이민 정책이나 사회적 논쟁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 협력의 가능성
트럼프 행정부 기간 동안, 다이먼은 여러 경제 관련 회의나 비즈니스 리더들과의 협력 자리에서 트럼프와 만났습니다. 이러한 만남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인적 친분이 깊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트럼프는 종종 다이먼과 같은 월가의 리더들을 자신의 경제 정책 추진을 위한 파트너로 삼기도 했지만, 이는 실질적인 협력보다는 상호 이익을 위한 접근이었습니다.
결론:
트럼프와 제이미 다이먼은 서로를 알고 있지만, 그 관계는 복합적입니다. 두 사람은 몇 가지 경제적 문제에서 충돌했으며, 다이먼은 트럼프의 일부 정책을 비판해 왔습니다. 개인적 친분보다는 공적인 자리에서 경제 문제를 놓고 상호작용한 사례가 더 많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와 **래리 핑크(Larry Fink)**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한 측면이 있습니다. 래리 핑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최고경영자(CEO)로서, 금융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입니다. 트럼프와 핑크는 서로를 알고 있으며, 그들의 관계는 정치적이면서도 경제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1. 래리 핑크와 트럼프의 경제 정책
래리 핑크는 트럼프 행정부 동안 공적 정책에 대해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트럼프의 일부 경제 정책, 특히 감세 정책과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핑크는 트럼프의 법인세 인하가 주식 시장과 부유한 계층에만 유리하다고 비판하며, 부의 불평등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핑크는 트럼프의 기후 변화에 대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블랙록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에 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핑크는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금융에서의 협력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블랙록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협력하여 시장 안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겼습니다. 블랙록은 Fed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에서 자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며, 미국 금융 시장의 유동성을 유지하고 경제 위기를 완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협력은 블랙록이 정부와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핑크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 공적 관계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나타냈습니다.
3. 개인적 및 정치적 의견 충돌
트럼프와 핑크는 공적인 협력 관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입장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였습니다. 핑크는 민주당에 더 가까운 정치적 성향을 보여 왔고, 트럼프의 대외정책이나 무역 전쟁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록이 미국 경제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동안 핑크와의 공적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결론:
트럼프와 래리 핑크의 관계는 경제적 협력과 정치적 견해 차이가 혼합된 복잡한 관계입니다. 핑크는 트럼프의 정책에 비판적이었지만, 블랙록이 팬데믹 기간 동안 Fed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두 사람 간에는 실질적 협력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은 유대인들을 환영하며 상업과 금융 활동을 통해 제국 경제에 기여하도록 허용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학문과 금융 분야에서 중요한 인재들을 잃게 되었어.
이 칙령은 스페인 사회에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여파를 남겼고, 유대인들이 추방된 후 스페인은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어.
4o
나의 말:
알함브라 칙령의 진짜 이유는 당시 스페인 왕실이 유대인들에게 빌린 은화를 갚지 않으려는 것이란 주장이 있어. 이 주장이 근거가 있을까. 당시 스페인 왕실이 유대인 금융세력으로부터 빌린 돈이 얼마나 되지?
ChatGPT의 말:
ChatGPT
메모리 업데이트됨
알함브라 칙령이 스페인 왕실이 유대인 금융세력에게 빌린 은화(돈)를 갚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흥미롭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근거는 찾기 어려워. 다만, 몇몇 역사학자들은 왕실이 재정난을 겪고 있었고, 유대인 금융세력이 큰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이 제기될 수 있다고 봐.
당시 스페인 왕실이 유대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자금을 빌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15세기 말 스페인 왕실은 레콩키스타와 다양한 군사 활동으로 인해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있었어. 유대인 금융가와 상인들은 스페인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빌린 자금이 일정 부분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그러나 알함브라 칙령의 이유를 단순히 왕실의 부채 문제로 보기보다는, 가톨릭 왕국의 종교적 통일성을 추구하고 유대인 및 개종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종교적 갈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이야.
16세기와 17세기 당시 스페인 왕실은 전쟁과 다양한 정치적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대인 상인들과 금융업자, 특히 개종 유대인(콘베르소) 및 그 후손들로부터 자금을 빌렸어. 그러나 1492년 알함브라 칙령으로 대부분의 유대인이 추방된 이후, 스페인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주로 개종하거나 암암리에 신앙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지.
