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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란전쟁 02화

[이란 전쟁] 키신저는 왜 석유달러 시스템을 구상했나?

- 미국은 왜 사우디만 공격하지 않는가

by 김창익

유가와 달러인덱스(가치)의 반비례관계는 석유달러 시스템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의 책사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문장관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석유달러 시스템으로 미국은 거의 무한정 퍼 쓸 수 있는 화수분을 얻게 됐다. 지금의 미국은 석유달러 시스템이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후 1944년 7월22일 맺어진 브레튼우즈 체제로 달러는 파운드화의 뒤를 이어 기축통화가 됐다. 금본위제의 왕좌를 이어받은 것이다. 금본위제는 금의 가격을 고정해놓고 그 화폐를 기축통화로 쓰도록 한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금 1온스의 가격은 35달러였다. 지금의 석유달러 시스템과 견주면 금달러 시스템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금을 달러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금을 사려면 일단 달러로 바꾸어야 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느라 막대한 파운드를 썼다. 그만큼의 금이 미국으로 흘러드어간 것이다. 2차 대선 후 전세계 금의 70%가 미국 차지가 됐다.


금본위제의 가장 큰 문제는 유명한 트리핀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다. 기축통화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유동성과 안정성이다. 유동성이란 세계 모든 나라가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달러가 유통돼야 한다는 것이고, 안정성은 돈을 많이 찍어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충되는 두가지 요건은 지속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게 트리핀의 딜레마다. 예일대 교수였던 트리핀이 주장해 트리핀의 역설이라고 한다.


1960년 트리핀은 미국 의회에서 트리핀의 역설로 금달러 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리핀.png 달러의 유동성과 안정성은 양립할 수 없어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한 트리핀 전 예일대 교수


금달러 시스템의 구조적인 약점은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컨데 영국 동인도회사가 달러를 구하려면 미국에 차를 수출하거나, 이 회사의 회사채를 미국 정부가 사줘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 전자는 무역적자, 후자는 재정적자다. 결국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받쳐주는 것이다.


달러 가치가 금에 고정된 상태에선 달러를 무작정 찍을 수 없다. 금의 재고량이 한정돼 있이 때문이다. 예컨데 금 재고량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달러 유동성이 두 배가 되면 금의 가격이 두배가 되거나, 달러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져야(평가절하) 한다. 하지만 금 1온스는 35달러로 고정돼 있다면 달러를 미국 정부로 가져갈 때 절반은 금으로 바꿀 수 없게 된다. 금본위제에서 달러를 금 보유량 이상으로 찍으면 부도가 나는 것이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트리핀의 예언은 현실이 된다. 1,2차 대선으로 영국이 그랬듯 기축통화국에게 최대 위협은 전쟁이다. 무기를 사기 위해 돈을 많이 찍어 결국 부도가 나는 것이다. 미국도 영국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었다.


1971년 8월15일. 닉슨 당시 대통령은 달러의 부도를 선언한다. 더이상 달러를 갖고 와도 미국 정부는 바꿔줄 금이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닉슨쇼크.jpg

달러 부도 선언은 당사자인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에 충격이었다. 무역흑자로 보유한 달러가 휴지가 된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 등 세계는 미국이 보유한 금 값을 올려주는 데 합의한다. 1온스당 35달러에서 38달러로 10% 정도 금값을 더 쳐주기로 했다. 다시말해 달러를 10% 평가절하해 준 것이다. 이후 금 1온스당 42달러로 금값을 추가 인상한다. 달러가 많이 풀려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기축통화 자리가 위험해졌다는 트리핀의 역설이 현실화 된 것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 한 인물이 유대인인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다.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키신저는 당시 오일쇼크에서 달러 부활의 실마리를 찾았다. 1973년 이스라엘과 중동국간의 전쟁으로 1974년 1월 OPEC은 유가를 배럴당 11달러 선으로 올린다. 유가가 1년만에 다섯배 가량 폭등한 것이다.

키신저 파이잘.png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후 몰락하는 달러 패권을 키신저는 석유달러 시스템 구축으로 부활시킨다.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파이잘 사우디 국왕을 만나고 있다.

이를 본 키신저는 같은 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달려가 파이잘 국왕을 만난다.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이 파이잘 국왕 입장에선 달가울리 없었다. 키신저는 불안한 중동 정세 속에서 사우디의 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대신 석유를 달러로만 결제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과 시아파 맹주인 이란 사이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는 파이잘 입장에선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비록 세가 약해졌기는 했지만 달러는 어쨌든 기축통화였던 것이다. 파이잘 국왕은 결국 키신저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한다. 1975년 OPEC은 석유의 달러 결제를 공식화 한다. 석유달러 시스템으로 달러의 패권이 부활하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파이잘 국황이 조카에게 암살당하고, 그 조카가 사형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영국 등 산업화에 성공한 선진국들은 석유를 사기 위해 막대한 달러를 보유해야 했다. 지속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게 패권 유지의 핵심인 셈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해당국들이 막대한 달러를 보유할 필요성을 갖게 된 점은 달려패권의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석유달러 시스템과 금본위제에서는 해결하지 못했던 트리핀의 역설을 말끔하게 해소했다. 거의 무한정 퍼낼 수 있는 석유는 1년에 2% 정도밖에 재고량이 늘지 않는 금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세계는 하루에 8천만 배럴에 달하는 막대한 석유를 소비한다. 달러를 거의 문한정 찍어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석유값을 고정해 놓지 않은 점도 금본위제와의 차이다. 산유량에 따라 유가가 급등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은 물론 사우디 입장에서도 매우 유용한 점이다.


9.11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은 사우디 라덴 그룹의 상속자다. 미국이 사상 최초로 본토를 공격한 사우디를 반격하지 않은 이유는 석유달러 시스템의 한 축에 사우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미국은 석유달러 시스템에 위협이 되는 정권을 차례로 무너뜨리고있다. 이라크가 애꿎은 희생양이 됐고, 이란이 다음 타깃이다.

빈라덴.jpg 오사마 빈라덴은 사우디 빈라덴 그룹의 상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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