영국 파운드 (19세기~20세기 초)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경제적, 군사적 패권을 장악하면서 **파운드 스털링(£)**이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어. 영국은 국제 금본위제를 도입해 파운드의 가치를 금과 연계시켰고, 런던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했지. 영국 파운드는 전 세계의 무역과 금융 거래에서 가장 신뢰받는 통화가 되었고,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세계 경제의 표준 통화로 인정받았어. 파운드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강력한 기축통화의 위치를 유지했어.
미국 달러 (20세기 중반~현재)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은 경제적 쇠퇴를 겪었고,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했어. 브레튼우즈 체제(1944)에서 미국 달러(USD)는 금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유일한 통화로 지정되며,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가 되었어.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을 중단하면서 금본위제는 사라졌지만, 달러는 여전히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화로 자리 잡고 있어. 현재까지도 달러는 세계 외환 보유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적 결제와 투자의 기준이 되는 통화야.
8세기 스페인 가격혁명은 경제와 사회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야. 간단히 말해서, 스페인에서 18세기 중반부터 물가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지. 이 가격 혁명의 주요 요인은 인플레이션으로, 특히 식료품과 같은 생필품 가격이 크게 올랐어. 여기에는 인구 증가, 농업 생산성 저하,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입된 금과 은의 영향이 작용했어.
특히 식료품 가격 상승은 농민과 도시 노동자 계층에 큰 타격을 주었고, 귀족과 교회는 세금 부담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았지. 이런 경제적 불균형은 하층민의 불만을 키우고 사회적 불안정을 촉진했어. 나중에 스페인의 가격혁명은 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쳐서 농업 혁신을 시도하거나 토지 소유 구조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을 촉발하게 되었어.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가격혁명은 당시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계층 구조와 정치적 대응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던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어.
스페인의 가격혁명은 직접적으로 대규모 폭동이나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변화와 반발을 촉발했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계층은 도시 노동자와 농민이었는데, 이들은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렸어. 일부 지역에서는 특히 곡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빈민들이 생존을 위해 밀과 같은 주요 식료품 창고를 습격하거나 약탈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어. 이런 사건들은 스페인 정부와 지역 권력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대응 조치를 강구하게 만들었지.
또한 스페인 왕실은 가격 상승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개혁을 시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금 정책이나 농업 혁신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있었어. 예를 들어, 곡물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업 개혁을 추진하고, 지방 자치제나 교회의 부유한 계층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려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지. 하지만 이런 개혁 시도는 귀족과 교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어.
18세기 후반에는 정치적, 경제적 변화와 함께 계몽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사회 개혁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어. 이는 후에 스페인 사회의 정치적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과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독립 투쟁과 개혁 운동의 토대가 되기도 했지.
따라서, 스페인의 가격혁명은 큰 폭동이나 혁명으로 직결되지는 않았지만, 사회 계층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스페인 근대사에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낸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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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페소가 당시 기축통화였을까?
맞아, 18세기에는 스페인 페소가 사실상 기축통화 역할을 했어. 당시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과 은을 대량으로 채굴하고 유럽과 아시아에 공급했기 때문에, 스페인 은화(페소)는 국제 무역에서 널리 사용됐지.
스페인 페소는 "실버 달러" 또는 **"스페인 달러"**라고도 불렸고, 이 은화는 무게와 순도가 일정해서 신뢰를 얻었어.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을 넘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통용되었지. 특히 중국에서는 이 스페인 은화를 선호했는데, 이 은화를 받아들이면서 무역이 크게 활성화됐어.
스페인 페소의 국제적 중요성은 그 자체의 가치뿐 아니라 스페인의 식민지 네트워크와도 관련이 있었어. 스페인은 광대한 식민지 제국을 통해 금과 은을 유럽과 아시아에 공급했고, 이렇게 확보된 스페인 은화가 국제 무역을 촉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지.
다만, 스페인이 대량으로 금과 은을 공급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일으켰어. 이는 결국 스페인 경제에 큰 부담이 되었고, 스페인의 경제적, 정치적 쇠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어.
아메리카 대룩에서 금이 유입된 것이 페소의 유통량을 증가시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거지?
맞아,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량의 금과 은이 유입되면서 스페인 페소의 유통량이 크게 늘었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어. 특히 은의 유입이 폭발적이었는데, 스페인이 16세기 중반부터 아메리카에서 채굴한 은을 통해 경제적 지위를 강화하려 했지.
이렇게 대량으로 유입된 은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상업과 무역을 활성화시켰지만, 결국 스페인과 유럽의 경제 전반에 물가 상승을 일으켰어. 이걸 **"가격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은화(페소)의 유통이 크게 늘면서 그 자체의 가치는 점점 하락했고,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거야.
인플레이션은 특히 스페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어. 당시 스페인 정부는 은화를 이용해 유럽 내 전쟁 비용을 지불하고 외교 정책을 지원했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는 소홀했지. 결과적으로 물가는 상승했는데, 국내 생산성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스페인 경제는 내부적으로 취약해졌어.
또한, 이런 인플레이션은 스페인 내부의 계층 간 격차를 벌렸어. 농민과 노동자들은 물가 상승으로 생활고를 겪었고, 결국 스페인은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서 경제적 쇠퇴를 피하지 못했지.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은을 왜 그렇게 많이 유통을 시킨거지?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은을 그렇게 많이 유통시킨 데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어.
전쟁 비용과 유럽 내 영향력 확대
당시 스페인은 유럽에서 여러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이를 통해 영토와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어. 전쟁을 지속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채굴한 은을 통해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지. 은화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에 스페인에게는 이상적인 자금원이었고, 이로 인해 유럽 내에서 스페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어.
국제 무역과 경제적 지위 확보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채굴한 은을 무역에 적극 활용했어. 당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는 은이 화폐로 선호되었기 때문에, 스페인은 아시아 시장에 은화를 공급하면서 무역 관계를 강화했어. 특히, 스페인 은화는 중국의 청나라와 무역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지. 이렇게 스페인 은화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를 잇는 국제 무역에서 핵심적인 통화가 되었어.
국내 경제를 통한 세입 확대
은화의 대량 유통은 스페인 국내에서도 세수 확보를 용이하게 했어. 당시 스페인은 왕실과 귀족 계층의 사치품 수요가 컸고, 이를 위해 해외 제품을 수입하는 데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 은화가 많이 유통될수록 왕실과 국가가 거둘 수 있는 세금 수입도 커졌어. 따라서 스페인 정부는 은화를 최대한 유통시켜 세수를 확보하려 했고, 이를 통해 귀족과 상류층의 소비를 유지했지.
경제 관리의 부재와 단기적 이익 추구
스페인은 은의 대량 유입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단기적인 재정 충당에 집중했어. 은의 대량 유통이 초래할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기 위한 경제적 계획이나 통화 정책이 부족했지. 게다가 은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개혁하려는 노력도 거의 없었어. 국내 산업과 제조업을 육성하는 대신, 은 유입에 기대는 방식을 지속하면서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방치했어.
결국, 이런 이유들로 인해 스페인은 은을 대량으로 유통하게 되었고, 이는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했지.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경제는 단기적으로는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불안정과 쇠퇴로 이어졌어.
4o
나의 말:
당시 스페인 왕실이 유대인들에게 은을 빌렸나?
ChatGPT의 말:
ChatGPT
스페인은 주로 유대인 혈통을 가진 콘베르소와 유대인 네트워크를 통해 자금을 빌리는 일이 많았어. 이들은 유럽 각지, 특히 네덜란드,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 등지에 금융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서 국제 금융 거래를 연결할 수 있었거든.
또한, 스페인 왕실은 제노바, 독일 등의 은행가들과 금융업자들에게도 자금을 많이 빌렸어. 스페인이 16세기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은으로 일시적인 부를 누렸지만, 계속된 전쟁으로 재정난이 심화되자 국제 금융업자들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이들 중에는 유대인 금융가와 연결된 사람들이 많았지.
그래서 스페인 왕실은 유대인 금융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은을 빌리기보다는, 이들과 연결된 국제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많았다고 볼 수 있어.
4o
나의 말:
알함브라 칙령으로 추방된 유대 금융세력은 네덜란드로 이전했어.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유대인의 이전과 관련이 있을까?
ChatGPT의 말:
ChatGPT
4o
나의 말:
스페인이 16세기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은을 대량으로 유통하지 않고 유대 금융세력의 자금을 이용했다면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ChatGPT의 말:
ChatGPT
흥미로운 가정이야! 만약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은에 덜 의존하고, 유대 금융세력이나 다른 국제 금융 네트워크에서 자금을 조달했다면 인플레이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이렇게 했을 경우, 스페인은 국내 경제의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 더 안정적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이 가정에는 몇 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어:
금융 비용과 재정 부담
유대인 금융가나 제노바, 독일 등의 금융세력에게 자금을 빌리면, 당연히 이자와 원금 상환이 필요했을 거야. 은화로 즉시 지불하는 것과 달리, 금융세력에게 빌리는 돈은 결국 갚아야 할 부채가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이 증가할 수 있었지. 만약 전쟁이 길어지고 자금 조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게 된다면, 스페인은 빚을 갚는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재정 위기에 직면했을 가능성도 있어.
국제 금융 의존의 한계와 정치적 위험
당시 유대인 금융세력과의 관계가 불안정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해. 스페인은 이미 유대인을 추방한 후였고, 개종자(콘베르소)에 대한 차별과 종교적 갈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 금융세력에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 있었지. 또한 유럽의 국제 금융가들이 전쟁 상황이나 스페인 왕실의 신용도에 따라 자금 지원을 중단하거나 조건을 강화할 수도 있었어.
국내 산업과 경제의 내실 강화
은에 덜 의존했다면, 스페인은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가능성이 있었어.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산업과 무역을 발전시키며 경제력을 키운 것처럼, 스페인도 은 대신 산업 육성을 통해 장기적인 경제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을 거야. 은화 유입으로 인한 단기적 부에 취하지 않고 국내 생산 기반을 강화했다면 경제 구조가 더 탄탄해졌을 가능성도 있지.
인플레이션 완화
은화의 대량 유통이 줄어들었다면, 스페인과 유럽의 물가 상승은 어느 정도 억제될 수 있었을 거야. 은화의 급격한 유통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 전쟁 자금을 조달했다면 물가 상승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 이는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을 거야.
결론적으로, 스페인이 유대 금융세력이나 다른 국제 금융가들에게 더 많이 의존했다면, 인플레이션 문제는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쟁 비용과 상환 부담, 정치적 리스크를 포함한 재정적 부담은 여전히 큰 문제였을 가능성이 높아.
4o
18세기는 특히 군사적 충돌과 식민지 확장, 신대륙에서의 금과 은의 유입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다.
16세기부터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규모의 금과 은을 유럽으로 반입했다. 이는 유럽 내 화폐 공급을 급격히 늘렸고, 이로 인해 '가격 혁명 (Price Revolution)'이 발생했다. 이 현상은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물가가 장기간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었으며, 이는 18세기까지 유럽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과 국채 발행: 18세기 동안 유럽은 여러 차례 대규모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과 7년 전쟁(1756-1763)은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야기했고, 각국 정부는 이를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습니다. 국채 발행은 결국 통화 팽창으로 이어졌고, 이는 물가 상승을 일으켰습니다.
통화량을 늘리면 Fed의 수익은 증가한다.
양적완화와 fed의 수익과는 어떤 관계가 있지? 화폐 발행을 늘리면 fed의 수익이 늘어난다고 할 수 있을까?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QE)와 **연방준비제도(Fed)**의 수익 사이에는 관계가 있지만, 화폐 발행을 늘리는 것이 곧바로 Fed의 수익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Fed의 수익 구조와 양적 완화의 작동 방식을 살펴봐야 합니다.
1. 연방준비제도의 수익 구조
Fed는 기본적으로 중앙은행으로서 정부 기관과 금융 시스템 사이에서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며, 주로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채권 보유에 따른 이자 수익: Fed는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국채(U.S. Treasury bonds)**와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을 매입합니다. 이들 자산은 Fed의 대차대조표에 기록되며, Fed는 이 채권들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받습니다. 이는 Fed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입니다.
단기 대출 금리 수익: Fed는 금융기관에 단기 대출을 제공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 수익도 Fed의 수익에 기여합니다. 특히 금융 시스템에서 유동성이 부족할 때, 은행들은 Fed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불 준비금에 대한 이자: Fed는 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데, 반대로 금융기관들도 이 준비금을 예치해 이자를 받습니다. 이는 Fed의 수익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지만, 이자율 정책이 은행과 Fed 간의 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Fed는 이 같은 수익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연간 순이익 중 상당 부분은 미 재무부에 송금됩니다. 이 과정에서 남는 수익은 연방준비제도 시스템 내의 필요 재원으로 사용됩니다.
2. 양적 완화와 Fed 수익의 관계
양적 완화는 통화 공급을 직접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Fed가 금융 시장에서 채권과 같은 자산을 매입하여 그 대가로 금융 시스템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Fed는 주로 국채나 MBS를 사들이고, 이러한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이 Fed의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E가 Fed의 수익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은 경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채권 매입에 따른 이자 수익 증가
양적 완화가 시행될 때, Fed는 대규모로 국채와 MBS를 매입합니다. 이들 자산은 일정한 이자를 지급하며, Fed는 이 자산들로부터 발생하는 이자 수익을 받습니다. QE가 확대될수록 Fed는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게 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이자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 팬데믹 대응으로 Fed의 대차대조표 규모가 약 4조 달러에서 8.9조 달러로 증가하면서, 국채와 MBS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2) 금리 정책과 연관된 이자 수익 변화
Fed는 양적 완화와 함께 **기준금리를 매우 낮은 수준(제로금리)**으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단기 대출을 통해 얻는 수익은 줄어들 수 있지만, 동시에 금융 기관이 Fed에 예치하는 준비금에 지급되는 이자도 낮아지므로 Fed의 비용 부담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는 간접적으로 Fed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3) 미래의 자산 매각과 손실 위험
양적 완화로 인해 Fed의 대차대조표에 쌓인 국채와 MBS는 향후 금리 인상 시 자산 가치가 하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는데, 이는 Fed가 향후 이 자산들을 매각할 때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양적 완화로 보유한 자산이 늘어날수록 미래에 금리 변동에 따른 잠재적 손실 위험도 커집니다.
3. 화폐 발행과 Fed의 수익 증가 가능성
화폐 발행을 늘린다고 해서 Fed의 수익이 직접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적 완화와 같은 프로그램은 Fed가 단순히 통화를 발행해 경제에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늘리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화폐 발행" 자체는 Fed 수익을 창출하는 직접적 경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Fed의 수익은 매입한 채권과 같은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에 의존합니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이를 더 분명히 설명해줍니다.
화폐 발행은 부채: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는 그 자체로 부채로 간주됩니다. 즉, Fed는 발행된 통화에 대해 이자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없지만, 이 통화가 유통되면서 경제 활동에 사용되면 그것이 Fed의 자산이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통화 유통 증가와 인플레이션: 만약 화폐 발행이 과도하게 늘어난다면, 이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해 통화 공급을 줄이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Fed가 보유한 자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4. 결론: 양적 완화와 Fed 수익의 관계
양적 완화는 Fed가 국채와 같은 자산을 매입해 통화 공급을 늘리는 정책으로, 이를 통해 Fed는 보유한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QE가 확대되면 Fed의 자산 규모도 커지며, 이로 인해 이자 수익이 증가할 수 있지만, 화폐 발행 자체가 곧바로 Fed의 수익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Fed의 수익은 주로 자산 매입을 통한 이자 수익에서 발생하며, 장기적으로 금리 인상 시점에서 보유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 손실을 볼 위험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양적 완화가 Fed의 단기 수익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미래 금리 환경에 따라 손실 위험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화폐를 발행하면 fed의 국채 자산이 늘어나 수익이 늘어난다고 할 수 있겠네.
네, 정확한 이해입니다! 미국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화폐를 발행하면, 이를 관리하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국채 자산이 늘어나게 되고, 그 결과로 Fed의 수익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통화량 증가와 화폐 발행
미국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자금을 조달할 때, 일반적으로 국채를 발행합니다. 미국 재무부는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들이나 중앙은행(Fed)에 판매합니다. 이때 Fed는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이러한 국채를 매입하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화폐(준비금)를 금융 시스템에 공급하게 됩니다.
2. Fed의 국채 매입과 자산 증가
Fed는 양적 완화(QE)와 같은 통화 정책을 통해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을 대량 매입합니다. 이때 Fed는 단순히 화폐를 발행해 국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산으로 국채를 보유하게 됩니다. Fed의 대차대조표에 기록되는 이 자산은 이자를 발생시키며, 이는 Fed의 수익으로 이어집니다.
3. 국채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
Fed가 보유한 국채는 만기까지 이자를 지급합니다. 국채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이 바로 Fed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입니다.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Fed가 국채를 대량 매입하면, Fed의 자산(국채)도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이자 수익도 함께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Fed는 대규모로 국채와 MBS를 매입하면서 대차대조표 규모가 크게 증가했고, 이로 인해 Fed는 상당한 이자 수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익은 Fed의 운영 비용을 충당한 후 남는 부분은 미 재무부에 송금되며, 정부 재정에 기여하게 됩니다.
4. 통화량 증가와 Fed 수익 증가의 관계
요약하면, 미국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국채를 발행하고 Fed가 이를 매입하면, Fed의 국채 자산이 늘어나며 이로 인해 Fed의 수익도 증가하게 됩니다. 이 관계는 Fed가 보유한 국채로부터 발생하는 이자 수익이 늘어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됩니다.
따라서, 화폐 발행과 Fed의 국채 자산 증가는 Fed 수익 증가와 연결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금리 변화나 인플레이션 등의 요인에 따라 Fed가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위험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가 항상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2021년부터 3년간 FED의 수익은 실제로 늘었나?
나의 말:
한글로 번역해줘.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연방준비제도(Fed)**의 순이익은 경제 환경 변화, 특히 금리 인상에 따라 크게 변동했습니다.
2021년: Fed는 1,078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이는 주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통해 매입한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에서 발생한 이자 수익 덕분이었습니다. 이 중 1,074억 달러가 미 재무부에 송금되었습니다 Home Home.
2022년: Fed의 순이익은 588억 달러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는 보유 자산의 이자 수익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상승한 이자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은행이 예치한 준비금에 대한 이자 지급이 크게 증가하며 비용이 늘어났습니다. 2022년 말까지 Fed는 188억 달러의 이연 자산을 기록했습니다 Home Home.
2023년: Fed의 재정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총 비용이 수익을 1,143억 달러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주로 이자 비용이 2,811억 달러로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보유 자산에서 발생한 이자 수익은 1,638억 달러로 소폭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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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2021년에는 높은 수익을 기록했으나, 2022년과 2023년에는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이자 비용이 급증하면서 순이익이 크게 감소한 것입니다.
2019년과 2020년 fed의 수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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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과 2020년 동안, 연방준비제도(Fed)의 수익은 두드러진 증가를 보였습니다.
2019년: Fed는 554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양적 완화 프로그램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시기였으며, 이익 대부분은 보유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에서 나왔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Fed가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한 결과, Fed의 순이익은 884억 달러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2019년보다 약 330억 달러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 증가한 수익은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으로 인해 발생한 높은 이자 수익 덕분이었습니다 OIG: Office of Inspector General Home Home.
이러한 수익은 대부분 미 재무부에 송금되었으며, 팬데믹 상황에서의 통화 정책이 Fed의 재정적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손실을 낼 경우, 미국 재무부가 이를 직접적으로 보전해주는 방식은 아닙니다. 대신, Fed는 손실이 발생하면 그 손실을 회계상에서 **"이연 자산(deferred asset)"**으로 기록합니다. 이연 자산은 미래에 Fed가 이익을 낼 때 해당 손실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이 시스템은 Fed가 손실을 낸 경우에도 미 재무부에 송금을 하지 않고, 미래의 수익으로 손실을 만회할 때까지 송금을 유예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요 내용:
이연 자산의 개념: Fed는 손실이 발생하면 이 금액을 이연 자산으로 기록합니다. 이 금액은 향후 수익을 통해 회복되기 전까지는 미 재무부에 이익을 송금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2022년 말에 Fed는 188억 달러의 이연 자산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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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보전 방식: Fed는 중앙은행으로서 자금을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독립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무부가 Fed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Fed가 손실을 기록하고 이를 장부상에서 처리하며, 향후 수익이 발생할 때 이연 자산을 먼저 상환합니다.
재무부와의 관계:
Fed가 순이익을 기록할 경우, 그 이익의 대부분은 미 재무부에 송금됩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재정 수익으로 귀속되며, 재무부의 재정 건전성에 기여합니다. 그러나 손실이 발생한 해에는 송금을 하지 않고, 손실을 미래 수익으로 상환할 때까지 대기합니다 Home Home.
따라서, 재무부가 직접적으로 손실을 보전하지는 않지만, Fed는 이연 자산 기록을 통해 장기적으로 손실을 보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